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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男 교수님, 제발 이것만은 고쳐주세요”
“男 교수님, 제발 이것만은 고쳐주세요”
  • 이은혜 기자
  • 승인 2004.09.17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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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 교수의 異見은 무시한다...성적 농담은 줄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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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 교수님들, 이것만은 고쳐주세요'라는 제목으로 우리시대 여 교수들에 대한 의견조사를 거친 결과, 대학사회에 여전히 남성중심적인 제도와 문화가 팽배하다는 점이 드러났다. 전국대학의 여 교수 22명에게 대학내 보직, 문화, 교수들의 사고방식 등에서 남 교수들이 여 교수에 대한 어떤 편견을 갖고 있는지 물어봤다.

異見에 수수방관하는 남 교수들

남 교수들이 고쳐줬으면 하는 것, 1순위로 뽑힌 것은 “남 교수들이 여 교수가 제기한 이견은 수용하지 않고, 수수방관하는 태도”였다. 응답자 총 22명 중 21명이 이런 경향에 대해 지적했다. 학과회의 등에서 여 교수가 다른 의견을 제출하면 대다수인 남 교수들의 의견을 따르도록 은근히 압력을 받는다는 것. 즉, 여성은 단지 예외적, 개인적 존재로 간주되며, 무리의 일원으로서만 취급된다는 것이다. 이는 남 교수들이 이견을 제시할 경우엔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진다는 점에서 성차별적이라는 게 응답자들의 설명이다. 이런 현실은 기존의 남성중심적인 대학사회에 문제를 제기할 경우, 변화할 가능성이 매우 적다는 것을 시사한다.

응답자들이 2위로 꼽은 것은 “본부의 주요 보직은 남 교수들의 자리라고 생각하는 것”이었다. 15명이 이를 문제 삼았다. 손승영 동덕여대 교수(사회학)는 “보직에서도 명예와 권한이 있는 지위에는 남성이, 의무와 봉사가 있는 지위에는 여성이 담당한다”라며, “학과운영의 의무는 철저히 공유되지만, 권리는 남성이 독식한다“라고 지적한다. 특히 가장 중요한 교수임용과 관련된 인사위원회의 여 교수 비율은 훨씬 낮다. 2001년 교육부 자료에 따르면, 대학본부 임명보직의 여 교수 비율은 전체 대학이 10.2%, 국공립대 5.9%, 사립대 14.3%였다. 이는 전체 교수 중 여 교수비율이 해당년도 14.1%, 8.8%, 16.0%였던 것보다 더욱 낮아 이중적인 과소대표임이 드러난다. 더욱이 여자대학에서 높은 여 교수 보직율을 제하면, 그 수치는 훨씬 낮아진다. 즉 교수사회에서도 성별분리의 문제가 여전히 제기될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교수 본연의 임무에 충실해줬으면”

여 교수와의 직접적인 관계에서의 충돌은 아니지만, 남 교수들이 기존 교수사회의 문화들을 그대로 답습하는 데에도 반응을 나타냈다. 응답자 중 13명이 “남 교수들은 강의나 학생지도보다는 인적 연계망 구축 등에 힘쓰는 경향이 있다”라고 답했다. 더욱이 이를 남 교수들이 고쳐줬으면 하는 것 1위로 꼽은 응답자가 6명이나 된다. 일반적으로 대학에서 사회활동 등을 활발히 하는 교수를 ‘능력있다’라고 평가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이런 경우, 교수들이 여러 인적 연계망 구축에 힘쓰다보니, 제일 먼저 밀려나는 것이 강의와 학생지도가 된다는 것이다.

‘여 교수는 깐깐하다’, ‘잘 따진다’, ‘책임감이 없다’라는 편견 역시 여전히 대학사회에 팽배한 것으로 나타났다. 응답자 중 13명이 이런 편견이 많다고 답했다. 그런데 이는 단지 성적인 편견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는 데 그 심각성이 있다. ‘깐깐하다’, ‘잘 따진다’라는 것은 여 교수가 이견을 제시할 경우 나오는 반응과 관련된다. 또 남 교수들이 ‘강의와 상담보다 외부활동에 더 힘쓴다’라고 말하면, 이런 반응을 나타낸다는 것. 여 교수들은 또한 여성에게만 부과되는 이중고에 처한 현실에 대한 배려가 없음을 아쉬워했다. 흔히 ‘책임감이 없다’라는 말은 이런 현실에서 나온다는 것이다. 여성들이 전임으로 활동하게 되는 시점인 30대 전후 나이는 한창 육아와 가사일 등을 꾸려야 할 때다. 강의와 학생지도 등을 낮에 하다보면, 남 교수들과 달리 시간제한이 많은 현실이다. 하지만 이런 상황들이 제대로 고려되지 않고 있다는 게 여 교수들의 불만이다.

5위로는 ‘여교수들이 기존 남성중심 대학사회에 적응할 것을 요구한다’가 나왔다. 이 역시 13명이 답했다. 홍일점으로 진입한 여 교수에게는 ‘적응’이라는 과제가 주어진다. 여 교수들은 기존 교수사회에 적응하지 못하면 ‘사회성이 부족하다’, ‘대화가 불가능하다’, ‘문제를 일으킨다’라는 얘기를 듣는다고 털어놨다.

性이나 외모관련 농담은 줄어…

이 외에도 “여성관련 연구들은 학술성이 없는 것으로 취급한다”(8명), “회의나 프로젝트를 함께 할때 확실히 일처리를 하지 않고 어물쩍 넘어가는 경향이 있다”(6명), 교수임용 시 여성은 강의교수, 연구교수 등에 배정하는 경향이 있다(6명) 등으로 나타났다. 젠더관련 학문은 새로운 학문패러다임으로 인정하기보다는 학문성이 없거나 주변적인 것으로 치부하는 경향은 여전히 존재한다는 지적이다. 또 대학사회 내에서 조차 '시간강사의 여성화'와 '비정규직의 여성화'가 진행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반면, 性과 관련된 행위나 농담, 외모와 관련된 발언 등은 급격히 줄어들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술자리나 모임에서 性이나 외모와 관련된 농담을 한다”, “회식자리에서 은근한 대접을 요구한다”, “여 교수들에게 반말을 섞거나 존칭을 달리한다” 등에 대해서는 거의 불만을 제기하지 않았다. 응답자들은 “성적인 것과 관련해서는 요즘 많이 개선되고 있는 현실이다”라고 답했다. 설문을 거절한 여 교수들도 많았는데, 연령대가 올라갈수록 그 비율이 높았다.

이은혜 기자 thirteen@kyosu.net

(설문조사에 응해주신 분들) 곽진영 건국대(정치학), 권명아 연세대(국문학), 김경희 한림대(신문방송학), 김경희 한양대(불문학), 김민정 서울시립대(정치학), 김영희 충북대(가족학), 김현주 중앙대(사회학), 김혜숙 이화여대(철학), 나희덕 조선대(국문학), 박기남 한림대(사회학), 박세화 충남대(법학), 손승영 동덕여대(사회학), 윤형숙 목포대(문화인류학), 이경희 부산대(국문학), 이숙인 정문연(철학), 이영희 고려대(관광학), 이윤진 초당대(국문학), 이인숙 세종대(교육학), 이지순 성균관대(불문학), 이혜경 평택대(사회복지학), 조주현 계명대(사회학), 태혜숙 대구가톨릭대(영문학), 이상 총 22명 가나다 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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