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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개 코드로 한국을 꿰뚫다…경쾌한 사회학 보여줘
15개 코드로 한국을 꿰뚫다…경쾌한 사회학 보여줘
  • 최철규 기자
  • 승인 2004.08.30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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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제의 책: 『현대 한국 사회의 일상문화 코드』(일상성 일상생활연구회 지음, 한울 刊, 2004, 440쪽)

소장파 사회학자들이 한국 사회에서 볼 수 있는 15개의 문화코드를 4년간 심층 추적한 결과물이 나왔다. 16명의 학자들은 기존 사회과학자들의 현실진단과 실천이 “근시안적이다 못해 치졸하기조차 한 경우”가 많다며 의기투합하고 있다. ‘선비정신’이 사라진 자리에 남아 있는 당파적 지식인들의 모습, 학문적으론 선험적 이론에 천착하는 모습이 오늘날 현실 세계와 괴리된 사회학의 위기를 자초했다는 것이 머리말에서 밝힌 이들의 공감대다.


거대 담론의 선험적 위상에 근거하지 않고 손에 잡히는 ‘현실의 사회학’을 추구하는 노력은 ‘일상생활의 사회학’(1994), ‘술의 사회학’(1999)에서 이미 시작됐다. 이 책은 이러한 노력들의 연장이며 문제의식의 심화이자 확산이다.


개성있는 필자들의 사유와 글쓰기를 하나로 묶어주는 핵심은 인생의 중요 통과의례가 우리 사회 특유의 자본주의 논리와 전통문화에 의해 굴절되고 있으며, 이런 현상이 사회 구성원 모두에게 동시적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것. 신문이나 방송의 일상적인 사회면 보도를 보는 것처럼 책의 내용들은 친숙하게 다가온다. 


전통 문화의 특징과 근대적 경험을 접목해서 현대 한국인들의 일상생활을 영위하는 특정 원리를 밝히려 하는 박재환 교수의 글을 지나면 ‘코드로 보는 문화 여행’이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2장에서는 일상화된 새로운 전자기술과 커뮤니케이션이 창조해낸 ‘호모 디지털 로쿠엔스’라는 새로운 인간을 만날 수 있다.


출산에서부터 10대 청소년들의 생활문화 그리고 대학과 결혼, 직업과 관련한 현대 한국 사회의 주요 쟁점들을 쭉 확인해 나가다, 10장에서는 사주카페나 로또, 키덜트 등으로 설명되는 올드 보이들의 젊은 문화 현상도 볼 수 있다.


몸짱, 얼짱 등으로 떠들썩한 몸에 대한 유행과 관광에 얽힌 사회학적 고찰을 지나, ‘현금 없는 소비 실상’을 분석하는 ‘돈의 매트릭스’에서는 가계 부채가 경제 위기의 주범이라는 구호까지 자연스레 떠올려진다. 책은 자살 바이러스, 빠른 정년, 상품처럼 매매되는 죽음 문제를 짚어보며 끝을 맺는다. 사회에 놓여진 한 인간의 삶을 한편의 파노라마처럼 쭉 둘러보는 듯한 책의 구성은 ‘일상생활’에 집착하는 필자들의 의도와 더불어 ‘사회학’에 대한 친근감을 갖게 한다.


그러나 아쉬움도 있다. 예컨대 ‘대학은 없다’에서 이수진은 “대학이 자신의 공간을 확보하지 못하고 학생들로부터 관심과 호응을 얻지 못하는 상황이 지속된다면 대학은 심각한 위기 상황을 불러올지도 모른다. 그것이 우리가 대학에게 제자리를 찾아주려는 이유다”라고 끝맺는다. 독자는 민망해진다. 이미 오랫동안 지속된 고민 그 자체를 단순 반복하고 있기 때문이다.


“구조분석 이론에 치우친 사회학의 모순을 생생한 현장의 고찰이라는 경험론적 방법으로 극복하고자 하였”지만, 생생한 현장 화면이 사태가 전개된 현장의 문제를 원천적으로 해결해주지 않는다는 점도 간과돼서는 안 될 것이다.


                                                                최철규 기자 hisfuf@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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