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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제 느낌 Good, 事前워크샵 도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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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백승욱 한신대
  • 승인 2004.08.30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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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생애 최고의 학술대회_2002년 동아시아문화공동체포럼

여기서 가장 인상 깊었던 학술대회로 소개하려는 것은 이제 겨우 두 번 치뤘고, 앞으로 또 어떤 여정을 걸어갈지도 미지수인 그런 모임이다. 이름도 생소할터인데, 처음 듣는 사람은 모두 고개를 갸웃할 만한 ‘동아시아 문화공동체 포럼’이다. 그 첫 대회는 2002년 2월 서울에서 열렸고, 매년 개최하려던 계획이 사스 때문에 조금 지체되었었는데 그래도 해를 넘기지 않고 두 번째 모임이 2003년 세모에 베이징에서 개최되었다. 말은 동아시아이지만, 아무래도 처음에는 참가자가 한정되기 마련이어서 현재는 현대 중국에 관심이 있는 한국과 일본 학자와 중국의 바깥에 관심이 있는 중국의 비판적 지식인들, 그리고 이 세 지역에 모두 관련이 있다고 할 수 있는 대만의 지식인 등, 대체로 ‘중국’이라는 공통관심사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모여 있다. 구성이 다양해서 한계도 있지만 서로 이야기할 거리가 적지 않다는 장점도 있다. 이런 조건을 고려해서인지 첫 대회는 ‘신자유주의하 동아시아의 문화적 소통과 상생’이라는 주제로 열렸고, 두 번째 대회는 ‘동아시아에서 대안적 역사경험’이라는 주제로 열렸다. 두 대회가 서로 공유하는 공통 경험의 폭을 확대하려는 것을 중요한 목적으로 설정하고 있음을 읽을 수 있었다.


나는 이 포럼에 다소 수동적으로 발을 담근 셈이다. 이 모임이 열리기 일년여 전 내가 관심있게 대담을 했던 중국의 젊은 지식인 왕후이(汪暉)가 이 포럼에 참석하니 토론을 맡아달라기에 왕후이와 다시 논의를 이어갈 수 있을 것 같아 기꺼이 그 요청에 응했다. 이듬해는 주발제자의 하나로 등떠밀려서 ‘20세기 중국의 역사적 경험과 한국사회’라는 주제로 중국에 말걸기를 시도하게 되었다. 그 발표에 대해서 이번에는 왕후이가 토론을 맡았다.


한국과 중국 그리고 일본이라는 다양한 지적 토양과 문학, 역사,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을 전공한 학자들이 서로 교차해가면서 아는 것과 알고 싶어 하는 것을 발표하고 토론하는 방식이 단지 구색 맞추기가 아니라 서로 이해할 수 있는 접점을 넓히려는 시도라는 점에서 참신했지만, 그보다 훨씬 더 특이한 것은 이 포럼 전체가 구성된 방식이었다. 이 포럼은 학술대회면서도 전체를 훑어보면 작은 축제와도 같은 느낌을 주게 짜여져 있었다. 첫 대회의 경우, 첫날은 주로 대학 주위의 학자들이 중심이 되어 하루 종일 학술 논의를 진행하였지만, 둘째 날에는 ‘지하철1호선’의 중국과 일본 공연에 대한 김민기씨의 발표 그리고 여기에 대한 일본과 중국 인문학자들의 토론이 있었다. 이어서는 한·중·일의 화가, 시인, 소설가, 만화가, 미술가 등 예술계 인사들이 얽혀서 서로의 창작의 지평을 공유하는 모임을 마련했다. 셋째 날은 아예 원주의 토지문학관으로 자리를 옮겨 판소리로 시작하여 동아시아 한마당 잔치로 이어지는 기획을 이끌어 갔다. 베이징에서 열린 두 번째 포럼도 마찬가지였다. 두 번째 날은 문화를 주제로 한 토론이 이어진 후, 셋째 날은 현대문학관에서 민간문예 공연이 이어지는 방식을 택했다. 예술과 문화에 대한 토론과 공연이 학술대회의 부수행사가 아니라 ‘소통’이라는 주제를 내밀하게 만들어주는 속살과도 같은 소임을 해준 것이다. 우리 같은 사회과학자들은 아직도 이런 방식에 어색함을 느끼지만, 공통적 이해의 기반은 이성과 감성이 동시에 작동하는 공간에서 형성된다는 사고에 조금씩 익숙해지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또 하나 특이한 점은 본 대회에 가기까지 소통거리를 마련해가는 과정이다. 둘째 해 포럼의 발표를 맡고 나서 아직 대회가 반년이나 남았을 때, 사전 워크숍을 열테니 완성된 원고를 들고 오라는 주문을 받았다. 어쩔 수 없이 궁시렁대면서 원고를 마련해 갔다가 날카로운 비평들을 많이 들었는데, ‘그래 도움은 많이되었다’며 이제 한시름 더는가 했다. 그러나 서너달 지나 또다시 2차 워크숍을 연다고 통보받아, 같은 원고를 들고 갈 수는 없어 발표원고를 거의 새로 쓰다시피 할 수밖에 없었다. 두 번의 사전 워크숍 과정을 거치면서 과연 내가 쓰고 있는 글이 역사적 경험과 문화가 다르면서도 유사한 사람들에 대한 제대로 된 말걸기의 방식인지 되돌아보고 다시 또 되돌아 볼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 그 덕에 포럼은 단지 내 이야기만 던지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으로부터의 확실한 관심과 반향을 이끌어 내고 소통의 단서들을 잡아낼 수 있는 의미있는 공간이 될 수 있었다.


다음번 모임은 장소를 일본으로 옮겨서 열릴지, 아니면 다시 한국으로 돌아와 열릴지 논의가 진행 중이지만, 우리를 되돌아보고 상대방을 다면적으로 이해하려는 노력 속에서 진행되는 동아시아 담론의 지평은 이런 시도를 통해 조금씩 더 확장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백승욱 / 한신대 · 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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