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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대학교수는 아무나 하나?
기자수첩- 대학교수는 아무나 하나?
  • 김조영혜 기자
  • 승인 2004.09.07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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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인 유치하는 대학들

새 학기 들어, 교수임용 소식이 줄을 잇고 있다. 29세의 최연소 여교수가 탄생해 기대를 모으는가 하면, 정치권 인사들이 줄줄이 대학교수로 부임해 신문 동정난을 가득 메우고 있다.

 

이번 학기 교수직을 거머쥔 정치인들을 보면, 박관용 전 국회의장과 강삼재 전 한나라당 의원이 각각 동아대와 경남대 석좌교수로, 박병석 현 열린우리당 의원(대전 서구갑)은 대전대 객원교수로 초빙됐다. 대전대는 박 의원 외에도 임영호 전 대전 동구청장을 대우부교수로 임명하기도 했다.

 

대학이 이처럼 정치인들에게 교수자리를 내주는 것은 “전문성과 실전을 바탕으로 하는 학문을 선보인다”는 명목에서다. 겸임교수제가 도입되면서 현장경험을 이론에 접목시키기 위해 실무진을 겸임교수로 초빙해왔던 것을 감안하면, 그럴 듯한 말이다. 그러나 박관용 전 국회의장이나 강삼재 전 의원에게 붙은 ‘석좌교수’라는 호칭에는 대학의 답변이 궁색해 보인다.

 

석좌교수는 국내외적으로 해당 학문분야에서 뛰어난 연구업적을 쌓아온, 학계의 권위자에게 부여하는 최고 교수직이다. 송상용 한양대 석좌교수(철학)는 한국과학사학회 창립의 토대를 닦고 50여년 동안 과학의 대중화에 힘써온 것이 인정돼 지난해 석좌교수의 호칭을 얻었다. 이강숙 한국예술종합학교 석좌교수(음악사)는 한국예술종합학교를 세워 10여 년간 총장을 지내고, 우리나라 음악이론의 기틀을 세운 음악계의 거장이다.

 

이에 비교할 때, 대통령 탄핵으로 신임 국회의원들에게 보이콧을 당하고 정계에서 물러난 전 국회의장과 이른바 ‘안풍사건’에 연루돼 정계를 은퇴한 정치인에게 석좌교수란 타이틀은 걸맞지 않아 보인다. 독일 함부르크대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에게 명예박사 학위를 수여하려다가 “학위를 받을 만한 학문적 성과가 없다”는 교수들의 반발로 수여를 취소한 것과는 정반대의 모습이다.

 

정치인들의 대학진출을 곱게 보지 않는 것은, 정학 유착의 우려 때문이기도 하다.

대전대에 초빙된 박병석 현 의원의 지역구는 대전광역시 서구로 대전대가 위치한 동구와는 옆동네다. 지난 총선, 대전 동구에 자민련 후보로 출마하기 위해 동구청장직을 사퇴했던 임영호 전 구청장은 대전 동구가 표밭이다.

 

대학교수직이 퇴물 정치인들이 다시 정계로 돌아가기 위해 쉬었다가는 휴식처나 표밭으로 탈바꿈할까 우려되는 씁쓸한 새 학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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