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3-28 18:30 (목)
기호학자들, 타자에 대한 미학적 경험에 주목
기호학자들, 타자에 대한 미학적 경험에 주목
  • 교수신문
  • 승인 2001.05.03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2001-05-03 11:08:05
김성도 / 고려대·언어학

프랑스기호학회가 주최한 국제 기호학 학술대회가 프랑스의 古都 리모쥐에서 ‘세미오 2001 : 이론에서 문제설정까지’란 제목으로 지난 4월 4일부터 7일까지 열렸다. 유럽 및 북남미의 기호학자 및 인문, 사회과학 학자들을 포함하여 30여 개국에서 모두 5백 여명이 참석했으며 1백50편의 수준 높은 논문들이 발표되어 역대 국제 기호학 학술대회에서 가장 내실 있는 성공을 거두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번 학술대회는 프랑스의 세계적 기호학자 그레마스의 서거 이후 다소 침체된 불어권 기호학계에 신선한 활력을 불어넣음과 동시에, 젊은 기호학 연구자들에게 새로운 연구 방향과 문제 설정을 제시하겠다는 야심만만한 포석을 깔고 있었다. 이번 대회는 언어학, 인식론, 생물학, 커뮤니케이션, 미학 등에서 세계적 평판을 얻고 있는 권위자들의 초청 강연을 비롯하여 모두 7 개의 주제 분과로 나뉘어서 진행되었다.

불어권 기호학자들, 재도약 준비

초청 연사 가운데는, 현재 프랑스 기호학회 회장인 문학 기호학의 권위자 코께 교수, 의미 현상의 물리적·수학적 토대를 제시하며 현대 기호학과 인지과학의 접목을 시도, 형태 동학 이론을 창안한 쁘띠또 교수, 세계적 면역학자이자 생물학자인 아메이센 교수 등이 참여, 문화와 자연에 대한 최근의 기호학 연구 동향을 일목요연하게 제시하였다.

개막 연설을 맡은 꼬께 교수는 현대 기호학의 두 흐름을 형성한 퍼스의 패러다임과 그레마스의 패러다임의 소원한 평행 관계를 지양하고 적극적 화해를 역설했다. 꼬께 교수는 기호학과 미학의 관계에 주목함과 동시에, 의미 작용의 기호학적 토대와 생물학적 토대를 연결해야 할 필요성을 강조했다. 특히, 의미 현상에 대한 객관·형식 논리적 접근의 한계를 지적하면서 의미와 교감의 관계를 비롯한 언어의 신체성의 문제에 기호학자의 관심을 촉구했다.

두 번째 강연은 구조주의의 사상적 계보를 레비-스트로스, 르네 톰, 괴테와 연결짓는 쁘띠또 교수의 독창적인 논문이었다. 그는 헬레니즘 미술의 정수를 담고 있는 ‘라오콘’의 발견과 더불어 유럽에서 시각 예술과 언어 예술의 본질적 차이를 두고 제기되었던 미술사가 및 미학자들의 논의를 정리하면서, 작품 자체가 머금고 있는 내적 역동성에 대한 유기체의 개념을 파악한 괴테를 구조주의와 형태동학적 사상의 선구자의 반열에 올려놓았다.

이번 학술대회에서 가장 관심이 집중된 분야는 기호학과 미학의 관계로, 최근의 현대 기호학은 감성과 정념 등, 심미성과 의미의 관계에 집중적인 연구를 해왔다. 이런 맥락에서 캐나다의 기호학자인 우엘레트 교수가 발표한 동감과 감정 이입의 기호학은 타자에 대한 미학적 경험을 기호학의 시각에서 주제화시켰다는 점에서 참신했다. 그에 따르면 심미적 경험은 주체가 자신의 정체성 또는 자신의 고유한 윤곽 지대를 상실할 때, 즉 일체의 개체화에서 벗어날 때 존재 의미의 증가를 경험한다는 것이었다. 의미는 이렇듯 공통 감각의 영역에서 풍요로워지며 타자의 의미와 상호신체성이 자아 실존의 조건을 뒷받침한다는 요지이다.

의미와 사회성의 관계도 천착

동일선상에서 파레트 교수는 소쉬르와 옐름슬레우가 기호학과 언어학의 연구 대상에서 제외시킨 무형태 또는 반형태의 문제를, 현대 조형 예술 작품을 분석하면서 미학적 기호학이 무정형의 세계를 주제화시킬 수 있다고 역설했다. 이밖에도 언어학과 정신분석학의 관계를 연구해 온 아리베 교수는 소쉬르의 일반 언어학 이론과 말년의 전설 연구에서 제기되는 기호의 정체성을 둘러싼 상충의 문제에 천착했다.

주제별 분과에서 주목을 끌만한 논문들은 기호학의 응용 가능성과 관련된 것들로서, 특히 기업의 전략 및 마케팅의 문제를 기호학적으로 짚어보는 시도들이었다. 마케팅 전문가인 베르텡씨는 전략의 문제를 군사 영역과 경제·사회적 소통의 장과 나란히 놓으면서, 전략적 사고의 핵심적 양상은 의미의 구성 방식으로 파악될 수 있다는 점에서 기호학이 양자 사이의 가교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주장을 내놓았다. 연이어서 발표된 논문들에서도 상표, 포장, 관리, 판매를 비롯한 세부 항목에서부터 기업의 포괄적인 플래닝 단계에 이르기까지 기호학이 제공하는 방법론적 도구들의 효율성을 실증적으로 증명해주는 사례가 주종을 이루었다.

초청 연사였던 부토 교수는 광고 기호학의 발달사를 되돌아보면서 기호학과 광고 사이의 연대성의 관계가 진화해온 과정을 소상하게 해명했다. 그밖에도 사회 기호학 분과에서는 환경 기호학의 프로그램을 제시하는 논문들이 발표되기도 했다. 이 분야의 이론가들에 따르면, 환경 기호학은 의미와 사회성의 관계에 대한 물음에서 시작되었으며, 특히 자연, 문화, 과학 사이의 관계를 재정립할 수 있는 새로운 가치 체계의 수렴에 초점을 맞춘다는 점에서 생태 기호학으로 발전될 수 있음을 시사했다. 물론, 환경 기호학의 구축을 위해서 기호학자에게 제기되는 가치의 문제는 정치적 영역에 속할 수밖에 없다는 점도 지적되었다. 이렇게 해서 사회 기호학은 또 다른 분과 주제인 생명체의 기호학과 맞닿게 된다. 특히 이 분야는 10여 년 전부터 활발하게 연구되고 있는 생명 기호학의 급부상과 더불어 기호학의 대상에 대한 근본적인 물음을 던지게 된다.

세계적인 음악 기호학의 대가인 핀란드의 타라스티 교수는 생명 기호학을 자연에 대한 환원주의적 해석과 달리, 자연을 풍성한 기호 작용의 세계, 즉 ‘세미오즈’로서 파악할 수 있다는 견해를 내놓았다. 그는 칸트, 실러를 비롯하여 크리스테바와 리쾨르에 이르는 서구 인식론에서 피력된 자연 개념에 대해서 생명 기호학의 시각에서 재해석하려는 자신의 작업의 일부를 소개했다. 특히, 자연 세계에 대한 그레마스의 인식은 생명기호학의 이론적 효시라 할 수 있는 욱스쿨의 시각과 양립 가능하다는 논지를 내놓아 청중의 관심을 받았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