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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논평 - 대한제국, 위안부, 식민지 근대화론
교수논평 - 대한제국, 위안부, 식민지 근대화론
  • 박섭 인제대 교수
  • 승인 2004.09.17 00:00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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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섭 / 인제대 국제경상학부(경제사) ©
정신대와 그 일부로서의 종군 위안부에 대한 이영훈 교수의 발언이 사회에 큰 반향을 불러 일으키고 있다. 한편 교수신문에서는 대한제국의 평가를 소재로 이태진 교수와 김재호 교수의 논쟁이 진행 중이다. 그 두 가지가 다른 시기의 다른 소재에 대한 일이지만 그것들은 서로 연계돼 있다. 그 핵심에 식민지 근대화론이 두어져 있는 것이다. 당연한 이야기이지만 후자에서는 김재호 교수의 글이 그렇다는 뜻이다.

 

식민지 근대화론에는 구별되는 두 가지의 수준이 들어있다. 하나는 근대화에서의 조선 총독부의 역할을 인정한다는 것이며 다른 하나는 근대화에서의 조선 총독부의 역할을 절대시하는 것이다. 후자의 용법은 식민지가 되지 않았으면 근대화하지 못했을 것이라는 것으로도 연결된다. 식민지 근대화론의 외부에 있는 사람들은 식민지 근대화론을 후자의 용법으로 이해하고 있는 듯하다. 하지만 실제로는 앞의 두 가지의 용법이 함께 들어 있다. 필자도 식민지 근대화론에 서지만 필자는 전자의 용법을 채택한다.

 

김재호 교수의 글은 조선왕조의 내재적 발전의 역량에 대한 과대평가를 적절히 비판했다. 김 교수의 글에 직접 나타나 있지는 않지만 어떤 사회의 발전에는 외국의 혁신을 부단히 학습할 필요가 있음을 잘 지적한 것이다. 필자는 이런 것이 식민지 근대화론의 장점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내재적 발전의 역량이 결핍됐다고 해서 조선사회에 근대화할 역량이 없었다고 볼 수는 없을 것이다. 혁신을 만드는 역량과 수입된 혁신에 적응하는 역량은 다른 것이다. 필자는 ‘혁신에 적응하는’ 조선사회의 역량 위에 조선 총독부의 역할이 부가됐다고 보는 것이 당시의 실제 모습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이영훈 교수의 주장은 한국 사회에 자기 반성을 촉구하고 있다. 필자도 한국 사회가 자기 반성에 충실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필자가 한국의 ‘국사’ 교과서의 내용을 살펴 본 일이 있다. 1945년판부터 차례로 읽어 오던 중에 1960년대 중반부터 ‘국사’ 교과서가 눈에 띄게 한민족의 우월성을 강조하게 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면 된다’는 생각을 주기 위한, 그렇게 해서 경제개발계획을 성공시키기 위한, 박정희 정부의 노력의 산물이었을 것이다. 그런 교육을 40년 정도 받으면 사회 전체가 민족적 우월감에 익숙하게 될 수 있을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살기 좋은 나라를 찾아 한국을 탈출하고 있는 현실을 고려하면 한민족의 우월감은 시대착오적이지만 한번 만들어진 이데올로기는 쉽게 사라지지 않는 법이다. 우월감에 친숙하게 되면 자기 반성에 게으르게 된다. 이런 점에서 이영훈 교수의 지적에는 큰 가치가 있었다. 이영훈 교수의 지적에 대한 그 이후의 반론이나 대다수의 언론의 반응은 그 지적의 중요성을 무시했다.

 

이영훈 교수의 언급에서 문제가 되었던 것은 위안부였다. 그날의 토론에서 위안부가 차지하는 비중은 실제로는 작았지만 토론 이후의 논쟁에서는 그것이 핵심이 되었다. 필자는 위안부에 대한 이영훈 교수의 언급에 식민지 근대화론의 편향이 반영됐다고 생각한다.

 

인간들이 두어지는 상황은 항상 다르다. 태평양 전쟁기의 한국인이 두어진 상황과 1990년대의 한국인이 두어진 상황은 달랐다. 우리는 다른 상황들에서의 인간들의 행동을 같은 방법으로 해석해서는 안 될 것이다. 태평양 전쟁기에 어떤 사람이 위안부가 되는 것과 1990년대의 어떤 사람이 매춘을 하는 것은 크게 다른 일이다. 그 때의 사람들도 자신의 처지를 개선하려는 욕구를 가졌을 것이다. 하지만 그 사람들에게는 택할 수 있는 기회가 적었고 주어지는 정보가 왜곡돼 있었다. 그리고 우리가 위안부의 증언을 존중한다면 일부는 명령에 복종해야 했을 것이다. 이 점은 배려돼야 한다.

 

외국의 가치를 정당하게 평가하고 한국인에게 자기 반성을 촉구하는 것은 식민지 근대화론의 한 장점이다. 하지만 자기 반성이 지나쳐서는 안 될 것 같다. 모든 일은 관계 속에서 일어나는 법이다. 한국이 식민지로 되었던 것은 한국인이 무능했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한국을 식민지로 하려는 일본의 집요한 공격이 있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상대의 책임을 정확히 물으면 자신의 역량도 분명해 질 것 같다.

박섭 인제대 국제경상학부(경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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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가 2004-09-21 17:18:27
일제의 식민지가 되지 않고, 당대 선진 문물과의 교류가 활발히 이루어졌다면?.
즉, 일제가 한반도 식민지에 뜻을 두지 않고,,오로지 구매력 있는 시장 확보를 위해서 경제와 문화 교류에만 치중했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