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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 투기와 직업윤리의 실종
땅 투기와 직업윤리의 실종
  • 심영의
  • 승인 2021.04.06 08:3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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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영의의 문학프리즘 -28

부를 소유하고자 하는 인간의 욕망은 어쩌면 자유스러운 것이어서 투자 혹은 투기에 대한 역사는 오래고 질기다. 그러나 탐욕에는 반드시 끝이 있기 마련이고 직업윤리를 망각한 공직자들은 모두 패가망신에 준하는 처벌을 받아야 한다는 것만은 분명하다. 물론 LH 직원들의 신도시 예정지구에 대한 미공개정보를 이용한 토지 투기나 그밖의 다양한 부패범죄에 연루된 이들 중 누군가는 용케 법망을 빠져나가기도 하겠고, 성난 민심에 부응하지 못하는 조사결과가 우리를 허탈하게도 할 것이다. 

LH 직원들은 투자도 하지 말라는 말이냐는 일부의 항변을 들으면, 그들에게선 눈곱만큼의 직업윤리도 찾아볼 수 없는 파렴치한 자들이라는 생각이 든다. 집값 폭등으로 절망했던 수많은 사람들의 폭발한 민심이 폭동으로 나아가지 않는 것이 기이할 정도다. 하긴 지금 분노하는 사람들 대부분이 자신들이 저러한 위치에 있어도 투기를 하지 않았을 거라는 확신도 사실 없지 않은가. 오래된 부패의 구조가 여전하고 윗물이 썩었으니 아랫물이 맑을 리 없겠다. 

필자에겐 김대중 정부의 경제부총리였던 이헌제가 부인의 땅 투기 의혹으로 끝내 자리에서 물러났던 일과 이명박 정부에서 환경부장관 후보자로 국회 청문회에 섰다가 땅 투기 의혹에 대한 의원들의 추궁에 자연의 일부인 땅을 사랑하는 것일 뿐이라던 박은경의 기억이 또렷하다. 그들뿐 아니라 땅을 사랑했던 우리 사회 여러 분야 리더들이 많고 많아서 찬찬히 모두 찾아보면 대백과사전 수준의 인명사전 한 권쯤 만들 자신도 있다. 

임진왜란을 당하여 일본으로 끌려간 조선인 포로는 대략 10만 명이 넘는다. 그때 히젠나고야 성으로 끌려갔다가 다시 포르투칼인의 노예로 팔려가고 마카오와 인도 고야를 거쳐 네덜란드 암스테르담까지 전전해야 했던 한 여성 인물(수향)의 기구한 삶을 다루고 있는 유하령 역사소설『세뇨리따 꼬레아』(나남,2017)에는 암스테르담의 튤립 투기 이야기가 나온다. 

터키에서 유럽으로 유입된 튤립은 귀족들의 기호품으로 인기를 끌다가 급기야 이듬해 수확할 알뿌리의 선물거래가 시작되면서 투기가 조장되어 1633년에는 너나없이 선물거래에 몰려들었다. 이러한 현상은 튤립 가격이 집 한 채 가격과 맞먹는 상황에 이르자 1636년에 절정에 달하여 이중 삼중의 문서거래가 행하여졌고, 1637년 2월 마침내 공황을 일으켜 튤립 값이 폭락하고 만다. 끝없는 탐욕의 결과 많은 이들은 패가망신 수준의 처참함을 경험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경험에서 교훈을 찾는 경우는 별로 없고 새로운 투기가 사람들의 욕망을 자극하고 사람들은 또 불나비처럼 몰려들어 아귀다툼을 벌인다. 

우리 사회에서 토지 혹은 아파트에 대한 투기는 언제나 당국의 규제나 민심의 폭발에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발각되고 처벌받아도 정년까지 받을 월급을 상회하는 수익을 냈다는 일부 LH 직원들의 반응을 보면 우리 사회 공직 부패에 대한 예방과 처벌이 얼마나 허술한가 하는 것을 방증한다. 그들은 그들보다 더 많은 권력과 부를 쥐고 있는 자들의 불법과 부정한 방식의 투기거래를 통한 부당이득이 아무렇지 않게 이루어지는 것을 수없이 목도했을 것이다. 운이 나쁘면 어느 한순간 여론이 들끓고 그러면 단속과 강력한 처벌이 운위되지만 이내 잠잠해지는 것을 경험한 그들은 우리라고 못할 게 있느냐는 생각을 했을 것이다. 그래서 왜 우리만 가지고 그러느냐라든가 실력 있으면 우리 회사에 들어오라는 비아냥을 아무렇지도 않게 발설하는 것일 게다.

그나마 다행스럽게도 내부고발자와 시민단체의 감시가 작동하고 있는 것은 망국으로 가는 길을 조금 늦추고 있다는 생각이다. 건강한 내부고발자에게 로또복권 당첨금에 버금가는 보상과 확실한 신변 보호 강화를 통해 그들 스스로는 작동되지 않는 직업윤리를 견제할 수 있으면 좋겠다. 좌우와 상하를 막론하고 부패가 너무도 구조적이어서 다른 것은 기대할 것이 없다.
 

심영의(전남대 겸임교수. 문학박사. 소설가 겸 평론가)
심영의(문학박사. 소설가 겸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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