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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병에서 우울증까지 다양하게 압박
성인병에서 우울증까지 다양하게 압박
  • 교수신문
  • 승인 2001.05.03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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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05-03 11:10:19
조벽 / 미시건공대·기계공학

교수업적평가제나 연봉제를 실시하면 교수님들이 어떤 스트레스를 받을지 생각해 보았습니다.

어느 날 원로 교수님 한 분이 저를 찾아오셨습니다. 평균보다 훨씬 적은 연봉 인상을 받았는데 과연 공평한지 저보고 옴부즈맨 자격으로 조사를 해달라고 부탁하셨습니다. 자초지종을 설명하시는 동안 감정을 자제하려고 노력하셨지만 마침내 눈물을 보이셨습니다.

평균보다 낮은 연봉 인상률을 지난 몇 해 계속해서 받아왔지만 별로 대수롭지 않게 생각해 왔다고 합니다. 연구 실적으로 평가하는데 일선에서 물러난지 한참 되었으니 낮은 연봉 인상률을 어쩔 수없이 인정하였답니다. 하지만 비록 외부로부터 받은 연구비는 없지만 자신이 하고 싶었던 연구를 소규모라마 계속 할 수 있었기 때문에, 강의실에서 학생들과 하루하루를 즐겁게 그리고 뜻 있게 보낼 수 있어서 ‘연봉 인상률’ 따위에는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은퇴를 코앞에 두고 평균 이하의 봉급 인상을 받고 보니 도저히 가만있을 수가 없다고 합니다. 자신이 대학에 바친 30년이 모조리 평균 이하라는 혹독한 평가를 받는 것 같아 생각할수록 분하고 억울하게 느껴진다고 합니다. 물론 연봉 인상률은 오직 지난 한 해 동안만의 실적을 평가한 것이라는 사실은 충분히 알겠지만 마지막 연봉 인상이기 때문에 그 의미가 확대되어 보인다고 합니다.

연봉제가 주는 심리적 부담을 초월하기가 이토록 어렵습니다. 혼자 아무리 연봉제를 초월했다하여도 그것은 아픔을 잠시 잊는 것이지 없는 것이 아닙니다. 매해 조금씩 쌓이는 스트레스는 언젠가는 폭발하게끔 되어있습니다.

운동이나 취미생활을 통해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겠지만 가장 바람직한 방법은 스트레스가 생기지 않도록 미리 예방하는 것입니다. 다행스럽게도 한국에서는 이제 봉급 제도를 새롭게 디자인하려합니다. 그러므로 교수님들께서 서로 스트레스를 주지 않는 제도를 착안하거나 선택할 기회가 있다는 것입니다.

어떤 제도가 현재의 자신에게 유리할까라는 고민만 하지 마십시오. 나중에 후회하실 수도 있습니다. 논문 한편 더 쓰기 위해 연봉제에 대한 토론회나 위원회를 외면하지 마십시오. 연봉제가 한번 실시되면 돌이킬 수 없게 됩니다.

교수님들을 한통속에 넣고 하나의 잣대로 상대 비교하는 식의 실적평가제와 연봉제는 가능한 피하십시오. 획일화는 모두의 기를 죽이는 삭막한 패러다임입니다. 연봉제가 스트레스를 만들어내는 괴물로 디자인되지 말아야 합니다. 봉급이라는 경제적 시스템과 인센티브라는 심리적 시스템은 서로 완벽하게 독립적으로 존재할 수 있습니다.

조벽 교수가 이야기하는 연봉제 스트레스 유형

순응형: 주로 신임교수들로 막막한 불안감에 시달리는 유형. 연봉제가 없었던 시절을 잘 모르기 때문에 현재 느끼는 스트레스가 정상인지 비정상인지 비교할 대상이 없다. 이런 무의식 상태로 높은 스트레스가 장기간 지속하면 성인병에 걸릴 위험이 높다.
추종형 : 교수업적평가항목와 연봉제에서 물질적·정신적 이익을 보는 유형. 그러나 이런 교수들은 불안감에서 오는 스트레스는 없지만 업적 쌓기에 급급해 몸을 혹사할 확률이 높다.

반발형: 업적평가에 대한 불안감이 커지면서 불만감으로 변한 유형. 불만감이 자신의 개인 차원에 머무르면 비난이 되고, 보편화하면 비판이 된다. 비판이 건설적이면 스트레스가 내려가겠지만, 비판이 “행정 블랙홀”로 빠질 확률이 높기 때문에 스트레스가 올라간다.

포기형: 교수업적평가에서 불이익을 보지만 반발하기를 포기한 유형. 이런 교수들은 순응형과 달리 불안감에서 오는 스트레스는 느끼지 않는다. 하지만 불안감과 불만감은 느끼지 않더라도 불행감을 떨치기 어렵다. 우울증에 걸릴 확률이 높다.

초월형: 교수업적평가와 연봉제가 건드리는 체면이라든지 자기과시, 우월감, 열등감 등을 초월한 유형. 대학의 평가항목과 무관하게 전통적 학자에 걸 맞는 가치관을 흔들림 없이 추구하며 스스로 만족한다. 그러나 생각만 하고 마음이 뒤따르지 않는 교수는 암암리에 스트레스를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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