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3-28 18:20 (목)
조선의 국정철학, '존각 봉모당' 자료로 살피다
조선의 국정철학, '존각 봉모당' 자료로 살피다
  • 교수신문
  • 승인 2021.04.09 09:5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저자가 말한다_『조선 왕조 존각 봉모당의 자료 연구』옥영정 외 6인 지음 | 한국학중앙연구원출판부 | 332쪽

“세조와 숙종 두 조정에서는 규장각이란 명칭만 있고 설치되지 않아, 송나라의 용도각(龍圖閣), 천장각(天章閣)의 제도처럼 어제(御製)를 봉안할 곳이 없었다. 이에 내원(內苑)에 규장각을 건립하였고, 열성의 신장(宸章), 보한(寶翰)을 별도로 봉모당에 봉안하였다.”

순조 21년(1821) 실록에 기록된 봉모당 설치의 배경이다. 봉모당은 정조 때 설치된 존각으로, 즉위 직후인 1776년 3월 10일에 선대왕(先代王)의 어제(御製), 어필(御筆), 모훈서(謨訓書) 등을 보존하기 위하여 세워졌다. 국왕의 저작물인 어제류(御製類) 서적의 관리는 특히 정조의 규장각제도 시행이후 체계적으로 전환되었다. 정조는 창덕궁 후원에 규장각을 건립하면서 그 부속 건물로 봉모당을 지어 역대 국왕의 유물들을 보관하게 하였다. 1780년대에 작성된 『봉모당봉안어서총목록』에 의하면 봉모당에 보관되어 있던 자료는 역대 국왕의 어제, 어필, 어화, 고명, 유고, 선원보, 선원세보, 국조보감 등 총 5,439종에 이른다. 

이번에 출간된 『조선 왕조 존각 봉모당의 자료 연구』는 한 해 전에 출간된 『왕실서고 봉모당의 자료 연구』(김문식 외 지음, 장서각한국사강의 13)에 이어지는 것으로 장서각한국사강의 시리즈의 17번째 책이다. 2019년의 『왕실 서고 봉모당의 자료 연구』는 존각의 위상을 지님과 동시에 왕실 서고의 역할을 한 봉모당 자체에 대한 연구와 봉모당에 소장된 자료의 연구로 구성되었다. 봉모당의 설치과정과 역사적 함의, 특징, 수집과정과 함께 자료 중에 봉장서목, 영조 어제, 국왕 어필, 어화, 인신, 책문, 석판 등 자료의 형태적 유형별로 전반적인 내용을 살펴볼 수 가 있다. 이번  『조선 왕조 존각 봉모당의 자료 연구』는 봉모당 소장 자료에 대한 보다 심화된 내용으로 대표적인 어제서류를 중점적으로 살펴본 것이다. 총 6종의 전적류와 봉모당 장서인이 압인된 자료군을 대상으로 삼았는데 『국조보감(國朝寶鑑)』, 『열성지장통기(列聖誌狀通紀)』, 영조대 어제훈서류(御製訓書類), 열성어제집(列聖御製集) 편찬, 무안왕묘비(武安王廟碑)의 어제어필(御製御筆), 지석류(誌石類) 탁본(拓本), ‘봉모당인’ 압인본(押印本) 등을 주제로 총 7인의 연구자가 참여하였다. 봉모당 자료의 의미와 가치를 서지학, 역사학, 한문학, 미술사학 등 다양한 학문 영역에서 연구하여 소개하고 있다.

서지학부터 미술사학까지 다학제연구

각 내용을 살펴보면, 먼저  『국조보감』을 다룬 연구에서는 서지학적인 관점에서 조선 세조부터 순종 대까지 모두 여섯 차례에 걸쳐 책 간행이 이루어지는 과정을 정리하였다. 역대국왕의 업적 가운데 선정을 모아 후세의 왕들에게 교훈이 되도록 편찬한 역사서로서 다소 복잡하기까지 한 『국조보감』 편간의 추이를 이해할 수 있다. 아울러 『봉모당봉장서목』 등에 수록된 『국조보감』과 현존하는 자료의 관련성을 실증적으로 검토함으로서, 국왕의 저작과 글씨 등의 문헌을 정리한 첫 번째 공식기록인 봉모당서목의 중요한 의미를 확인하는데 도움이 된다.

조선시대 왕과 왕비의 행장(行狀), 비명(碑銘), 지문(誌文), 죽책(竹冊), 옥책(玉冊), 시책(諡冊), 교명(敎命) 등 공식 기록을 결집한 『열성지장통기』에 대한 체계적인 분석도 이루어졌다. 이 책에서는 『열성지장통기』의 내용과 함께 숙종 대부터 고종 대까지 연대기 자료에 실린 기사들을 중심으로 그 편찬 및 간행 과정을 왕대별로 정리하였다. 새로 편찬된 지장(誌狀)을 인쇄하여 기존 자료에 추록하는 방식이 정조대 이후부터 채택되고, 『성종실록』부터 왕실의 전기 자료가 실록에 부록된 것과, 인조 대 이후 정형화되면서 선왕의 업적을 파악할 수 있는 교육 자료로 활용된 것도 이번에 새로 밝혀진 것이다.

