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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기능과 비판의식을 회복할 때다
연구기능과 비판의식을 회복할 때다
  • 김병희
  • 승인 2021.04.13 08:4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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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깍발이_ 김병희 편집기획위원(서원대 교수·광고홍보학과)

 

김병희 편집기획위원

학령인구가 급감하는 상황에서 실용적인 차원 위주로 대학 평가가 이루어지고 있다. 이런 현실을 어떻게 봐야 할까. 정원 감축을 목표로 고삐를 죄는 교육부도 나름대로 이유는 있겠지만, 장기적 관점에서 대학의 미래를 생각해보면 안타까운 대목이 많다. 교육부는 대학기본역량진단(이하 대학진단)에서 대학이 갖춰야 할 최소 기준을 제시한 다음, 하위 10% 정도를 부실대학으로 걸러내겠다고 밝혔다. 

교육부가 제시한 일반대학의 최저 기준은 교육비 환원율 127%, 전임교원 확보율 68%, 신입생 충원율 97%, 재학생 충원율 86%, 졸업생 취업률 56%, 대학 법인의 책무성 10% 같은 6가지의 평가지표다. 6가지 지표 중에서 3개 부문에서 교육부가 제시한 최저 기준에 미달한 대학은 재정지원제한 Ⅰ유형에, 4개 부문 이상에 미달한 대학은 재정지원제한 Ⅱ유형에 포함된다. 올해의 평가에서는 학생 충원율의 비중을 특히 강화했는데, 평가에서 불이익을 받지 않으려면 대학이 알아서 입학정원을 미리미리 줄이라는 뜻이다. 교육부는 대학진단을 통과한 대학과 전문대학에만 일반재정지원 예산을 지원한다. 대학진단 결과는 3년간 유효하지만 신입생과 재학생의 충원율이 하락하지 않도록 관리해야 안정적으로 재정지원을 받을 수 있다. 

학령인구가 급감하는 상황에서 나온 정책이라는 점을 백번 이해한다고 해도, 대학기본역량의 진단 항목에 연구 영역은 왜 최저 기준을 두지 않는 것일까? 대학 평가에서 실용적 지표에만 집중되기 때문에 대학의 연구 기능은 서서히 빛을 잃고 있다. 교수의 3대 사명은 연구, 교육, 사회봉사인데 교육부의 대학 평가로 인해 연구 기능이 대폭 축소됐다. 대학의 모든 행정력이 평가를 잘 받는 데에 초점을 맞추다 보니, 각 대학에서도 교수들의 연구 역량을 중시하지 않게 된지도 이미 오래됐다. 이런 현상이 과연 바람직한 것인가? 

보다 심각한 문제는 교수들의 비판적 목소리가 사라졌다는 사실이다. 정부(교육부)는 국민의 세금으로 조성한 막대한 재정을 틀어쥐고 교수들을 효율적으로 관리할 수 있게 됐다. 저 엄혹했던 군사정권 시절에도 교수들의 비판 정신은 살아 있었다. 교수들은 수상한 시절의 부조리한 문제에 침묵하지 않았고, 이는 민주사회를 앞당기는 동력으로 작용했다. 하지만 지금은 누구도 목소리를 내지 않는다. 오로지 대학 평가뿐이다. 모든 것이 평가 위주로 돌아가기 때문에 교수들은 평가 지표를 맞추느라 목소리를 낼 여력이 없다. 정부의 재정 지원 앞에서 지성의 씨앗들이 싹도 틔우지 못하고 말라 죽어 가고 있다. 이런 현상이 정녕 바람직한 것인가? 

신입생과 재학생의 충원율이나 졸업생의 취업률을 높이는 것만이 교수의 본분은 아니지 않겠나. 평가 항목에 연구 영역의 최저 기준을 포함시키고, 교수들의 사회 비판 의식을 회복하는 문제가 시급한 당면과제다. 연구도 필요 없고 비판 정신도 필요 없다면 교수들이 존재해야 할 이유도 없다. 교육부의 재정 지원에 길들여져 어느새 고분고분하게 변해버린, 필자를 비롯한 교수들이 뼈아프게 반성해야 할 때다.

김병희 편집기획위원
서원대 교수·광고홍보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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