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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왜 나보다 덜 내는가
그들은 왜 나보다 덜 내는가
  • 교수신문
  • 승인 2021.04.09 1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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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매뉴얼 사에즈, 게이브리얼 저크먼 지음 | 노정태 옮김 | 부키 | 360쪽


이것은 절세의 폭증이 아니라 탈세의 창궐이다
페이스북의 창업자 마크 저커버그가 2018년 한 해 동안 벌어들인 소득은 40억 달러로 추산된다. 페이스북이 200억 달러의 이익을 냈고, 저커버그는 페이스북 주식의 20퍼센트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페이스북이 배당을 하지 않은 탓에 그는 이 소득에 대해 단 한 푼도 소득세를 내지 않았다. 물론 페이스북에 법인세를 부과할 수는 있지만, 유감스럽게도 페이스북의 이익은 서류상 미국이 아닌 케이먼제도에서 발생하는 것으로 되어 있고 케이먼제도의 법인세율은 0퍼센트다. 2008년 이래 매년 40퍼센트씩 재산을 불려 왔으며 현재 재산 규모가 600억 달러 이상으로 추정되는 억만장자가 그동안 세금을 전혀 안 내고 있었으며, 그것이 완전히 ‘합법적’이라는 것이다. 이것이 과연 공정한 일일까.
이것은 예외적인 사례가 아니다. 실리콘밸리의 기술기업들이 조세 도피처를 열렬히 이용하는 고객들 중 하나이긴 하지만, 제약산업의 화이자, 씨티그룹 같은 금융회사, 나이키 같은 제조업체, 피아트 같은 자동차회사, 케링 같은 럭셔리회사까지 분야를 가리지 않고 조세 회피가 광범위하게 벌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실로 “절세가 폭증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탈세가 전염병처럼 창궐하고 있는 것”이다.
저자들은 이런 불의의 용인이 충분한 정보를 제공받은 시민들이 이성적인 토론 끝에 만들어낸 결과물이 아니라는 점에 주목한다. 그래서 “세금 문제에서 불의가 승리하고 있는 것은 결국 민주주의를 부정하는 셈”이라고 말한다.

세율이 낮은데도 성장은 둔화되고 분배는 악화되었다
한때 미국은 세계에서 가장 가파른 누진세율로 조세 정의의 희망을 보여주는 등불 같은 나라였다. 1930년대 이래 반세기 동안 최고 소득구간의 세율은 90퍼센트였고, 기업의 이익에는 50퍼센트의 세율을 유지했다. 그런데도 세금이 비싸면 투자가 위축된다는 통념과는 달리, 1945~80년 기간에 연평균 2.0퍼센트의 경제성장을 누렸을 뿐 아니라, 상위 1퍼센트를 제외한 모든 소득집단이 경제성장률을 웃도는 소득 증가율을 경험하며 성장의 과실이 고루 분배되었다. 대공황 직전 미국의 상위 0.01퍼센트는 전체 세전 국민소득 중 4퍼센트 이상을 차지하고 있었지만 1975년에 이르면 그 비중이 1.3퍼센트로 줄어들어 불평등이 완화되었다. 탈세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그것을 수치스러운 일로 여기는 공감대가 폭넓게 퍼져 있었기에 일관된 정책이 유지될 수 있었다.
그러나 현재 미국은 발전된 산업국가 중 최상위 소득구간에 가장 낮은 세율을 적용하는 나라이다. 현재 미국에서 가장 부유한 400명의 소득세율은 23퍼센트로, 하위 50퍼센트가 부담하는 25퍼센트보다 낮은 수준이다. 1980년대에 레이건 정부가 최상위 구간 소득세율을 28퍼센트로 대폭 인하한 것이 그 시발점이었다. 법인세율은 35퍼센트를 유지했지만, 조세 도피처의 유령회사를 이용한 합법적 탈세로 인해 세수는 대폭 감소했다.
또한 1980년 이래 1인당 국민소득은 한 해 평균 1.4퍼센트 성장에 머물고 있으며 21세기에 접어들면 해마다 0.8퍼센트 수준으로 줄어들기까지 했다. 대다수의 소득성장률은 그보다 더 낮아서 평균 0.65퍼센트에 그쳤으며 하위 50퍼센트는 고작 매년 0.1퍼센트에 불과했다. 반면에 같은 기간 상위 0.1퍼센트는 320퍼센트, 상위 0.01퍼센트는 430퍼센트, 상위 0.001퍼센트는 600퍼센트 이상 소득이 증가했다. 이처럼 지난 30년간 미국에서 부의 집중과 경제적 불평등은 가속화했다. 상위 1퍼센트가 소유하고 있는 부의 비중은 1980년대 말의 22퍼센트에서 2018년 37퍼센트로 폭증한 반면, 하위 90퍼센트에 속하는 이들이 소유한 부는 같은 기간 40퍼센트에서 27퍼센트로 줄어들었다.
그런데 “최상위 소득구간에 압류나 다를 바 없는 높은 세율을 적용해 왔던 나라”가 “발전된 산업국가 중 최상위 소득구간에 가장 낮은 세율을 적용하는 나라”로 전락한 것은 레이건이 이끄는 공화당 정권의 탓만도 아니다. 이 세금개혁법은 상원에서 97대 3으로 가결되었으며 민주당의 테드 케네디, 앨 고어, 존 케리, 조 바이든 등도 ‘동의’에 한 표를 던졌기 때문이다. 저자들은 “조세 회피가 급증하고, 그러면 정부는 부자들에게 세금을 물리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해졌다고 우는 소리를 해대면서 부자들이 내야 할 세율을 낮추는” 패턴이 되풀이되면서 누진세가 무너졌다고 지적한다. 세금이란 “사회적 신뢰 체계 위에서 작동”하는 것이기에 집합적 행위에 대한 긍정적 믿음이 힘을 얻고 있을 때는 엄청나게 누진적인 조세 체계라 하더라도 제대로 작동할 수 있다. 반면에 이 믿음이 좌초해 버리고 나면 탈세자들의 힘은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날뛰고 법을 뜯어고치게 된다는 것이다.

