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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대담] 보건의료개혁의 쟁점과 전망
[기획대담] 보건의료개혁의 쟁점과 전망
  • 김재환 기자
  • 승인 2001.05.03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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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병희 서울대 교수 vs 이종찬 아주대 교수
지난해 의약분업으로 야기된 ‘의료폐업’ 사태는 우리사회에 미증유의 의료대란을 초래했다. 의약분업의 결과에 대한 긍/부정의 논란과는 별개로 이 사태는 우리사회의 의료시스템과 의료체계 전반에 대한 반성이 필요하다는 사회적 인식을 가져다 주었다.
이번 대담에서는 서로 다른 학문적 배경을 지니고, 한국 의료의 개혁담론을 구성해온 대표적인 두 학자의 시각을 통해 보건의료개혁의 주요 쟁점을 검토하고, 그 방향을 모색해보고자 한다. 의약분업에 대한 평가, 한국의료의 독특한 역사적 구조로서 의료의 근대성, 한국의료의 패러다임 전환, 의료개혁의 방향 등이 주요 논의주제이다. 오늘의 의료현실에 대한 두 학자의 ‘진료와 처방전’을 통해서, 의료의 공공성을 성취하기 위한 방안을 찾아보고자 한다.

●일시 : 4월17일 오후3시
●장소 : 교수신문사 회의실
●진행·정리 : 김재환 기자

고비용 의료시스템·서양의학 패러다임을 넘어서

‘리얼리스트’와 ‘개혁적 이상주의자’가 첨예하게 대립되었던 자리였다. 의료사회학과 의학사상이라는 전공의 차이가 반영된 탓일까. 의료개혁에 주도적으로 참여하고 있는 학자와 의료패러다임의 전환을 모색하고 있는 학자의 논쟁이 2시간여 동안 진행됐다.

