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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진단_한국영화의 우울한 현실 ①위기의 징후들
기획진단_한국영화의 우울한 현실 ①위기의 징후들
  • 이은혜 기자
  • 승인 2004.09.10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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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린 점유율 40%대로 하락…수런거리는 투자시장

[편집자주] 최근 한국영화가 할리우드에 순위권을 내주면서 ‘실미도’, ‘태극기 휘날리며’ 등으로 꽃봉오리를 활짝 터뜨렸던 화려한 전성기를 마감하는 것 아니냐는 ‘위기설’이 고개를 내밀고 있다. 이번엔 몇 년마다 한번씩 등장하는 엄살 수준이 아니라, 몰락의 예비신호로 느껴질 만큼 그 심각성이 피부에 와 닿고 있다. 이에 대해 영화전문 매체들은 쉬쉬하는 분위기다. 그래도 한국영화 잘하고 있고, 성장하고 있다는 이들의 위기진단은 위기의 징후들을 애써 낙관적으로 해석하지만, 재미와 작품성을 겸비한 좋은 영화의 부재, 재래식 인력동원 구조, 치열한 경쟁체제, 투자의 감소 등이 겹쳐지면서 영화계의 추락 가능성이 예상되고 있다. 지금까지 나타난 각종 통계자료를 중심으로 위기의 징후들을 분석해본다. 

한국영화 통계지수를 좀 더 들여다보면 위기의 징후들이 곳곳에서 나타난다. 한국영화 점유율이 1/4분기 평균 73%에 달했지만, ‘태극기…’와 ‘실미도’가 완전히 막을 내린 6월에는 32.5%를 기록해 이전과 비교, 시장점유율이 50%나 축소됐다.

통계에 따르면 ‘태극기…’와 ‘실미도’가 벌어들인 순수익이 3백80억원인 데 반해, 올 상반기 나머지 한국 영화들은 무려 3백86억원의 손실 본 것으로 나타났다. 상반기 개봉작 중 ‘동해물과 백두산이’, ‘그녀를 모르면 간첩’, ‘어깨동무’, ‘홍반장’ ‘라이어’, ‘나두야 간다’ 등은 제작비 대비 50% 내외의 손실을 기록하는 등, 개봉작 34편 중 무려 22편이 극장 수입만으로 손익분기점에 도달하는 데 실패했다. 한국영화 관객 수는 전년대비, 무려 40%이상 증가했지만, 결국 이 숫자가 의미하는 건 단지 ‘태극기’와 ‘실미도’ 효과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올여름 공포물들은 최악의 흥행실패를 맛봤다. 공포물 첫 신호탄이었던 ‘페이스’와 김하늘이 ‘호러퀸’으로 도전한 ‘령’, 공포영화 전문인 안병기 감독의 ‘분신사바’, ‘인형사’ 등은 모두 개봉시 잠시 얼굴만 비쳤을 뿐, 관객의 외면만 받았다. ‘참신성이 떨어진다’는 것이 대다수 반응이었다. ‘알포인트’만이 유일한 예외로 흥행순위권에 들었다. 이는 지난해 ‘장화홍련’, ‘거울속으로’, ‘4인용 식탁’, ‘여우계단’, ‘아카시아’ 등의 호러물이 작품성과 상업성에서 모두 성공을 거뒀던 것과 극히 대비된다. 때문에 ‘한국영화, 1천만관객시대’는 이상 징후였을 뿐, 한국영화에 적신호가 켜졌다는 진단들이 나오고 있다.

외국영화에 안방 절반 내줬다

그렇다면, 올 하반기 이후 전망은 어떤가. 현재 개봉예정작들로 16편 정도가 나와있다. ‘도마 안중근’, ‘슈퍼스타 감사용’, ‘우리형’, ‘주홍글씨’, ‘발레교습소’, ‘빈집’, ‘역도산’ 등이 주요 드라마 작이다. ‘귀신이 산다’, ‘S다이어리’, ‘여선생vs여제자’, ‘신석기블루스’ 등 한국인이 가장 자주 본다는 코미디 물들도 이어진다. 이들 중 흥행예감으로 꼽히는 건 어떤 것들일까. 영화계에선 2백만 이상의 관객이 몰릴 것으로 10월에 개봉될 ‘썸’(감독 장윤현)과 ‘주홍글씨’(감독 변혁)를 꼽고 있다. 장 감독은 전작 두 편이 모두 상업적으로 성공한 바 있으며, ‘주홍글씨’ 역시 한석규 등 스타캐스팅과 웰메이드 작품으로 평을 얻고 있어 2~3백만 관객은 확보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최대 기대주로 꼽히는 영화는 12월 개봉될 ‘역도산’(송해상 감독)이다. 한일합작품으로 제작비가 최소 1백억원에 달하는 하반기 최대 규모작이다. 영화관계자들은 5백만쯤은 몰릴 것이라 내다보고 있다. 무엇보다 세 편 모두 제작규모가 크고 잘만든 헐리우드 문법을 내세우는 영화이기 때문에 어느 정도 승부수는 있어 보인다.

