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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 역사학'의 출발 예감
'열린 역사학'의 출발 예감
  • 문지영 숙명여대
  • 승인 2004.09.0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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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생애 최고의 학술대회_2001년 전국역사학대회

매년 역사학회의 주관 하에 역사관련 15개 학회로 구성된 조직위원회가 주최하는 전국역사학대회는 현직 역사학자들과 학문후속세대들에게 최대의 축제의 장이자, 통합의 장이다. 2001년 5월 25-26일 양일간 열린 제44회 전국역사학대회는 특히 포스트모더니즘 논쟁과 역사학이 만난 중요한 대회였다.

첫째 날은 “역사에서의 공공성과 국가”라는 공동주제 발표회가, 둘째 날은 9개의 분과학회 및 5개의 조직위원회 추천패널 그리고 2개의 자유패널 등 총 16개의 발표회가 열렸다. 그 가운데서 다른 해에 비해 조직위원회의 기획력이 돋보이면서 청중에게 지적?학문적 호기심을 충족시켜줌과 동시에 인식론적 고민에 빠뜨리게 만들었던 것이 바로 추천 패널중의 하나인 ‘포스트모더니즘과 역사학’이었다.

‘포스트모더니즘과 역사학’ 발표회장은, 세간의 관심을 반영하듯, 열정과 냉정이 오고가는 격렬한 무대였다. 먼저 포스트모더니즘은 역사학에서 과연 무엇이며, 역사학은 포스트모더니즘을 어떻게 전유할 수 있는가, 과연 포스트모더니즘 역사학이 기존의 전통적 역사학에 대한 대안이 될 수 있을까에 대한 물음이 제기되었다. 이어 포스트모더니즘의 역사학에 대한 도전이 구체적인 형태로 어떻게 나타났는지, 포스트모더니즘의 도전에 대한 역사학 응전의 여러 형태를 역사이론의 측면과 각 나라 역사학의 사례, 특히 포스트모더니즘이 중국 역사학의 연구주제와 인식방법론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그리고 한국사 서술과 교육에 있어서 포스트모더니즘이 갖는 문제점이 무엇인지에 대한 발표와 토론이 이어졌다.

주로 신문화사 쪽에 서왔던 학자들과 그에 비판적인 학자들이 패널로 참여해 팽팽한 토론을 벌였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정치사를 대체시킨 사회사는 이른바 ‘아래로부터의 역사’를 확립시키며 역사의 지평을 넓혔지만, 어떤 면에서는 역사해석의 틀을 고정시켜 다양한 관점을 수용할 수 있는 길을 가로 막았고…포스트모더니즘을 이론적 토대의 하나로 도입하고 있는 신문화사는 그런 단점을 보완하기위해 여러 학문분야의 결실을 수용하여 역사학을 한결 섬세하고 풍부하게 만드는데 기여할 것”이라는 주장에 대해, “우리나라에 소개되는 신문화사는 미국계의 반사회적 문화사이며…역사기술이 어떤 총체적 설명 없이 미시적 사실의 나열에 그치는 신문화사의 주장은 탈정치를 부추기는 이데올로기적 성격을 가졌다”는 반론이 즉각 제기되었다.
 
앞으로 풀어야할 숙제가 많음에도 불구하고 이 학술대회는 한국 역사학의 미래를 위해 쌍방향적인 소통이 가능한 ‘열린 역사학’의 단초를 제공했다는 점에서 그리고 신문화사가 제기하는 다문화주의나 역사해석의 다양성, 대중적 역사서술의 긍정성을 받아들이려는 열린 자세, 대중에서 괴리된 강단 역사학과, 역사와 문학의 경계를 허무는 대중 역사학의 접점을 찾기 위해 노력했다는 점에서 일종의 전환점이었다고 봐야 할 것이다.

애초에 이 학술대회의 취지가 한국사, 동양사, 서양사 사이에 깊게 그인 경계를 허물고 서로 대화와 제언의 장을 마련하자는 것이었고, 어느 정도 성과를 거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3년이 흐른 지금 그 무성했던 말잔치를 벌였던 사람들은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그 아름다운 날의 추억이 아쉬움으로 바뀐 것은 왜일까.

문지영/ 숙명여대 서양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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