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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이라는 우주
식물이라는 우주
  • 교수신문
  • 승인 2021.04.02 0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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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희경 지음 | 시공사 | 552쪽

식물학자가 펼치는 식물의 일생에 대한 가장 섬세한 이야기
“나의 하루는 영하 196도 액체질소를 보온 통에 담는 것으로 시작된다”
처음 만나는 현장 식물학자의 일

이 책은 식물이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방법에 대한 세밀하고도 적극적인 식물학자의 탐구 일지다. 아주 작은 점 하나인 씨앗에서 연둣빛 싹이 터져 나오는 과정부터 뿌리는 어떻게 아래로 뻗는지, 잎이 차례차례 돋고, 꽃이 피어 씨를 맺으며 노화하기까지, 알고 보면 더욱 흥미로운 식물의 일생을 담았다. 또한 뿌리 내린 곳에서 주어진 환경과 상호작용 하는 법과 병원균이나 바이러스의 침입에 대처하는 방식 등 식물의 전 생애에 걸쳐 일어나는 거의 모든 생명현상을 다룬다. 우리 주변의 식물은 늘 같은 자리에서 푸릇푸릇함으로 안정감을 선사하니 평화로워 보일 수 있다. 하지만 볕이 너무 따갑거나 날씨가 춥다고 해서 움직여 피하지 못한다. 그렇다면 식물은 환경의 악조건 속에서 어떻게 살아남을까? 동물과 전혀 다르게 생을 이어가는, 가만한 식물의 생동감 넘치는 활약을 읽으면 놀라움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씨앗이 잎을 틔우는 신호는 무엇일까? 풀풀 날리는 꽃가루의 목적지는? 양파처럼 생긴 수선화 구근은 왜 냉장고에 넣어두지? 식물의 노화는 자연스러운 현상일까, 식물의 의도일까? 죽지 않는 식물이 존재할까? 낙엽은 왜 떨어지지? 식물도 면역체계가 있나? 식물은 카페인을 왜 만들까? 소금물로 토마토를 키우면 짠맛이 날까? 식물도 감정이 있을까? 그리고 우리 집 식물은 왜 시들까? 저자는 수많은 궁금증을 냉철한 식물학자의 시선으로 하나하나 풀어간다.
매일 씨를 심어 때맞춰 물을 주고, 떡잎이 난 식물을 하나하나 분갈이하는 실제 식물학자의 일상이 어우러진 다감한 글들이 다양한 식물 이야기의 문을 연다. 식물에 파고든 과학자들의 치열한 연구와 실험 역시 흥미진진하게 담겨 있다. 식물의 일생과 식물학자의 일을 찬찬히 들여다보면 식물 연구가 우리의 앎과 삶을 어떻게 바꾸었는지 살펴볼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어디에서도 볼 수 없던 생생한 자료와 따뜻한 느낌의 세밀화가 함께 실려 더욱 풍성한 초록의 세계를 보여준다.
식물은 기후변화로 한층 더워진 여름, 더욱 추워진 겨울의 혹독한 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해 끊임없이 스스로를 변화시키는 신호들을 잎 끝에서 뿌리 끝까지 쉴 새 없이 전한다. 조용하게 생명력을 뿜는 푸릇한 생명에 귀 기울이는 동안 식물학자를 꿈꾸는 학생들은 과학자의 일을 미리 경험할 수 있다. 또한 식물을 키우는 데 관심 가진 이들이라면 우리 집 반려식물을 관찰하고 이해하면서 더욱 즐겁게 시간을 보낼 수 있고, 식물이 보내는 작은 신호를 재빨리 알아채는 법을 익힐 수 있을 것이다.

세밀화와 함께 읽는 식물학자의 치열한 식물 탐구 일지

『식물이라는 우주』는 식물학자의 차분한 일상과 더불어 식물이 살아가는 방법에 대한 분자생물학적 연구와 이를 가능하게 한 애기장대라는, 과학자들이 사랑하는 식물의 연구 흐름을 짚는다. 작고, 보잘것없고, 먹을 수도 없으며 툭하면 쓰러지는 그야말로 길가의 잡초 애기장대를 모델식물로 삼아 식물학자들은 탐구에 열을 올려 생명의 경이로움을 설명하는 무수한 발견을 해냈다. 애기장대와 함께한 식물학자들의 여정은 식물에 관한 연구를 근본적으로 바꿔놓았을 뿐 아니라 생물학 전체의 기념비적인 발견으로까지 이어졌다. 그리고 애기장대 외에도 옥수수, 보리, 밀, 벼, 수수, 토마토 등 우리가 먹는 작물부터 맨드라미, 튤립, 영춘화, 히아신스, 수선화, 토레니아 등 아름다운 꽃까지 다양한 식물 종이 연구의 장을 어떻게 넓혀왔는지에 대한 이야기가 현장감 있게 펼쳐진다.
1부에서는 씨에서 싹이 트고 자라는 과정을 전한다. 씨앗이 막 발아했을 때 조그만 씨 안에서 일어나는 복잡다단한 일과 지상으로 나온 떡잎이 빛을 감지하며 생장 형태를 바꾸는 관찰을 담았다. 뿐만 아니라 뿌리는 어둠 속에서 어떻게 자라는지, 잎은 어떻게 위아래를 구분할 수 있게 나는지 등 전반적인 식물의 발달을 두루 다루었다. 그리고 애기장대 연구가 시작된 특별한 계기와 과학자들의 인간적인 면모가 고스란히 드러나는 에피소드가 흥미롭다.
2부에서는 꽃이 피고, 씨를 맺으며 노화하는 생명활동을 읽을 수 있다. 어떤 환경 신호 또는 식물체 내의 신호가 꽃을 피우게 만드는지가 중심이 된다. 일년생식물은 씨를 맺고 나서 죽지만 다년생식물은 겨울을 준비하며 잎을 떨어뜨린다. 이때 식물세포에서 일어나는 분주하고 계획적인 과정을 가까이서 살펴볼 수 있다.
3부와 4부에서는 식물이 환경과 상호작용 하는 방법이 나온다. 3부는 식물과 병원균의 끊임없는 싸움을, 4부는 더위, 추위, 가뭄 등 극단적인 환경을 이겨내기 위한 식물의 활약을 전한다. 주어진 기후를 온전히 감내해야만 하는 식물이 어떻게 상황에 맞서 살아남는지 들여다보면 생명의 섬세한 움직임에 감탄하게 될 것이다.
『식물이라는 우주』는 식물뿐 아니라 식물학자들의 생각 그리고 최신 연구 흐름을 온전히 살펴보는 최초의 시도라고 할 수 있다. 씨를 심고, 무수히 많이 번식시키고, 그 가운데서 돌연변이를 찾고, 어떤 유전자가 달라진 것인지 탐색한다. 가설로 세웠던 ‘그 무엇’을 밝혀내기 위해 식물이 태어나서 죽는, 그 긴 시간을 지켜보는 식물학자들의 앎을 향한 열의가 아름답다. 현장의 활기가 가득한 단 한 권의 교양식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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