하지만 문제는 ‘역도산’의 코드가 올 상반기에 실패한 ‘바람의 파이터’와 같다는 데 있다. ‘바람’의 실패요인은 ‘재미’의 부족이었다. 한일합작품이 성공한 적이 없다는 점도 걸린다. 과연 ‘역도산’이 이런 요인들을 잠재우고 화려하게 떠오를 수 있을지 의문이다. 또한 이들 소수를 제외하곤 흥행예감 작품들이 눈에 띄지 않는다는 점이다. ‘슈퍼스타 감사용’, ‘우리형’ 등은 감성적으로 관객들에게 호소할만한 것으로 나타나지만, 소박한 수준에 머물 것이라는 전망들이다. 김기덕 감독의 ‘빈집’은 현재 베니스영화제에도 출품됐지만, 이전 작들에서 보듯이 작가적 작품성 인정과 상업적 성공은 반비례하기 마련이다. 내년에 개봉 예정인 ‘남극이야기’나 ‘천군’ 도 어마어마한 제작비를 투입하고 있지만 이런 추세로 갈 경우 흥행 보장을 위한 돌파구를 마련하는 게 우선이다.

한국영화에 ‘볼거리’가 없을 경우, 상대적으로 외국영화 쪽이 강세를 보인다는 것은 이미 드러난 사실이다. 즉 제로섬 관계에 있다는 것. 지난 7월 영화진흥위원회 발표자료에 따르면, ‘태극기…’와 ‘실미도’가 있던 1/4분기 외국영화점유율이 27.4%에 불과했던 반면, 이들이 막을 내린 2/4분기에는 50.4%로 급상승한 것만 봐도 단적으로 드러난다. 지금 장예모 감독의 ‘연인’은 지난해의 ‘영웅’에 이어 추석대목을 단단히 챙길 것으로 예상된다.

흔히 최근 한국영화가 이례적인 성과를 거둔 것은 ‘웰 메이드’ 작품이기 때문이라 말해진다. 즉 상업성과 작품성 모두 선점했기에 수익으로 연결됐다는 것. 물론 잘 만들어졌다 해서 흥행으로 이어지는 건 아니다. 영화평론가 허문영 씨는 “영화의 질과 흥행은 전혀 관련 없다”라고 말한다. 2004년에 좋은 작품들은 흥행권에 들지 못했던 반면, 지난 2001~2002년 ‘두사부일체’, ‘조폭마누라’, ‘가문의 영광’, ‘달마야 놀자’ 등은 평론가들의 혹평을 받은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흥행 상위를 기록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영화관계자들은 블록버스터에만 의존해 ‘획일화된’ 영화들만 나온다면 한국영화시장은 실패할 것이라는 전망들을 서슴없이 내놓는다. 전범수 방통대 교수(미디어산업)는 “블록버스터만 만들려고 하니까 내적 다양성이 계속 떨어지고 있다”라며, “현재의 구조로 가다보면 한국영화가 추락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라고 진단한다. 현재 멀티플렉스를 표방하면서도 블록버스터 영화에 대부분의 스크린을 내주고 있는 실정이다. 김경욱 세종대 교수(영화평론)는 관객이 ‘질적인 면’을 따라가지 않을 수 없다고 본다. 김 교수는 “영화의 질에 따라 관객이 움직이는 건 아니지만, 올여름 공포물이 참패한 것을 본다면 관객들도 이젠 질적인 수준을 판단하고 있다”라는 설명이다. 그는 관객수의 폭발적인 증가는 있지만, 질적인 면이 답보상태에 머물러 있는 것은 위기의 징후로 보인다고 판단한다.

투기자본의 대거철수 예상돼

이 같은 위기의 불안감들은 투자자본 시장과도 직결된다. 요즘 영화산업에 투자가 늘고 있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단적인 예로, 지난 2002년 1백억 원 넘는 제작비가 투입된 ‘성냥팔이소녀의 재림’이 대거 실패로 끝난 것을 본다면, 영화산업은 흥행 반 실패 반의 50%확률의 시장임을 알 수 있다. 조원희 국민대 교수(경제학)는 “영화산업자체가 투기적 성격이기에, 정상적인 자본이 들어오긴 어렵다”라고 말한다. 이런 자본의 성격을 감안한다면, “대박 한두개 터뜨렸다 해서 영화계를 긍정적으로 전망할 순 없다”라는 것. 영화평론가 정성일 씨는 보다 어두운 전망을 내놓는데, “한국영화시장의 양적 성장은 이미 한계에 달했다”라는 것. 때문에 정 씨는 “이제 추락할 길만 남았다”라고 진단한다. 영화계 일각에선 ‘역도산’ 등 한두 편이 올 상반기만큼 대박을 터뜨리지 못하면 자본이 대거 철수될 것이라는 전망들도 나오고 있다. 

영화진흥정책위원회가 지난 7월 내놓은 ‘2004년 상반기 한국영화산업 결산’에 따르면, “한국영화시장은 흥행의존도가 높은 것”으로 나타난다. 그리고 “안정되지 않은 시장과 버블 가능성이 있다”라고 판단했다. 그 근거는 제작자본의 강화와 질적인 면을 제고하는 제작역량이 아직 뒷받침 되지 않기 때문이다.

특히 관객들은 한국영화가 질적으로 급속히 성장하는 과정에 ‘참여’하는 행동추이를 보여왔다. 하지만 이제는 기교적 측면에서는 보여줄 실력을 다 보여준 상태다. 그렇다면 경쟁력은 ‘형식’보다 ‘내용’에서 찾아야 될 듯하다. 확실히 위기는 위기다.

이은혜 기자 thirteen@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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