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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비평_기도하는 선수들
문화비평_기도하는 선수들
  • 김영민 한일장신대
  • 승인 2004.09.03 00:00
  • 댓글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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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리의 복 받은 순간을 낚아채기라도 하듯 두 손을 모아 끓어 앉으며 경건하게 고개를 숙이는 스포츠 선수들! 유의하시라, 이들은 레슬링이나 탁구, 혹은 농구와 같은 게임에서 적수인 어느 '인간(들)'을 이겼다고 해서 어느 '神'에게 감사의 기도를 보내고 있는 것! 이 기도하는 선수들의 포즈가 오직 승리의 순간과 결탁하는 것은 이들이 품고 있는 신의 성격을 은근히 드러내는 것으로 극히 흥미롭기도 하다. 인간들의 직능과 활동의 장르에 따라 신들이 고르게 배치됐던 고대의 다신교와 달리, 기독교나 이슬람교와 같은 통합적 일신교의 신은 21세기 올림픽의 전 종목에 낱낱이 관여하면서 선수들의 감사기도를 바쁘게 들어줄 수밖에 없는 것!

종교인의 경우, 그 감격이 감사의 기도로 이어지는 것은 얼핏 자연스럽게 보일 수도 있다. 그런데, 내가 췌언을 무릅쓰고 이 비평적 사족을 붙이는 이유는 다만 두 가지다. 첫째, 알다시피 이 ‘자연화(naturalization)'의 기제가 이른바 '부드러운 지배와 자발적 종속'의 요체라는 사실이며, 둘째, 스포츠 경기장의 기도 풍경은 특별히 한국 선수들에게서 유난스럽다는 점.

필시 스포츠 사회학과 종교 사회학이 성글게 겹치는 영역, 그리고 이 영역이 급속히 현대화되면서 겪은 문화적 변용을 오래 탐색해야 할 것이다. 스포츠 문화가 계몽주의적 근대화의 한 갈래를 이뤘다거나, (로마의 원형경기장 황제들이나 한국의 체육관 대통령들이 고스란히 예시했듯이) 이데올로기적 국가 장치의 하위 단위로 널리 보급됐다는 사실은 이미 상식이 됐다. 반면, '기도하는 선수들'이 극적으로 연출하는 스포츠와 종교의 私通은 그야말로 개인적 열정의 유형화로 보이며, 또 그만큼 아무도 미워할 수 없는 순진한 풍경일 뿐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한편 '기도하는 선수들'이라는 집단적 표상은 고대의 전쟁 영웅상을 승계, 반복한다. 軍神 오딘이나 마르스의 제단, 그리고 관운장의 사당에 武運을 기원하거나 승전을 감사하는 종교주술적 의식은 '기도하는 스포츠 선수들'의 이미지 속에서 문화적으로 변용돼 반복되고 있는 것이다.

그렇지만, 종교와 스포츠가 극적으로 습합되는 순간의 심리학을 헤아리는 짓은 아무래도 재미없다. 무릇, 모든 심리학은 알면서 모른 체 하는 것이 오히려 묘미일 뿐이다. 설혹 그 심리학에 왜곡과 倒錯의 구석이 있다고 해도 각박하게 따지는 것은 예의가 아니다. 그렇다고 해서 종교와 스포츠가 이데올로기적으로 결합하는 방식으로 논의를 수렴하려는 짓도 역시 낡디 낡은 수작이다.

그렇다면 문제는, 잔존하는 神話가 기생하는 방식이 아닐까. 요컨대, 현대의 신화들은 스포츠를 포함한 갖은 문화산업과 그 광고적 장치들에 기생하는 것으로 연명하고 있다. 생각해 보시라. 매스컴을 타고 순식간에 퍼지는 '기도하는 선수'라는 이미지는 종교인가, 스포츠인가, 혹은 제3의 트기인가. “모든 운동은 신화적 지평을 통해서 완결 된다”는 니체의 말처럼, 현대의 유일한 운동, 그러므로 신화가 돼버린 스포츠 역시 잔존하는 신화와 종교의 아우라를 통해 번성하는 것이 아닐까. 종교가 스포츠를 축원하는 유사 종교적 儀式은 그 자체로 스포츠 산업 체계의 일부일 뿐, 그 체계의 신학적 정당화는 아닌 것!

김영민 / 한일장신대 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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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0l1455 2004-09-07 11:23:18
"스포츠 경기장의 기도 풍경은 특별히 한국 선수들에게서 유난스럽다는 점." MLB의 Barry Bonds는 홈런을 칠때마다 하늘에 감사의 키스를 보냅니다. 그리고, 많은 Hispanic 카톨릭선수들은 수시로 십자가를 손으로 그립니다. 자기에게 준 능력을 신에게 감사하는 행동이 왜 유난스럽다는 표현을 받아야 하는지요? 한국사람들은 남을 "유난히" 의식합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도 자기처럼 좀 티내지 말고 조용히 있기를 바라는 의식이 작용한것입니까?

밝음 2004-09-06 19:4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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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mtron 2004-09-06 17:46:46
저두 선수들이 기도하는 장면을 많이 봐왔는데요..
이렇게 분석을 해 놓으신 것을 보니 너무 어려워서
제 머리로는 잘 이해가 안되네여.
하지만 제 의견으로는 많은 사람들이 선수가 기도하는
모습을 보고,
"종교와 스포츠가 극적으로 습합된다",
"종교와 스포츠가 이데올로기적으로 결합하는 방식으로 논의를 수렴하려는 짓이다",
"잔존하는 神話가 기생하는 방식",
"그 체계의 신학적 정당화다" 라고 비약하지는 않는것 같네요.
단지, 어떤 선수가 감사하는 대상이 부모님일수도 있고,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일 수도 있고, 국민일 수도 있고, 애인일수도 있고, 더 나아가 그 선수가 믿고 있는 '神'일수도 있겠죠...
부족한 의견, 끝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당.

monk 2004-09-06 16:37:28
"스포츠 경기장의 기도 풍경은 특별히 한국 선수들에게서 유난스럽다는 점"은 동의하기 힘듭니다. 미국의 미식축구, 프로야구, 남미의 축구 경기등을 보면 경시 시작전 성호를 긋거나, 골세레모니로 기도하는하는 모습은 너무나도 흔하니까요. 또 한가지, "기도하는 선수들의 포즈가 이들이 품고 있는 신의 성격을 은근히 드러낸다"고 하셨는데 수능시험날 교문앞에서 기도하는 불자들의 신은 어떤 성격을 나타내는지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mhp 2004-09-05 11:19:43
기도하는 선수들..
우리 모두 한 번 진지하게 생각해 볼 사회 현상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더 많은 얘기를 하고 싶지만 생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