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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설에 수용되고 사회에는 수용되지 못한 고통의 역사
시설에 수용되고 사회에는 수용되지 못한 고통의 역사
  • 박강수
  • 승인 2021.04.15 08:4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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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간지 리뷰_『역사비평』(134호, 2021.봄)

 

 

1991년 8월 14일 김학순 할머니가 ‘위안부’ 피해 사실에 대한 최초의 공개 증언을 했고 일주일 뒤 이영길이 죽었다. 이영길은 제국 일본에 고용돼 태평양 전쟁 기간 동안 인도네시아 수마트라 포로수용소에서 연합군 포로들을 감시하는 일을 했다. 그는 당초 계약기간이 종료된 뒤에도 그만 둘 수 없었고 전쟁이 끝난 후 ‘포로 학대 혐의’로 전범 재판에 회부돼 10년 징역형에 처해진다. 얼마 뒤 이영길은 정신 이상 진단을 받고 요양 병동에 격리 수용돼 죽을 때까지 빠져 나오지 못했다. 수용되고 수감되고 격리된 삶이었다.

 

조선인 군속의 ‘피해를 내포한 가해자성’

 

<역사비평> 134호 특집 ‘수용소, 식민주의, 인종주의’에 수록된 「수용소 이후의 수용소와 인종주의」(신지영)는 수많은 ‘이영길들’을 탐구한 글이다. ‘일제의 조선인 군속’이라는 범주로 묶이는 이들은 가해/피해의 이분법 경계에 걸쳐 있다. 그들은 식민 시기 전시 동원의 피해자인 동시에 침략전쟁의 가담자이기도 하다. 필자 신지영은 바로 이런 가해자성 탓에 “위안부, 근로정신대, 강제징용을 당했던 피식민자들에 비해 (조선인 군속들은) 조명 받기 어려웠다”고 설명한다. 이른바 “피해를 내포한 가해자성”이다. 이 중첩된 정체성은 당사자들에 고통을 안기고 이 고통은 식민지 이후에도 지속된다. 포스트모더니즘의 용어를 빌리자면 주체도 객체도 될 수 없는 ‘비체(abject)’의 고통이다.

신지영이 전하는 조선인 군속들의 삶은 참혹하다. 이들은 “자신의 의지로 생각하고 행동할 수 없는 식민지 환경 속에서 전쟁 범죄에 강제적으로 참여해야 했음에도, 전후 처리 전범재판에서 일본인보다 훨씬 높은 비율로 사형을 언도 받았다.” 아울러 많은 조선인 군속들이 수용소(포로수용소) 이후에 또 다른 수용소(형무소, 정신병원)를 전전하는 이영길의 삶을 따라갔다. 이 과정에서 식민주의가 내면화시킨 폭력성은 곪아가며 삶을 잠식한다. 시설은 바뀌었지만 근본적으로 이들을 가둬둔 구조는 ‘식민화된 관계’ 자체였던 것이다. “식민화된(수용화된) 관계는 위로부터 폭력을 동료에 대한 폭력으로 연쇄시켜 피해자들이 서로 공감∙연대하지 못하게 한다”고 필자는 분석한다.

피해자면서 가해자라는 사실, 조선인이면서 전범이라는 사실은 이중의 제약이 돼 주체성의 회복을 가로막는다. 신지영의 설명에 따르면 “가해조차 식민화된 명령에 의한 것이었기 때문에, 이른바 ‘양심적인 일본인’의 가해에 대한 반성과 달리, 조선인은 자신의 ‘가해자성’에 대한 반성조차 주체적으로 하기 어려운 위치에 놓인다.” 그들은 사죄를 해야 하는 동시에 사죄를 받아야 하는 입장에 처해있기 때문이다. 필자는 전후 귀국하지 않고 인도네시아에 남아 인도네시아 독립 운동에 참여한 조선인 포로감시원들의 흔적을 통해 해방의 가능성을 읽어내고자 한다.

 

이영길 씨를 비롯한 태평양 전쟁 시기 한국인 전범들에 대한 기록과 이야기를 담은 문창재 전 한국일보 기자의 논픽션 저서 '나는 전범이 아니다'(2005)

 

시민권을 두 번 박탈 당한 ‘노노보이들’

 

같은 시기에 태평양 건너 미국에서는 재미일본인들을 대상으로 대규모 강제수용이 이루어졌다는 사실은 묘한 대조를 이룬다. 특집의 두 번째 순서로 이어지는 권혁태의 글 「강제수용과 병역거부-재미 닛케이진과 『노노보이』의 세계」는 태평양 전쟁 시기 미국 연방 정부에 시민권을 제압당한 재미일본인들 ‘닛케이진’의 서사를 다룬다. 일본이 진주만을 공습한 뒤 루즈벨트 대통령은 ‘적성외국인’ 집단 이주에 대한 행정명령을 내려 닛케이진 12만명을 강제수용한다. 필자는 “(일본인 국적의 1세대 닛케이진뿐 아니라) 시민권 보유자인 2세들도 강제수용됐다는 점에서 인종주의에 입각한 시민권 정지 사태로 해석할 수밖에 없다”고 평한다.

이후 전개되는 상황은 더 기막히다. 강제수용 이후 미 국방부는 닛케이진 2세들을 군무 부적격자로 처리해 징병 대상에서 배제한다. 하지만 미드웨이 해전 승리 이후 미국 정부는 정책을 바꾼다. 수감된 닛케이진들에게 28개 질문으로 구성된 충성질문서를 내밀어 심사를 하고 걸러진 ‘충성파’들을 석방시킨 뒤 지원입대를 받기로 한 것이다. 충성질문지 27항과 28항에는 “일본 천황이 아닌 미국 군대에 복종할 것을 맹세하는가”라는 내용이 담겼다. 이 두 항목에 “No, No”라고 답한 ‘불충성파’가 바로 재미일본인 병역거부자 ‘노노보이’들이다.

‘적성외국인’이면서 ‘병역거부자’인 노노보이들 역시 미국 사회의 시민 공동체에서 이중으로 배제된다. 권혁태는 미국의 시민권이 두 가지 층위로 갈린다고 설명한다. 하나는 “미국적 가치와 신념을 공유하는 ‘시민적 시민권’”이다. 끝내 병역을 거부한 노노보이들은 이 시민권의 배신자다. 다른 하나는 “앵글로 색슨, 백인의 우월성에 뿌리를 둔 ‘에스노 컬처(ethno-culture)’로서 시민권”이다. 인종적인 이유로 노노보이들은 다시 한번 바깥으로 밀려난다. 병역의무 정지보다 강제수용이 먼저 이뤄진 점을 통해 유추할 수 있듯 더 높고 단단한 장벽은 후자다.

 

식민주의와 인종주의가 만나는 곳에서

 

두 편의 논문을 통해 공통으로 확인되는 것은 두 가지다. 식민주의(혹은 식민주의적 수용 정책)는 가해/피해, 시민/비시민의 정체성이 착종된 복합적 경계인을 양산한다는 점, 이 매커니즘에는 곧잘 인종주의가 동원된다는 점. 따라서 이들을 이해하는 일은 역사 속에서 드넓은 회색 지대에 놓일 수밖에 없었던 무수한 개인들을 해명해 역사의 행간에서 본문으로 불러들이는 작업이면서, 식민주의, 인종주의, 시설화와 시민권 박탈 등 근대국가의 교묘한 통치술에 대한 탐구이기도 하다. 사회에 수용되지 못하고 내쳐진 ‘비체’들과 이들을 시설화하고자 하는 권력의 충동은 현실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박강수 기자 pps@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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