의약분업, 무엇을 남겼는가

조병희 : 최근 언론에서는 의약분업이 의보재정위기의 원인이라고 보도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단견입니다. 재정위기는 5년전부터 시작되었고, 의약분업이 없었던 지난해에는 1조원이상의 적자가 났습니다. 수입보다 지출이 많아지는 보험재정 시스템이 근본문제이지, 의약분업이 재정적자의 주범은 아니죠. 그러나 지난해 의약분업 사태 당시 원래의 의약분업 모형이 나중에 많이 변질되었습니다. 또 ‘의보수가 정상화’를 요구하는 의사들의 주장에 밀려 수가를 무리하게 단기간에 인상하는 바람에 재정부담이 더욱 커져 오늘날과 같은 재정위기를 초래한 겁니다.
이종찬 : 의약분업을 재정적인 측면에서만 보는 여론과 전문가의 시각이 더 문제입니다. 정부가 설정한 의료정책의 기조는 통제와 규제입니다. 하지만, 의사들은 제도를 통한 규제를 벗어날 수 있는 적절한 도구를 가지고 있습니다. 의술행위가 의사들의 사회적·문화적 권위에 의해서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이 바로 그것입니다. 정부는 이에 대해 별로 관심이 없습니다. 이런 점을 고려하지 않은 논의는 현상적인 분석에 불과합니다. 한국 의료의 등가방정식을 보자면, 좌항에는 정부의 통제와 규제정책이 있고, 우항에는 의사들의 사회적·문화적 권위에 의한 의술행위가 놓여있습니다. 정부는 좌항만 조율하면 된다고 본 거죠. 우항에 대해 무관심하다면, 의료의 어떤 발전도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조 : 이런 의문이 생깁니다. 왜 의사들은 수십년동안 왜곡된 의료체계나 구조안에서 안주해왔느냐 하는 것 말입니다. 정부의 규제도 하루아침에 생긴 것이 아닙니다. 의사들은 잘못된 구조를 고치려고 하지 않고 규제를 빠져나갈 구멍만 찾아왔습니다. 편법을 써서 수익을 맞춰온 거죠. 이런 상태에서 문제가 있어도 겉으로 드러나지는 않았던 것입니다.
이 : 결국, 국민부담으로 전가되기 때문에 문제인 겁니다. 의약분업은 정부, 시민단체, 대부분의 언론까지 시행에 동의했습니다. 김대중 정권에서 전 분야의 동의를 거친 개혁정책은 의료개혁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지금 좌초위기에 몰려있습니다. 물론 정부의 정책 부재에도 의료개혁 실패의 원인이 있겠지만, 의료개혁의 주체중 하나인 의사들이 ‘객체’가 되어버린 것이 큰 원인입니다. 개혁의 객체화라는 측면에서 의사들의 반발은 논리적으로도 맞고 현실적으로도 타당하다고 생각합니다. 의료개혁이 이렇게 참담한 이유는 김대중 정부의 ‘신자유주의’ 정책기조를 의료개혁에 참여한 개혁가들이 철저히 인식하지 못했기 때문이죠. DJ정부에서 ‘교육과 의료’가 현상적으로 붕괴되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신자유주의 정책 아래서는 모든 복지정책이 수사학적일 수밖에 없고, 시민단체와 개혁가들은 그 점에 대한 통찰이 부족했습니다. DJ정부가 정치적인 수단으로 바라본 의보통합과 의약분업을 시행하려했던 것이나 ‘시장의 합리성’이 작동하지 않는 ‘의료제국’ 중심의 의료시장에 대해 의약분업주도세력들이 문제의식을 갖지 못한 점도 문제로 지적될 수 있습니다.
조 : DJ정부 개혁의 성격이 기본적으로 신자유주의적이라는 것에는 동의합니다. 잘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현 정부는 공공의료 기관을 공사화시켜 수익 창출을 요구하였습니다. 또 개혁주체들이 모토로 삼은 것이 ‘시장 질서를 확립하겠다’는 것인데, 신자유주의라는 것이 간단히 말해 시장 중심, 기업 중심으로 잘 돌아가는 것 아닙니까. 그런데 시행 결과는 이같은 정책 목표에 크게 못 미치는 것이었습니다. 이런 결과는 실제 정책 추진 과정에서 복잡한 이해관계 조정에 실패했기 때문에 발생한 것입니다. 의사들이 개혁의 주체가 아닌 대상이 되었기 때문에 문제라고 하셨는데, 처음에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의사들은 의식화되지 못한 그룹이었기 때문에 몇몇 뜻 있는 의사들이 앞장서서 단체를 만들고 설득시키는 과정이 앞섰습니다. 초창기에는 의사협회와 개혁세력간의 간극이 크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실거래가 제도 등 몇 가지 사건을 겪으면서, 중간 과정이 꼬이면서 서로 완전히 등을 돌리게 된 것입니다.