영조대 어제훈서(御製訓書)의 현황과 가치를 정리한 글에서는 어제훈서가 편찬 주체인 영조의 국정 운영 철학이나 사상을 해명할 수 있는 자료로 제왕학 수립을 의도하였을 것으로 판단하였다. 훈서의 간행이 세자의 훈육이나 신민(臣民)에게 특정 사안에 대한 당위성을 알리는 1차적인 목적 외에도 그 간행 과정에서 이루어지는 관원들과 논의 및 강론을 통해 새로운 제왕학 수립 과정과 통치의 지향점을 잘 보여준다는 점을 지적하였다.

『열성어제』로 대표되는 조선 국왕의 어제집 편찬을 조선 전기부터 후기까지 통시적으로 고찰한 글에서는 어제집 편찬이 인조대에 본격화된 사실과, 숙종의 『자신만고(紫宸漫稿)』 이후로 선왕의 어제집을 편찬하여 기존의 『열성어제』와 합쳐 간행하는 것이 전례가 되었음을 밝혔다. 특히 『열성어제별편』이 영조대 숙종의 어제 별편을 따로 편찬한 관례에 따라 영조, 정조, 순조, 익종의 별편이 편찬되었다는 사실도 확인할 수 있다. 

봉모당에 봉안되었던 어필 탑본 2종을 서예사적 관점에서 자세히 다룬 글은 수많은 역대 임금의 어제어필 비지(碑誌) 탑본(搨本) 가운데 무안왕묘비(武安王廟碑) 비문에 대해 고찰한 것이다. 1785년(정조 9) 11월 15일 도성 동남쪽의 남관왕묘와 동관왕묘에 각각 세긴 무안왕묘비(武安王廟碑)의 건립과정과 그 절차 그리고 정조가 관왕묘비를 세우게 된 동기까지 밝힌 이 연구는 봉모당 소장자료로 이루어질 수 있는 연구가 얼마나 무궁무진한지 가늠해 볼 수 있는 연구이기도 하다. 

봉모당 소장 탁본 중 지석의 제작과 탁본 및 장황 방법을 의궤 기록과 상세하게 비교 고증하여 왕실 탁본 제작 과정과 특징을 고찰한 글도 주목된다. 의궤의 내용분석을 토대로 석재의 채취부터 시작되는 탁본의 제작 과정을 탁본의 분아(分兒, 관리들에게 나누어주는 일)에 이르기까지 여덟 단계로 나누어 검토하였다. 전통적인 방식으로 제작되는 지석의 제작과 탁본 및 장황 방법에 대한 고증이라는 측면에서도 시사하는 바가 크며 관련, 연구자나 제작자들이 실질적 도움을 받을 수 있다.

마지막으로 장서각 소장 전적 중 ‘봉모당인(奉謨堂印)’이 찍힌 225종을 분석한 연구는 봉모당장서의 형성과 전래를 실질적으로 뒷받침할 수 있는 연구로서 주목된다. 장서인이 압인된 서적의 현황과 함께 시기별, 주제별로 구분하여 특징을 살펴보았으며, 대표적 서적의 유형은 실록, 의궤, 책문, 만장, 갱진록 등의 문헌과 내사본으로 전해진 것임을 밝히고 있다. 

제왕학 수립을 의도하다

전통적인 서목학(書目學)에서 다루고 있는 연구의 범위는 매우 넓지만 여러 가지 이유로 구체적인 기록된 내용과 그 실물 서책을 연결 짓고 분석한 연구가 진행된 것은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봉모당 서적의 전반적 규모와 연혁 그리고 구성내용에 대한 기초작업을 바탕으로 한 현존 장서의 본격적인 분석과 연구는 이제 시작이라 할 수 있다. 이와 병행한 실제적인 검토가 좀 더 필요한 시점에서 『조선 왕조 존각 봉모당의 자료 연구』는 체계적인 기획과 연구방법을 보여주는 사례로서 의미를 지닌다. 이 책과 함께 2019년 12월에 출간된 『왕실서고 봉모당의 자료 연구』, 2018년 장서각 특별전 도록 『봉모(奉謨)』 그리고 2011년과 2012년에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에서 편찬한 『봉모당도서목록(奉謨堂圖書目錄)』 영인본 및 해제본을 함께 보시기를 권한다.

 

 

 

 

옥영정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고문헌관리학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