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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정난 속 뒷전으로 밀려난 ‘대학의 심장’
재정난 속 뒷전으로 밀려난 ‘대학의 심장’
  • 박강수
  • 승인 2021.04.19 10:1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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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도서관, 교육∙연구 관계 분석
「2020년 대학도서관 통계 분석 및 교육∙연구 성과와의 관계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재학생 1인당 소장 도서 수로 따지면 73책이다. 일반대가 81책, 전문대학은 39책이다. 반면 북미대학은 203책이다. 일반대를 기준으로 봐도 북미 대학생이 2.5배 더 많은 책에 접근할 수 있다. 출처=픽사베이

연구와 교육, 대학의 두 가지 핵심 기능 중추에 대학도서관이 있다. 대학도서관은 교수와 연구자에게는 연구환경이고 학생에게는 학습여건이다. 연구환경과 학습여건을 개선하는 일은 곧 대학도서관에 대한 투자와 연결된다. 실증분석도 있다. 이종욱 경북대 교수(문헌정보학과)가 한국교육학술정보원(KERIS) 지원을 받아 수행한 「국가 연구경쟁력에 미치는 학술정보자원 결정요인 분석」(2019)에 따르면, “전자저널 수나 자료구입비 등 대학도서관 투자가 증가할 때 SCI/SSCI 논문 수와 논문 피인용 수도 함께 증가”한다.

 

대학도서관 투자 늘 때 논문도 함께 늘어

 

한국은 여전히 갈 길이 멀다. 지난 7일 교육부와 KERIS는 대학도서관의 현실을 담은 「2020년 대학도서관 통계 분석 및 교육∙연구 성과와의 관계 분석」 보고서를 공개했다. 2009년부터 매년 이어온 통계 자료집의 최신 업데이트다. 이번 조사에 따르면 일반 4년제 대학, 대학원대학, 전문대학을 모두 합산한 한국의 대학도서관 343곳의 소장 도서는 총 1억7천303만9천여 책이다. 재학생 1인당 소장 도서 수로 따지면 73책이다. 일반대가 81책, 전문대학은 39책이다. 반면 북미대학은 203책이다. 일반대를 기준으로 봐도 북미 대학생이 2.5배 더 많은 책에 접근할 수 있다.

인력 차이는 더 크다. 한국 전체 대학도서관의 직원 수는 약 3천103명이고 2013년 이후 꾸준한 감소 추세다. 재학생 1천명당 도서관 직원 수는 1.2명이다. 같은 항목에서 북미대학은 7.2명, 영국대학은 5.2명, 일본대학은 3.1명이다. 2.5배에서 6배까지 차이가 난다. 이 격차는 소위 ‘명문대’ 간 비교에서 더 두드러진다. ‘2021 QS 세계대학랭킹’을 기준으로 분류한 각국 상위 10개 대학 평균 비교를 보면 한국 상위 대학의 학생 1인당 소장 도서는 미국의 5분의 1이고, 재학생 1천명당 도서관 직원은 미국의 8분의 1, 영국의 4분의 1 수준이다.

 

 

최소값으로 수렴하는 ‘진흥법의 역설’

 

즉, 한국의 대학도서관에는 사람도 책도 더 적다. 국제적인 명문대와 비교가 불공정하다는 시각도 있지만 연구책임자인 이종욱 경북대 교수(문헌정보학과)는 제도를 지적한다. “도서관진흥법과 대학기관평가인증에 제시된 최소 기준이 있는데 이게 너무 낮아 최소값으로 수렴한다”는 것이다. 현행 대학도서관진흥법 시행령은 ‘전문대학 외 대학’에 대해 ‘학생 1명당 70권 이상’ 책을 보유하고, 매년 최소 ‘학생 1명당 2권 이상’ 늘려야 한다고 규정한다. 한국 일반대의 학생 1명당 소장 도서 수는 81책이고 학생 1명당 연간 증가 책 수는 2.2책이다. 시행령 기준을 간신히 웃도는 수준이다.