의료의 근대성과 의사집단

이 : 서구사회에서 제국주의와, 자본주의 병원의 탄생, 서양의학과 과학이 결합한 1870∼80년대의 역사가 굉장히 중요하다고 봅니다. 이 시기를 거치면서 우리나라에 처음으로 서양의학이 들어왔습니다. 그 다음에 식민통치를 받았고, 개방이 되고 동아시아 나라들 중에서 식민 청산을 가장 제대로 못한 나라, 서양의학과 전통의학이 가장 이원화된 나라가 바로 우리나라입니다. 식민청산을 분명히 한 나라일수록 전통의학과 민속의술이 잘 확립되어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이웃 동남아시아 국가들보다 GNP에서는 훨씬 앞섰지만 의료의 근대성이라는 문제에 있어서는 그들보다 훨씬 떨어집니다. 서양의학과 전통의학은 완전히 이원화되어 있고, 민속의술은 서양의학과 한의학으로부터 억압되어 있는 상황입니다. 동아시아 중에서 한국이 가장 심합니다. 아직도 서양의료 중심의 패러다임이 의료 문화를 지배하고 있습니다. 의료인들에게도 책임이 있는데, 서양의학을 하는 사람들은 오리엔탈리즘에 빠져있고, 한의학을 하는 사람들은 옥시덴탈리즘에 빠져있는 상황입니다.
조 : 얘기를 돌려보죠. 의료의 근대화 과정에서 중요한 특징은 한국사회의 사회경제적 조건에 적합한 의료체제를 만드는 데 적극적인 노력이 없었다는 점입니다. 과거 ‘국대안 파동’이 일어났을 때 국대안 반대 입장에서는 ‘신생 대한민국에 필요한 것은 의료인력이다’라고 하면서, 의사 인력 모두를 대학에서 당장 키워내기에는 시간과 비용이 많이 드니까, 1차진료를 담당할 의사들은 의학전문학교 수준으로 키워야 한다고 보았습니다. 그런데 국대안은 그와 반대되는 정책이기 때문에 반대한다는 논리였습니다. 정치적으로 얽히고 설키는 과정에서 반대파들은 제거되고 당시 전문학교들이 대학으로 승격합니다. 그 결과 의학교육은 전문의 양성체제를 지향하면서 결국 국민이 이용할 수 없는 고급의료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게 과연 의사들에게 득이 되었던가요? 교육기관은 늘어나고 개인적으로 투자는 해야되는데 환자는 별로 없고, 71년도에는 레지던트들이 생활고로 파업을 할 정도로 의사들의 경제난이 심각해집니다. 수요와 공급간의 그 간극은 의사들이 미국에 이민 가는 것으로 해결됩니다. 그때 개업의의 3분의 1내지 4분의 1쯤 되는 많은 의사가 이민갔는데도 국내에서는 의사가 없어서 난리라는 소리가 없었습니다. 의사가 과잉되어 있었던 것이지요. 저는 근대성 문제를 다른 측면보다는 한국의 사회경제체제에 얼마나 적합한 것이냐 하는 문제로 보는데, 전혀 적합하지 않은 고비용의 시스템이 그때부터 지금까지 계속되어 온 것입니다. 의사들은 국민에게 다가갈 수 있는 의료체계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고, 고급 의료체계를 만들어놓고 국민들에게 다가와라, 정부가 그 비용을 대라, 했던 것이지요. 문제의 본질은 여기에 있습니다.
이 : 서구사회는 1880년대 동아시아로 제국주의적 침략을 하기 전에 자기들의 의료근대성 실현을 ‘사회의학’을 통해 해결하려고 했습니다. 비교적 서구화되었던 일본은 독일의 사회형 모델을 사회위생프로그램으로 조선에 도입했고, 그렇게 근대의료가 이식되었습니다. 미 군정에 참여했던 우리나라 의학자들이 ‘문화적 제국주의’의 수행자가 되는데 철저히 전통의학을 배제하고 서양의학 일변도로 인력을 양성했습니다. 그때만 해도 우리는 민속의술을 담당할 수 있는 풍부한 인력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제대로 된 식민청산을 못한 과정에서 민속의술은 끊임없이 억압당하고 결국은 몰락하게 된 것입니다. 50년대 이후로 지금까지 우리는 사회의학 프로그램을 제대로 시행하지 못했습니다. 지금 그나마 의료개혁이라고 나온 이야기가 의료보험 통합과 의약분업인데, 엄격히 말하면 이 두 가지는 의료개혁의 과제가 될 수 없습니다. 원래 의료개혁이라는 말이 1970년대 서구에서 나왔을 때는 우리가 말하는 의료보험 통합과 의약분업과 같은 정책 과제가 아니었습니다. 의료의 근대성을 아직 우리사회에서 확립하지 못했다는 말은 사회의학 프로그램을 시행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으로 볼 수 있죠.
조 : 의권개념이 왜 허약할 수밖에 없는가 하는 문제를 덧붙이죠. 의권이라는 것은 의사와 환자와의 관계 속에서 설정되는데, 한국에서는 불행히도 의사와 환자의 관계라는 것이 사실상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서구의 경우처럼 의료이용의 보편화를 통한 의사-환자의 관계가 자발적으로 만들어지기도 전에 국가가 의료보험이라는 제도를 통해서 국가-의사-환자의 삼각관계가 먼저 형성되었고, 따라서 의사-환자 사이의 신뢰는 얻기 힘들게 되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의사들이 의권을 주장하고 나섰는데, 기본적으로는 의사가 능동적으로 환자에게 다가간 적이 있느냐 하는 문제를 제기하고 싶습니다. 의사 환자의 관계를 확실히 다지지 않으면 의권이 살아날 수 없다는 것은 너무 당연합니다. 의사들이 이것을 너무 쉽게 생각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의료’개혁인가, ‘보건’개혁인가

