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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 화두로 한 사유의 盛饌 기대
‘생명’ 화두로 한 사유의 盛饌 기대
  • 김재환 기자
  • 승인 2001.05.03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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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05-03 11:17:33
"우리의 경우 말의 엄밀한 의미에서 본격적인 에세이가 참으로 희귀하다. 그것은 체계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분방하게 개성적으로 사고하는 것을 암묵적으로 억압하는 지적풍토와 연관된다. 천박한 날림글이 횡행하는 우리 처지에선 에세이가 각별히 육성할 가치가 있는 홀대된 분야라는 것만은 분명하다고 생각한다.”

유종호 교수(연세대 국문학)가 본지 194호에 기고한 위의 글에서 말한 것처럼, 우리 사회에서 에세이는 분명 오도되고 호도된 장르임에 틀림이 없다. 한 문학평론가의 말을 빌자면, “소녀취향의 싸구려 에세이”거나 “현학적 지식인의 싸구려 고백, 뿌리없는 문사의 역겨운 자기노출”의 글이 ‘에세이’로 취급받고 있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자유로운 ‘시도’로서의 에세이

‘에세이’의 시작은 ‘수상록’이라는 ‘수상쩍은’ 제목으로 우리나라에 번역됐던 몽테뉴의 ‘에세(esseis)’로 시작되었다는 것이 정설이다. 그가 책의 제목으로 삼은 ‘esseis’는 시도, 시험, 연습을 뜻한다. 즉, 자유롭고 분방한 사고로 어떤 견해나 개념을 시험해보기 위해 쓰여진 글이라는 의미이다. 철학적 저술이나 문학평론에 부제로 붙는 ‘試論’이 에세이에 보다 가까운 용어이다.

몽테뉴는 ‘에세’에서 “나 자신이 바로 내 책의 소재”라고 말한다. 르네상스의 인본주의를 거친 ‘근대인’ 몽테뉴가 당당하고 솔직하게 드러내는 ‘나’라는 말 속에는 중세적 보편주의의 그늘에서 벗어난 ‘근대적 개인주의’가 짙게 배어있다. 그런 의미에서 에세이는 세계 앞에 홀로 선 개인의 내면을 드러내는 장르라고 할 수 있다. 일찍이 에세이에 주목했던 문학비평가 루카치가 말한 대로, “스스로를 생각하고 발견해서 자기 자신으로부터 고유한 것을 만들어내는 예술형식”인 것이다.

에세이의 이런 주관적 성격은 지식인의 글쓰기가 ‘학술논문’의 형식을 띠고 있는 풍토에서 일정한 비판적 의미를 던져준다. ‘학문 제도’ 안에 포섭되는 학술논문의 글쓰기에서는 주체의 내면과 주관적 사유가 배어들 틈은 거의 없다. 개인의 내면은 억압되고, 주체는 메마른 형식주의 속에 익명화된다. 우리시대에 에세이가 요청되는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다. 에세이는 추상적인 논리와 메마른 합리성만이 앙상하게 드러나는 글이 아니라, 섬세한 마음의 무늬와 사유의 깊이를 보여주는 글인 것이다.

본지의 학술에세이 공모전은 논문적 글쓰기에 대한 반성에서 출발했다. ‘삶과 세계에 대한 지적 명상’이라는 에세이 본래의 의미를 되살려, 우리 시대의 과제에 대한 지식인들의 독창적 사유를 이끌어 보자는 취지로 기획된 것이다.

공모전에 굳이 ‘학술’이라는 부가어를 덧붙인 이유는 잘못된 ‘에세이’의 의미를 바로잡아 ‘지적 성찰’이라는 의미를 담기 위함이다. 이 공모전에는 이영수 발행인과 박영근 주간(중앙대)과 함께 박진도(충남대 경제학), 안병욱(가톨릭대 역사학), 김교빈(호서대 철학), 이필렬(방통대 과학사), 김호기(연세대 사회학) 교수 등이 조직위원으로 참여하고 있다.

이번 공모전의 주제인 ‘생명’은 인류가 풀어나가야할 우리시대의 가장 중요한 지적 화두 중의 하나이다. 점증하는 생태계 위기와 생명공학의 질주는 우리에게 ‘생명’의 본질에 대한 지적 성찰을 요구하고 있다. 안락사를 허용했다는 최근의 외신보도는 생명이라는 자연의 질서에 인위적 한계를 설정할 수 있다는 인간의 ‘신적 질서에 대한 도전’으로 해석된다.

대상 1천만원 상금 내걸어

이러한 과학문명의 발전은 그 바람직한 방향을 인문학적 사유로부터 조회받지 않으면 통제불능의 ‘위험사회’를 초래할 가능성을 배제하지 못한다. 동시에 과학문명의 변화를 아우르지 못하는 인문학은 새로운 시대의 윤리를 모색하는 데 필연적으로 실패할 것이다. 바야흐로, 생명의 문제는 간학문적, 학제적 사유의 과제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김재환 기자 weibliche@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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