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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나는 장준하를 울 수 없습니다"
"아, 나는 장준하를 울 수 없습니다"
  • 김용준 교수
  • 승인 2004.09.10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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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본 함석헌 45

'건강상의 이유'로 휴직하겠다는 내 자필의 휴직원서를 냈으니 이 휴직원이 그대로 총장의 휴직발령으로 연결되었다 해서 법적 하자는 아무데서도 찾을 수 없는 일이다. 이제 지내놓고 하는 소리이긴 하지만 이 휴직원이 다음해 2월에 새로 책정된 교수 재임용령에 의해서 해직으로 이어졌고 박정희 대통령의 시해로 소위 서울의 봄이라는 3김시대를 거쳐 다시 전두환 군사정권으로 다시 이어 지면서 실질적인 나의 해직기간이 무려 9년간이나 계속될 줄은 아무도 몰랐던 일이요 40대 후반의 실험유기화학자로서는 완전히 삶의 방향을 바꾸어 놓는 개인 차원에서는 그야말로 청천벽력 같은 일대 사건이 아닐 수 없었다. 당시 같이 해직된 연세대의 김동길 교수가 발설해 해직교수 사이에서는 널리 회자했던 하루 놀고 하루 쉬는 신세가 되고 만 셈이었다.
지금 나는 ‘내가 본 함석헌’이라는 글을 쓰고 있다. 함석헌이라는 콘텍스트에서 김용준의 해직 같은 것은 거들떠 볼 여지가 없는 당시의 함석헌에게는 일생일대의 사건이 빚어지고 있는 줄은 꿈엔들 상상이나 했겠는가.
장준하가 1975년 8월 17일 오후 1시 40분에 抱川郡 二東面 藥師峰에서 실족하여 세상을 떠났다. 그가 서거한지 벌써 한 세대가 지났지만 아직도 그의 죽음은 미궁을 맴돌고 있다. 여기서 지금 이 장준하 약사봉 추락사에 관한 여러 가지의 주장과 난무하는 가지가지의 추측은 오늘의 참여정권이 주장하는 과거사 규명에서 밝혀질 결과를 지켜보는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여기서 우리는 함 선생님의 장준하의 죽음에 대한 단장의 절규와 그 해석에 귀를 기울여야 할 것이다.
<장준하가 죽었다! 죽었다! 이 한마디가 이 8월의 老炎의 무더운 공기마냥 부쳐도 부쳐도 또 오고 또 와서 가슴을 누릅니다. 사실 나는 이 몇 해 동안을 하루도 장준하의 죽음을 생각 아니한 날이 없습니다. 그것은 여러분께서도 짐작이 가실 것입니다. 그런데 그 미리 다 알고 기대하고 각오했던 것이 막상 닥치고 보니 청천벽력 같기만 합니다. 우리 마음은 어리석습니다. 모릅니다.
이왕이면 감옥에서 죽게 하시지, 실족을 해 바위에 떨어져 죽었다. 이게 무슨 일입니까? 하나님 앞에 투정을 해보기도 합니다. 제1호의 분향을 내손으로 하고 들고 나는 조객 사이에서 이 구석에 앉았다가 저 구석에 우두컨 하다 하며 나는 한 가지 생각에만 잡혀 있었습니다. 지금 이 글을 아니 쓸 수 없어 쓰고 있으면서도 내 마음은 아직 그 촛불과 향연 사이를 맴돌고 있습니다.
꼭 있어야 하는 사람인데 왜 갔을까? 그 의지의 사나이가 그것은 왜 못 물리쳤을까? 이날껏 나하고 한 약속을 한번도 아니 어긴 이가 이번은 왜 이렇게 져버리고 말까? 그를 한번 꼭 내세워 보고 싶었는데 그가 이 나라의 정치를 맘껏 할 수 있는 길이 있다면 내가 흙덩이가 돼서라도 디디고 올라서게 해주고 싶었는데!
이런 생각을 하며 그의 시체가 누워 있는 방 밖 뜰의 뙤약볕에 땀을 씻으며 섰다 앉았다 하는 동안 어느새 내 맘속엔 이런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습니다. “내가 빼앗아간 건데 뭘 그러느냐?” 그렇습니다. 분명 하나님이 빼앗아 가셨습니다.
죄가 있어서? 아닙니다. 물론 사람이니 죄야 있을 수 있지요. 하지만 그 때문이 아닐 것입니다. 예수님 말씀 옳습니다. 그 사람의 죄 때문도 그 사람의 부모의 죄 때문도 아니고 그를 통해 하나님께 영광이 돌아가기 위해서입니다.
그렇습니다. 장준하는 생각없이 기다리고 요행만 바라보고 솔피처럼 밀려가려만 하거나 그렇지 않으면 무턱대고 떠들기만 하려는 우리로 하여금 생각하게 하기 위하여 가장 허망한 죽음으로 희생이 된 것입니다. 옥잔이 떨어져 깨지면 주부는 “어쩌지” 하고 생각할 수밖에 없습니다. 날카로운 생각의 칼로 캐 가슴팍을 욱여 들어가면 거기 더 아름다운 옥의 광맥이 열릴 것입니다.
아, 장준하야! 네가 나를 생각케 하는구나. 내가 생각을 파고 파 빈 무덤을 발견하는 날, 우리가 다같이 누리는 영원한 나라의 영광의 자리에 앉히리라!
그는 왜 죽어야 했습니까? 산에 오르다가 떨어져 죽었다지만 엊그제 심장병으로 가출옥한 그가 왜 무리한 등산을 합니까? 거의 매일같이 갔습니다. 주위에서 충고를 자주해도 듣지 않았습니다. 그럼 무엇 때문입니까? 누구는 그의 오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사실 지지 않으려는 氣의 사람입니다. 너무 무리 말라 충고하면 보통 가볍게 넘겨버렸지만 정말 속을 주는 사람에게는 “하지만 가슴이 답답해 터질 것 같은데 어떻게 합니까?” 했습니다. 그는 속에 울화가 있어 그것을 대우주에 향해 발산시키려고 산에 올랐습니다. 거긴 하나님이 계십니다. 그래 아주 엘리아마냥 불길로 승화 시켰습니다.
생각해야 합니다. 되찾아야 합니다. 죽은 가운데서 부활시켜 영원히 말하는 자를 만들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죽은 장준하를 통해 말씀하시는 것을 밝혀 바로 알아들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땅을 보지 말고 하늘을 봅니다. 말씀은 하늘에 있기 때문입니다. 서로를 건너다 보지 말고 제 속들을 봅니다. 건너편이 아닙니다. 하늘은 우리 속에 와 비칩니다.> (전집 8 : 230~234)