이 : 환자-의사 사이의 관계에 대해서 조금 더 생각했다면 의약분업을 이렇게 하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봅니다. 환자-의사의 관계는 바로 의술관계입니다. 의료제도의 개혁이 의술관계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에 대한 신중한 고려가 없었습니다. 의료개혁은 국민건강에 복무하는 의료시스템을 구축하는 일입니다. 식품영양, 환경위생, 의료 순으로 국민건강이 중요합니다. 우리 사회에서는 의료시스템을 너무 좁게 보고 있습니다. ‘보건행정학’, ‘의료관리학’ 등의 학문을 하는 전문가들이 의료문제를 연구하고 의료개혁을 준비했지만, 이들은 정부 용역 중심의 연구를 수행해왔을 뿐입니다. 이런 전문가들에게 국민 건강을 더 이상 맡겨둘 수는 없습니다. 시민단체들에 참여하고 있는 의료전문가들도 마찬가집니다. 국민들의 건강에 실질적인 관심을 가지는 담론과 사회적 연구들이 우리 사회에서 중심적으로 논쟁되지 못했다는 것을 주목해야 합니다. 앞으로 누가 이것을 이끌어가야 할 것인가가 중요합니다. 사회 전체가 의료에 대해 너무나도 많은 자원을 투자하고 있습니다. 의료가 국민건강으로 전화되려면 몇 가지 장치를 거쳐야 합니다. 서구에서는 의료개혁을 보완하는 다른 장치들이 많지만, 우리는 의료개혁 말고는 모든 장치들이 막혀있기 때문에 의료개혁이 실패하면 국민건강은 곧 끝장입니다.
조 : 원론적인 수준에서 영양이나 환경보건 부분이 건강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는 점은 인정합니다. 의료는 건강 수준 자체를 높이지는 못하지만 건강의 위기를 관리하는 기능을 수행합니다. 거기에 얼마나 많은 재원을 투입해야 적합할 것인가는 사회 구성원간의 합의에 의해 정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영국의 경우처럼 기본 서비스를 중심으로 하고 소수의 희귀한 의료를 위한 고가의 의료보다는 다수의 건강을 위한 방향으로 갈 것인가, 미국처럼 정반대로 갈 것인가. 그러나 한국 사회에서는 이것에 대한 논의를 본격적으로 진행한 적이 없습니다. 강제적으로 주어진 시스템에 많은 사람들이 체념하고 적응해왔죠. 작년 의약분업 사태는 많은 부정적인 면이 있었지만 많은 사회구성원들에게 의료문제에 대해 생각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고 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근본적으로 한국의 의료시스템에 어떤 역할을 부여하고 어떤 방향을 만들어갈 것인가가 얘기될 시점이라고 봅니다.
이 : 두 가지 문제가 있습니다. 하나는 우리 의사들은 물론이거니와 의료개혁가들 조차도 서양의료의 패러다임만 고집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고비용의 첨단 테크놀로지가 계속 병원에 들어오고 있는 상태에서, 고비용인 서양의료를 구조조정 해봐야 고비용일 수밖에 없습니다. 왜 고비용일 수밖에 없는 서양의료 패러다임으로 자꾸 의료시스템을 개혁하려 하는가, 하는 문제를 지적하고 싶습니다. 환자에게 의술선택권을 보장하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비용이 저렴한 민속의술을 제도적으로 합법화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두 번째는 의료개혁과 보건개혁과의 관계인데, 우리나라의 의료개혁가들은 보건개혁을 2차적으로 간주하거나 아니면 의도적으로 빠트리고 있습니다. 왜냐 하면 의료개혁을 강조해야, 푸코적 의미에서, 권력을 계속 장악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조 : 10년도 안되는 의료개혁 추진 역사를 보면, 개혁 추진 세력은 소수의 의사들과 몇몇의 경제학자들이었습니다. 개혁플랜은 전문가들 내에서 논의된 것이었고, 의료중심적인 성격이 강했습니다. 거기에 대한 반대 논의나 대안적인 모델 제시도 없었죠. 사회단체나 정당들도 관심이 없었습니다. 개혁추진세력이 정부의 용역을 받았기 때문에 문제가 됐다기보다 그 그룹 자체가 너무 제한적인 것이 문제입니다. 그 결과 정작 문제가 터졌을 때 이를 지원해줄 수 있는 노동조합 같은 다른 집단들이 이것이 뭔지 몰라 그냥 보고만 있던 것입니다. 개혁의 내용은 둘째치고 사회적인 연대를 형성하는 데 소홀했던 것이 아닌가 합니다.
이 : 김대중 정부가 국립 서울대에 한의과대학을 설치했다면 아마 의료개혁의 역사에 길이 남았을 것입니다. 민속의술 선택권을 합법적으로 보장한다든지 하는, 사회적 저항 없이 이룰 수 있는 개혁은 다 뒤로 미루고 왜 유통구조 하나만 가지고 의사들과 전면전을 치룹니까? 연대에 대해서 한 마디 하자면, 이제는 옛날의 민주화 동지들이 연대해 주기를 바라는 방식은 통하지 않습니다. 아까 말씀하신대로 전교조나 민노총 같은 단체들이 의료 대란 과정에서 침묵했었던 이유는 의료개혁이 자신들의 건강에 어떤 도움을 줄 것인지 자신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70년대 이후의 세계적인 조류는, 건강은 더 이상 단순히 생명을 연장시키고 질병이 없는 상태가 아니라 자기 정체성을 만족시키는 수단으로 보는 경향의 시대입니다. 자기 건강에 어떤 도움이 되는지도 확신하지 못하는 집단에 대해 연대를 바란다는 것은 시대에 뒤떨어진 생각이지요. 시민단체도 정책 위주의 개혁운동을 지양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시민단체에서 의료정책에 참여하고 있는 전문가들은 아주 소수이고 운동 방식도 지속적이지 못합니다. 오히려 출산 운동이라든지 낙태 문제라든지, 이런 식의 생활건강으로 가야 보건개혁이 되고 전반적인 서양의료 패러다임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의료의 공공성과 시민사회의 역할

