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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강의시간 - 인터넷시대의 ‘줄탁동시’
나의 강의시간 - 인터넷시대의 ‘줄탁동시’
  • 옥원호 경남대 교수
  • 승인 2004.09.09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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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원호 교수(경남대·행정학)

대학 강단에 선지 벌써 20년째다. 늙지도 젊지도 않은 어중간한 나이가 됐고 학생들도 나를 원로교수로 대접하지도 않고, 말이 통하는 젊은 교수로 끼워주지도 않는다. 처음 강의를 시작할 때는 10년만 지나면 그야말로 빈손으로 눈 감고도 수업을 할 수 있을 줄 알았지만 아직도 강의실에 들어가는 순간은 부담스럽고 특히 학기 초에는 증세가 심각하다. 농담처럼 이야기하는 ‘강의와 논문만 없으면 교수노릇도 할 만 하다’는 말이 틀린 이야기가 아니란 것을 실감한다.


학생들도 참 많이 변했다. 강의를 처음 시작한 80년대 중반은 캠퍼스도 민주화의 열병을 앓고 있었다. 수업내용과 관계가 먼 정치사회적 이슈들을 꺼내서 초보선생의 정치의식을 테스트 해보고 따분한 시간도 때워 보려는 음흉한(?) 학생도 있었고, 야간수업 후 호프집에서  인생 상담을 해보고 싶어 하는 복학생들도 많았다.

그런데 요즘은 그야말로 건조해졌다. 찾아오는 학생들도 성적이 주요 관심사이다. 4·19는 중간고사 중 하루이고 6·29는 기말고사 끝난 다음 주가 되고 말았다. 가끔씩 한국사회를 사는 젊은이로서 그럴 수 있는가, 목소리를 높여보기도 하지만 돌아오는 반응은 신통치 않다. 되짚어보면 그들에게는 태어나기도 전인 아득한 과거, ‘그때를 아십니까’ 시절이 아니던가. 대신 이들은 거대한 신자유주의의 파도에 허우적거리며 취업걱정에 떨고 있으니 고민의 강도는 그 때보다 덜할 것도 없다.


강의와 관련해서 항상 나를 고민스럽게 하는 문제들이 몇 가지 있다. 학부과정에서 계속해온 과목이 ‘인사행정론’인데 매년 이리저리 내용을 바꾸어보지만 매번 성에 차지 않는다. 대부분의 교재들이 저자들의 고심에도 불구하고 주로 제도설명이나 현실적인 이슈중심으로 설명을 하고 있어서 젊은 학생들에게 지적인 호기심이나 문제의식을 불러일으키기 보다는 따분한 암기를 강요하는 경향이 많다.


더구나 아직 경험해보지 못한 정부의 인사관리를 설명하는 것이어서 실감이 나지도 않는다. 그냥 읽어보면 될 내용을 수업에서는 무엇을 해야 할 것인지 항상 고민스럽다. 프로이드나 인지이론, 조해리창, 애니어그램 등에 관한 설명들을 덧붙여 보지만 공무원시험 준비하는 학생들에게는 오히려 번거로움만 주는 듯하다.


요즘에는 수요자 중심교육이니 눈높이 교육을 강조하고 있으니, 내용에 대한 고민 못지않게 교수법에도 신경을 써야 한다. 교육지원센터에서는 교수들을 대상으로 교수법 프로그램을 개설하고, 강의실마다 프로젝션을 설치한다. 얼마 전에는 전자칠판까지 갖추어 놓았다. 핸드폰 문자 보내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닌데 첨단기기들을 조작하면서 수업을 진행하려니 더더욱 정신이 없다.


가슴에 체증이 느껴지던 지난 학기, 큰 맘 먹고 인터넷 카페를 개설했다. 세태도 그렇지만 무언가 교감의 통로가 필요했다. 생각보다 결과가 괜찮았다. 학생들이 올린 글이 6백개가 넘었고 글마다 리플들이 여러 개씩 달렸다. 나름대로 유인책을 쓰기도 했지만 학생들 역시 소통을 원하고 있었던 것이다. 수업시간에는 숨죽이고 있던 조용한 학생들도 자기 이야기나 좋은 글들을 퍼다 날랐고 나 역시 답변을 쓰고 강의실에서 하지 못했던 이야기들을 편안하게 올렸다. 오랜만에 생맥주 앞에 놓고 쫑파티도 하고 방학 중에 수강생들과 ‘번개’를 했던 것도 기억에 남는다.


이런 것을 인터넷시대의 ‘줄탁동시’라고 한다면 지나친 자기도취일까. 내 스스로 어미닭의 ‘탁’의 구실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음을 언제나 안타깝게 생각하지만 메말라가는 사제간의 만남을 척박하고 스산한 세상 탓으로만 돌리기에는 우리는 아직 젊고 가슴은 뜨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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