이 보다 더 슬픈 단장의 弔辭를 또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 함 선생님의 말씀을 음미해보면 당시의 상황과 장 선생의 처지를 이해하고도 남음이 있다. 나는 이 글을 다시 읽으면서 함 선생님은 역시 철저한 크리스챤이구나! 하는 느낌을 금할 수가 없었다. 장준하의 죽음에 대한 단장의 슬픔을 철두철미 성경에서 위로와 그 뜻을 새기고 있지 않은가.
장준하 일주기에 ‘나는 張俊河 위해 울지 않습니다’라는 추도사에서 다시 장준하를 다음과 같이 읊고 있다.

<생명은 울음입니다. 장준하는 잘 운 사람입니다. 일제시대에는 진리의 학도로 패기있게 울었고 자유당 시절에는 언론 사상인으로 깊고 넓게 울었고 5?16 후는 정치인으로 높고 깨끗하게 울었습니다. 그가 잘 울었다면 우리도 그를 위해 잘 옳게 울어주어야지요. 그러나 정말 잘 사는 것이 죽음으로 사는 것이요, 절말 잘 죽는 것이 삶으로 죽는 것이라면 울음도 참아 울음으로는 할 수 없는 울음으로 우는 것이 참 울음이요, 슬퍼함도 차마 슬퍼함으로는 할 수 없는 슬픔으로 슬퍼하는 것이 참 슬픔일 것입니다. 아! 나는 장준하를 울 수는 없습니다. 글을 쓰려고 앉아 내 앞에 그는 평소에 하던 대로 빙그레 웃음을 지으면서 한 손을 들어 밀어 제치면서 “선생님답지 않게요? 그런 것 다 집어치우셔요!” 했습니다.
8월은 장준하의 달이 됐습니다. 광복절에 장준하는 영원의 대열에 들었습니다. 거기서는 여기서 보다 완전한 이김으로 하기 위하여서 일 것입니다.
나는 장준하를 울지 않으렵니다. 나를 위해 울고 우리 자녀를 위해 울렵니다. 씨  장준하의 만세를 부릅시다. 장준하 만세> (전집 5 : 392, 395)

1977년 8월 17일 명동성당에서 김수환 추기경 침례로 거행된 장준하 선생 추모 미사에서 함 선생님은 다시 한 번 장준하를 위해 다음과 같이 울부짖는다.

<장준하는 우리 민족을 위해 잘 울어주신 분인데 이 민족을 위해 더 많이 울어줘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고 갔으니 분합니다.
그의 생애는 온통 울음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일제 때 학도병에 끌려 갔다가 거기서 탈출을 하고 그 뒤로 만주로 중국 벌판으로 다니면서 이 민족을 위해 잘 울어주었습니다. 그는 우리 마음을 대신해서 잘 울어주었습니다. 그런 그가 이 겨레를 위해 더 울어야 할 그가 가버렸으니 분합니다. 
사람이 죽으면 제사를 지내고 그 영전에 모여서 그 동안의 일들을 고하는 그런 의무가 있는데 지금 우리는 그것을 제대로 잘할 수 없으니 분합니다.
이제 장준하는 다시 살아나야 합니다. 힘있게 살아나야 합니다. 환하게 꽃피게 해서 그를 다시 힘있게 살려야 합니다.> (전집 5 : 398)

1974년 4월 어느 날 중앙정보부 변소에서 서로 눈길을 나누며 묵례로 인사를 대신했던 장준하 선생의 마지막 모습을 다시 한번 떠올리며 함 선생님의 말씀대로 지금도 살아 움직이고 있는 장준하 선생의 명복을 빌어 마지 아니한다.

* 지난 회 "지난 봄에 스미야 선생님이 세상을 뜨셨다는"의 '지난 봄'을 '2003년 2월 22일'로 바로 잡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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