지금 당장 정의로운 세금을!
이 책의 핵심적인 주장은 누진적 소득세를 복원하자는 것으로 요약할 수 있다. 역사적으로 볼 때 누진적 소득세야말로 부의 집중을 막아낼 수 있는 가장 큰 잠재력을 지닌 도구였기 때문이다. 법인세율이 낮다면 부자들은 법인의 탈을 쓴 채 소득세를 사실상 겨우 집행 가능한 소비세로 전락시키고 말 것이므로 실질적인 누진세를 위해서는 충분히 강력한 법인세가 필요하다. 여기에 막대한 부를 소유하고 있으면서도 소득세의 대상이 될 만한 소득은 그리 많이 벌지 않는 이들에게 부유세를 부과해 실효세율을 60퍼센트가 되게 하자는 것이다.
이처럼 저자들은 ‘대안 없는 비판’에 머물지 않고 당장에라도 실현 가능한 더 정의로운 조세 정책 방안을 제안하고 있다. 조세 도피처에 유령회사를 설립해 기업의 이익을 빼돌려 세금을 떼먹는 다국적기업에 대처하기 위해서는, 국제 협력과 공조를 통해 자국의 다국적기업이 어디에서 어떤 방식으로 자회사를 두고 영업하건 실질적으로 최소 25퍼센트의 세율을 부담하도록 하자는 방안을 제시한다. 즉 미국 기업 애플이 저지섬에서 2퍼센트의 세율로 세금을 냈다면 미국이 나머지 23퍼센트를 걷고, 프랑스의 케링이 스위스에서 5퍼센트의 세율만을 부담했다면 프랑스가 나머지 20퍼센트를 세금으로 물리는 식이다. 이러한 국제 공조에 참여하기를 거부하는 나라에 본사를 둔 거대 기업에 대해서도 국제적으로 합의한 최저 세율을 부담시킬 방법이 있다. 가령 네슬레의 세계시장 판매액 중 20퍼센트가 미국에서 발생하고 있다면, 미국은 네슬레가 세계시장에서 얻은 이익의 20퍼센트에 대해 과세하면 된다. 이것은 이미 오래전부터 미국 대부분의 주에서 주법인세를 징수해 온 방식이기에 의지만 있다면 충분히 실현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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