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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어 리뷰는 왜 ‘램지어 논문’을 걸러내지 못했나?
피어 리뷰는 왜 ‘램지어 논문’을 걸러내지 못했나?
  • 김재호
  • 승인 2021.03.29 08:5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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램지어 교수 관련 논쟁과 비판

법학자들의 다방면 연구는 학문적 엄격함 요구
정치·경제와 학술의 유착 관계 고민해봐야

램지어 교수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이 자발적으로 매춘에 동참했다는 주장을 펼쳐 국제적 논란을 일으켰다. 램지어 교수의 논문은 올해 3월 중 『국제법경제학리뷰(IRLE)』 제65권으로 출간될 예정이지만, 우려 표명이 함께 실리거나 추후 논문을 철회하는 것 등이 고려되고 있다. 램지어 교수는 4주 이상의 소명시간을 받았다. 이 학술지는 지난해 3월 31일 램지어 교수의 논문 「태평양전쟁 중 성 계약」을 접수했다. 같은 해 8월 28일 수정본을 받아, 11월 28일 승인했다. 온라인에는 12월 1일 공개했다. 또한 램지어 교수는 올해 1월 11일, 일본 산케이신문의 온라인 영문판 <재팬 포워드>에 자신의 주장을 재차 밝혔다.

지난 25일, 계성고 학생들이 25일 오전 서울 성북구 분수마당 한·중 평화의소녀상에서
마크 램지어 하버드대 교수 망언 논문 규탄 피케팅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

심사는 제대로 한 논문일까

피어 리뷰의 관점에서 램지어 교수 논문은 문제가 많다. 피어 리뷰는 논문 검증 시스템이다. 편집자가 먼저 투고된 논문의 적합도를 판단한다. 이후 해당 분야 전문가들에게 동료 평가를 맡긴다. 피어 리뷰어들의 동의에 따라, 편집자는 논문을 승인할지, 거부할지, 수정을 요구할지 판단한다. 「국제법경제학리뷰」에는 30명이 넘는 피어 리뷰어들이 있다.

피어 리뷰의 방식도 다양하다. △리뷰어의 이름을 공개하지 않는 리뷰 △저자와 리뷰어의 이름을 둘 다 공개하지 않는 리뷰 △제출 단계에서부터 저자, 편집자, 리뷰어의 이름을 공개하지 않는 리뷰 △피어 리뷰 과정에서 저자와 리뷰어가 서로를 알게 되는 공개 리뷰. 공개 리뷰는 출판 후 리뷰어의 이름이 실리지 않을 수 있다. 또한 공개 리뷰는 논문에 대한 커뮤니티 포럼을 열기도 한다. △편집자와 리뷰어들의 이름이 모두 공개되는 좀 더 투명한 리뷰.   

석지영 하버드대 교수(로스쿨)는 <뉴요커> 기고문에서 “법학 분야 피어 리뷰의 흠결을 시사하는 것인지도 모른다”면서 “방법론에서의 전문가들인 법학자들은 때때로 자신이 연구한 적 없는 역사적 맥락이며 구사하지 못하는 언어가 등장하는, 자신들의 전문 분야와는 거리가 먼 분야의 글을 검토하게 된다”고 적었다. 법학자들이 다방면에 걸쳐서 연구하는 접근법은 각 개별 학자들의 성실성과 엄격함에서 비롯하는 것이라는 지적이다.

국내 보수단체나 일본군 성노예 피해 사실을 반대하는 측에선 국제학술지에 논문이 게재됐다는 이유만으로 그 내용을 진실로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다. 석지영 하버드대 교수(로스쿨)은, 램지어 교수로부터 자신을 지지해달라는 서명 관련 이메일을 받았다. 여기에 『반일 종족주의』(2019)의 저자 4인을 포함해 한국인 15명이 참여했다고 한다. 

알렉스 리 노스웨스턴대 교수(로스쿨)는 『국제법경제학리뷰』의 부편집인으로서 피어 리뷰 참여자 중 한 명이었다. 그 역시 학술지의 심사 과정과 게재 최종 판단에 대해 비판했다. 심지어 리 교수는 이 학술지에서 사퇴했다. 일본의 위안부 연구 권위자인 요시미 요시아키(吉見義明) 일본 주오대 명예교수 역시 논문 심사 과정에 문제를 제기하며 논문을 철회해야 한다고 국내 한 언론과 인터뷰에서 밝혔다. 

박노자 노르웨이 오슬로대 교수(한국학)는 지난 7일 페이스북을 통해 “유수의 학술지 심사 제도가 이 모양 이 꼴이 된 이유가 무엇인지, 유사 사학을 걸러내지도 못하는 심사 제도가 왜 필요한지, ‘하버드’라고 해서 편집장들의 ‘특별 대우’를 받아 ‘친화적인’ 심사자를 배정 받는 등 ‘명문 학교 특혜’의 경우가 아닌지, 이런 게 이제 반성돼야죠”라고 비판했다. 아울러, 박 교수는 정치와 학술, 경제와 학술 유착 관계에 대한 심도 있는 고민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램지어 교수의 공식 직함은 미쓰비시 일본 법학 교수다. 미쓰비시는 대표적인 전범기업이다. 미쓰비시는 1970년대 하버드대에 100만 달러를 기부했고, 램지어 교수는 첫 정년교수로 임용됐다.   

결국 개별 학자들의 엄격함이 필요

그렇다고 위안부에 대해 하나의 주장만 있어야 된다는 뜻은 아니다. 가령, 박유하 세종대 교수(일어일문학과)의 『제국의 위안부』(2015) 관련 형사 기소에 대해 하버드대 일본 근현대사 교수들이 유감의 뜻을 표명한 바 있다. 이 교수들은 현재 램지어 교수를 비판하고 있다. 학문의 자유는 중요하다. 다만, 누릴 수 있는 자유는 학문적 진실성에 기반해야 하는 것이다.  

양현아 서울대 교수(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교수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위안부에 대해 하나의 목소리만 나오는 것이 아니라 학자, 위안부 시민단체, 미디어 역사 관련 학문 이외에 법경제학 등 다양한 분야가 노력해야 한다”라며 “이번 램지어 교수 논문 사태의 핵심은 언어와 국제학회의 네트워크”라고 말했다. 
한편, 일본군 성노예제문제해결을 위한 정의기억연대는 지난 12일, 온라인에서 '램지어 교수 사태를 통해 본 아카데미 역사부정론' 긴급토론회를 개최했다. 현재 정의기억연대는 역사부정론 반박자료를 홈페이지에 게시했다. 49개 역사 관련 학회와 시민단체는 18일 공동 성명을 내고 “램지어 사태의 본질은 학문의 자유가 아니라 연구윤리 위반”이라고 지적한 바 있다.

아울러, 28일, 중국위안부문제연구센터(이하 센터)는 상하이사범대에서 한국, 중국, 일본, 아르헨티나 학자들이 참여해 램지어 교수를 비판하는 국제 학술회의를 개최했다. 천리페이 상하이사범대 교수는 ‘상상과 추측으로 쌓은 램지어의 논문’이라는 발표를 통해 램지어 교수의 논문을 지적했다.  

김재호 기자 kimyital@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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