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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학생을 생각한다
다시, 학생을 생각한다
  • 이덕환
  • 승인 2021.04.12 08:4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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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정론_ 이덕환 논설위원(서강대 명예교수/화학·과학커뮤니케이션)

 

이덕환 논설위원(서강대 명예교수)

학생이 대학의 ‘주인’이라고 외치던 때가 있었다. 대학이 민주화 열기에 들떠 있던 1980년대의 일이다. ‘主人’과 ‘主役’의 차이를 구분하지 못했다. 오늘날 586세대의 볼품없는 我是他非(내로남불)의 뿌리를 학창시절의 그런 인식의 혼란에서 찾을 수도 있을 것이다. 이제는 학생들이 캠퍼스를 외면하고 있다. 학령인구 절벽과 코로나19 탓만 하고 있을 때가 아니다.

지난 30년 동안 대학이 외형적으로 성장한 것은 사실이다. 우골탑의 흔적은 대체로 지웠다. 화려한 건물도 많아졌고, 규모도 커졌고, 교수들의 역량도 향상되었다. 대학의 사회·경제적 영향력도 확대되었다. 대학 진학률이 세계 최고 수준이다. 심지어 대학을 경력 세탁에 활용하는 퇴직 관료·법조인·언론인도 크게 늘어났다.

넘쳐나는 학령인구와 비싼 등록금이 대학 ‘성장’의 원동력이었다. 시장경제 논리가 작용했다. 그렇다고 긍정적이기만 했던 것은 아니었다. 학생에 대한 관심은 교수들의 아집과 이기심에 묻혀버렸다. 특히 대학입시가 복마전이 돼버렸다. 대학이 교육부의 획일적?강압적 지시에 순응해버린 결과다. 부모 찬스에 무너져버린 불합리한 입시가 사회의 부담이 돼버렸다.

교육도 부실해졌다. 특성화·세계화·벤처(창업)·대학원중심·산학협력·지역혁신·융복합·4차 산업혁명 등으로 포장된 화려한 포퓰리즘 탓이다. 교수와 관료들의 은밀한 거래가 판을 쳤다. 대학은 지원금을 챙겼고, 정부는 대학을 좌지우지하는 권력을 얻었다. 그러나 학생들이 과연 무엇을 얻었는지는 분명치 않다. 실질적인 성과를 거둔 대학도 찾아보기 어렵다.

이제 대학이 정신을 차려야 한다. 대학의 정체성을 분명하게 되살려야 한다. 우리 사회의 미래를 책임질 젊은 청년을 위한 교육에 총력을 기울여야만 한다. 심지어 교수의 연구도 궁극적으로 학생의 교육을 위한 것이어야만 한다. 부실한 대학은 과감하게 정리해야 한다. 꼬리가 몸통을 흔드는 일이 용납될 수는 없다. 평생교육이 대안이 될 수도 없다.

어렵고 재미없는 것이라도 학생들의 미래에 꼭 필요한 것이라면 억지로라도 가르쳐야 하는 곳이 대학이다. 교수가 가르치고 싶은 것이 아니라 학생에게 필요한 것을 가르쳐야 한다. 학생들에게 민주주의와 과학에 대한 상식을 갖추도록 해주는 교양교육도 중요하지만 전공교육도 무시할 수 없다.

대학의 학사 운영에 학생들의 요구를 적극적으로 반영하는 것은 중요하다. 다양화·다원화를 추구해야 한다. 그렇다고 학생이나 교수에게 무제한적인 방종을 허용할 수는 없다. 학생들에게 자신의 능력을 정확하게 파악하도록 해주고, 미래의 길을 제시해주는 ‘스승’의 책임은 절대 포기할 수 없다.

학문 간의 높은 ‘칸막이’를 제거하는 노력이 절박하다. ‘문과’와 ‘이과’, 단과대학, 학과의 견고한 구분은 부끄러운 것이다. 교수들은 칸막이 속에서 안주하면서, 학생들에게는 ‘자유’를 마음껏 누려보라는 요구는 비현실적인 억지이고 무책임한 자가당착이다.

스승의 ‘권위’와 ‘교권’은 반드시 필요하다. 그러나 교수의 아집과 독선은 설자리가 없다. 학생의 인격과 인권은 최대한 존중되어야 한다. 대학 운영의 자율은 학생들에 대한 교육적 책임을 다하는 대학에게만 주어지는 사회적 보상이다. 대학의 자율은 교수의 자유가 아니라 대학의 주역인 학생의 미래를 위한 것이다.

이덕환 논설위원
서강대 명예교수/화학·과학커뮤니케이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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