대학도서관진흥법에는 사서 배치기준도 규정돼 있다. 학생 수와 장서 수를 기준으로 대학 규모를 나누고 ‘1~3명 이상’으로 최소 인원을 명시했다. 또한 한국대학평가원에서 발표한 ‘2021년 대학기관평가인증 편람’을 보면 도서관 항목에서 ‘주요 점검사항’ 중 하나로 “재학생 1천명당 도서관 직원수의 최근 3년 평균 값이 기준값(1명)을 충족해야 한다”고 규정돼 있다. 앞서 살펴봤듯 해당 지표의 한국 평균은 1.2명이다. 최소값에 비춰도 빠듯한 숫자다. 평가 요건만 충족하면 더 충원하지 않는 것이다. 백원근 책과사회연구소 대표는 “대학도서관진흥법 제정 이후에 인력이 더 줄었다”면서 “진흥법의 역설”이라고 지적했다.

 

대학도서관진흥법 시행령에 규정된 사서와 소장도서 기준. 출처=국가법령정보센터
대학도서관진흥법 시행령에 규정된 사서와 소장도서 기준. 출처=국가법령정보센터

 

 

1인당 자료구입비는 일본의 절반, 북미의 5분의 1

 

법령과 제도를 간신히 충족하는 한국 대학도서관의 부실한 인프라는 예산 문제로 귀결된다. 한국 대학의 총결산액 대비 자료구입비 비율은 2020년 기준 0.8%다. 2013년부터 8년째 같다. 재학생 1명당 자료구입비로 계산해보면 10만5천원 선이다. 일반대만 따지면 12만3천원이다. 환율을 적용한 북미대학 평균이 약 56만2천원, 영국대학 평균이 약 28만7천원, 일본대학 평균이 약 23만1천원이다. 역시 2배에서 5배까지 차이가 난다. QS세계대학랭킹 상위 10개 대학 평균을 비교해도 한국은 학생 1인당 자료구입비로 29만원을 쓰는데 반해 북미는 147만원, 영국은 46만원을 쓴다.

배경에는 어느덧 대학 문제의 상수가 된 ‘재정난’이 있다. 보고서는 2010년 고등교육법 개정 이후 대부분 대학이 등록금을 동결하거나 인하 중인 점, 지속적으로 줄어온 학령인구 감소 등 상황을 짚는다. 예산 위기 속에서 대학도서관은 약한 고리가 됐다. 정동진 한국대학도서관연합회 도서관정책연구소 소장은 “코로나19 사태에서도 가장 먼저 타격을 보는 것이 도서관 쪽”이라면서 “대학 구성원 사이에서 도서관은 인풋 대비 아웃풋이 가시적인 성과로 나타나지 않는 ‘돈 먹는 하마’로 인식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정 소장은 “대학결산대비 자료구입비 비율 최소 1%를 법률에 명시할 것을 요구해 왔으나 이조차도 선진국과 비교가 난망한 수준”이라고 덧붙였다.

 

늘어나는 전자자료 비율 속 허수

 

줄어드는 자료구입비 속에도 상승곡선이 있다. 전체 자료구입비 중 전자자료 구입비 비율이다. 2011년에는 48.7%에 머물렀던 전자자료 구입비 비율은 급상승해 지난해 기준 69.4%를 찍었다. 전자자료에는 학술지를 전자자료 형태로 제공하는 전자저널, 웹 데이터베이스(Web DB) 등이 포함된다. 70%에 가까운 자료구입비가 전자자료 구독료로 들어가고 있는 셈이다. 보고서는 “재학생 1인당 대출 책 수가 급격히 줄어든 데에는 이처럼 전자 자료 중심으로 개편된 도서관 정보 환경이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고 분석한다. 실제로 한국 대학도서관의 원문 다운로드 건수는 해외 대학과 차이가 비교적 적은 편이다.

 

 

다만 여기에도 허수는 있다. 이종욱 교수는 “전자자료 구입비 비율은 높아졌지만 구독료가 증가하고 있기 때문에 실제로 구독 범위는 현상 유지이거나 오히려 감소한 것으로 볼 수 있다”고 풀이한다. 전자저널 구독료가 인상돼 왔기 때문에 전체 자료구입비 중 차지하는 비율은 늘었어도 실질적 자료의 양은 크게 확장되지 못했다는 것이다. 실제 DBPIA, KISS, Science Direct 등 국내외 전자저널이 2018년부터 매년 평균 5~7%대의 구독료 인상률을 보여왔다. 보고서는 “대규모 상업자본의 독과점에 의한 전자저널 가격 폭등도 있지만 근본적으로는 자료구입비 동결 또는 축소가 원인”이라며 “정부와 대학의 자료구입비 확보를 위한 공동 협력”을 강조했다.

 

박강수 기자 pps@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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