조 : 우리나라 시민단체들처럼 정책에 영향을 주고 정부도 무시하기 어려운 상황은 세계적으로 드뭅니다. 정부 스스로 소비자에게 정보를 제공하고 프로그램을 고친다면 시민단체가 나설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정부가 스스로 알아서 추진할 수 있는 능력이 약하고, 누군가 정부를 압박해서 만들어야 하는 시스템입니다. 의사들 역시 그런 활동을 해본 역사가 없습니다. 그러니까 시민단체들이 나와서 활동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역할의 과잉에 따른 문제점들은 있지만 당분간은 시민단체의 역할이 필요하지 않을까 합니다. 근본적으로는 의료의 공공성을 제도적으로 확보하는 일이 필요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다수 국민의 이해와 지지가 필요합니다. 교육문제와 달리 의료개혁은 너무나 제한된 담론의 벽을 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 : 문제는 시민단체가 어떤 역할을 하는가 입니다. 여전히 서양의료 패러다임으로 할 수밖에 없다는 말씀인 것 같은데, 지금 시민단체들에 참여하고 있는 이들은 실제 다 의사들, 그 중에서도 서울대학교 출신 의사들끼리 동종교배를 하고 있는 폐쇄성을 면치 못하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나라 의사들이 가지고 있는 생의학적 패러다임은 의료제도 개혁에서도 여전합니다. 지식의 존재론적이고 인식론적인 변화는 일어나지 않고 생의학적 패러다임을 그대로 사회적으로 적용시키려는 개혁입니다. 이런 악순환은 끊어져야 합니다. 의술 선택권 문제와 민속의술의 합법화를 제도화시키는 것이 출발이 될 것입니다.
조 : 개혁추진세력들이 서울대 출신 인사들로 집중되어 있는 것이 바람직하지 못한 것은 사실입니다. 의료개혁이 그들의 힘만으로는 되지 않는다는 것은 이미 증명되었다고 봅니다. 한층 다양한 성격을 가진 여러 사람들이 모여 연대한다면 한단계 높은 차원에서 종합적인 논의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저는 서서히 되어 갈 것으로 봅니다.
이 : DJ 정부 들어서 횡행한 신자유주의는 국민들에게 결국 ‘교육과 의료는 각자의 책임’이라는 마음을 심어준 것입니다. 가장 공공적이어야 할 두 가지 사안을 국민 각자의 책임으로 돌려버리고, 국민들에게 시장 경제에서 살아남지 못하면 죽는다는 절박한 의식만을 불어 넣고 있습니다. 저는 교육개혁과 의료개혁이 김대중 정부의 가장 실패한 분야로 남게 되지 않을까 안타깝기만 합니다.
조 : 좀더 긴 역사적 관점에서 생각해 봐야죠. 지난 수십 년 동안 여러 정권에서 의약분업 논의들이 있었지만 어느 정권도 실행에 옮기지 못했습니다. DJ 정부에서 의약분업을 실시했다는 자체만으로도 의미가 있다고 봅니다. 의료문제에 대해 사회적인 논의의 물꼬를 트는 결정적인 계기를 마련해주었다는 것이 중요하다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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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찬이 본 조병희

의료개혁 정당화 탈피
학자적 면모 회복하길
조병희 교수는 한국의 주류 사회학에서 홀대를 받아왔던 의료사회학을 어렵사리 개척해온 학자이다. 초기에는 의료에 대한 역사사회학적인 연구를 보여주었던 그가 의료개혁을 이론적으로 정당화하는 역할을 충실히 맡으면서 보건행정학적 연구로 점점 편향되어가고 있는 까닭은 무엇일까. 의료 대란을 거치면서, 그도 의료개혁가들처럼 민주화 운동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인의협은 PD이고 청년의사 단체는 NL’이라는 80년대식 이념에서 벗어나, 급변하고 있는 보건의료에 관한 다양한 사회과학적 이론을 흡수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정부용역학자들의 의료개혁론을 정당화해왔던 2차적인 역할에서 벗어나, 의료사회학자 본연의 모습을 회복하기를 희망한다. 이 가능성은 그의 직장에서 폐쇄적인 동종교배 집단과 얼마나 긴장 관계를 유지할 수 있을지 여부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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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병희가 본 이종찬

폭 넓은 관심은 장점
구체적 대안은 미흡
이종찬 교수는 의학연구자이면서도 대단히 폭넓은 관심을 가지고 여러 분야에 걸친 논의를 해오고 있다. 전공분야인 의학만이 아니라, 사회과학 역사 철학 등 다른 학문분야들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현재적 논의를 흡수하면서 자신의 의학담론을 구성하고 있다. 이런 그의 작업은 의학담론과 다른 분야간의 담론을 연결시키는 작업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의 시도는 의학연구자로서는 굉장한 장점이 될 수 있으면서도 한편으로는 구체적 대안제시가 미흡하다는 점에서 단점이 된다. 이종찬 교수의 논의는 추상수준이 높은 상태에서 전개되기 때문에 실질적인 문제를 검토하고, 구체화시켜 문제를 해결하는 데에는 약한 것이다. 그의 논의를 보면, 구체적인 대안의 측면에서 그는 한발 물러서서 오히려 문제를 피해가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인상을 받는다.



약력

조병희
서울대 사회학과를 졸업하고, 미 스탠포드대에서 사회학 석사를, 위스콘신대에서 사회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계명대 사회학과 교수를 지냈으며 현재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 한국보건사회학회 회장을 맡고 있다. 저서로 ‘의료문제의 사회학’ ‘한국의사의 위기와 생존전략’이 있고, 공동작업으로 ‘보건사회학’을 펴냈다. 한국의 의사집단에 대해 사회학적 분석작업을 해온 그는 현재 계간 ‘사회비평’ 편집위원과 의료 평론지 ‘Health Care Review’의 편집위원으로 활동하면서 의료담론을 활발히 생산해내고 있다.
이종찬
서울대 치의학과를 졸업하고, 대학원에서 보건학을 공부했다. 존스홉킨스대에서 의학사상과 보건정책으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현재 아주대 의과대학에 재직하고 있다. 저서로 ‘한국에서 醫를 논한다’ ‘의사대란 이후 무엇을 할 것인가’등이 있으며, ‘새로운 의학, 새로운 삶’등의 공저와 ‘푸코와 치아’ ‘분자의학의 약속과 희망’ ‘미국의학의 위기’등을 번역했다. 의학사와 의학사상을 전공한 그는 한국의 서양의료중심 체계를 비판하고 이를 극복하기 위한 담론적 작업을 계속해 오고 있다. 이와 함께 새로운 의료문화를 건설하기 위해 철학자, 의료인, 변호사들과 공동으로 ‘몸과 마음’을 설립했고, 환자권리찾기 운동을 벌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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