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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과 흙
인공지능과 흙
  • 교수신문
  • 승인 2021.03.26 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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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훈 지음 | 민음사 | 388쪽

상상과 현실을 결합하라!

과학자는 가설을 위해 지적 상상력을 발휘해야 하고, 화가는 작업하기 전에 머릿속에 이미지를 상상해야 한다. “상상이 이성에 앞선다.”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위대성은 “마음에 무엇인가 간직하면, 환상이나 몽상으로만 멈춘 게 아니라 상상한 것을 작품으로 만들어 냈다는” 점에 있다. 15세기 ‘대항해’ 시대는 르네상스인들의 ‘상상의 지도’가 구체화된 결과물이었다. 이렇게 상상이 현실화되기 위해서는 헤르메스처럼 경계를 넘나들어야 한다. 미셸 세르가 『헤르메스』에서 과학과 철학의 경계를 넘나들며 헤르메스의 상징성을 소환했는데, 『인공지능과 흙』은 그런 헤르메스적 상상으로 갑갑한 일상을 새롭게 재창조해낸 작가들, 과학자들, 모험가들을 소개한다.

마르셀 프루스트는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서 화자의 첫 사랑 질베르트의 머리카락을 상세하게 묘사하면서 “다빈치가 스케치한 작은 꽃들 사진”에 비교한다. 프루스트가 여인의 머리카락과 레오나르도 다빈치와 관련시킨 이유는 어떤 상상 때문일까? 신화적 동물 ‘히포캄푸스’가 르네상스 말기에 인기를 얻어 뇌과학에서 ‘해마’라는 해부학적 이름으로까지 자리를 잡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

고대의 상상은 지금도 유효하다. 호메로스의 『일리아스』에 등장하는 ‘황금비서’는 “살아 있는 소녀들과 똑같아 보였는데” “감정을 지닌 지능, 음성, 힘이 장착되어” 있다. 그야말로 고대인이 상상한 인공지능 로봇이다. 호메로스는 심지어 황금비서가 “불멸의 신들에게 작품도 배워 알고” 있다면서 머신러닝과 딥러닝에 대한 상상의 단초까지 언급한다. 에코 신화와 인공지능 스피커, 네로의 황금궁전과 증강현실, 이카로스 신화와 사이보그의 공진화 문제, 헤파이토스의 날아다니는 삼발이와 자율주행 및 플라잉카, 신화와 전설은 지금도 상상력의 보고다.

상상만 한다고 현실이 되는 것은 아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현실과 몽상의 경계를 무너뜨리고 실행력을 높이기 위해 7200쪽의 기록과 낙서를” 했다. 그러나 인문학의 역할이 상상을 어떻게 현실화하는가를 보여 주는 것만은 아니다. 로봇의 상상이 현실화되는 역사에서 ‘러다이즘’(기계 파괴 운동)의 근원적인 이유는 잘못된 ‘분배’ 문제에 있었다.

브레인스토밍을 위한 상상력 백과사전

퓌그말리온 신화에는 “생명은 생명체에서만 나온다는 고대인의 통찰”이 들어 있다. 고대 신화와 전설은 지금 우리가 꿈꾸고 고민하는 문제들을 해결하는 데에도 무엇을 고려해야 할지 인사이트를 준다. 과학뿐만이 아니다. 소포클레스의 『오이디푸스 왕』과 현대의 좀비 서사, 나르키소스 신화와 사이버공간의 자아분열 문제, 고대 제욱시스 일화와 인터페이스 문제 등 『인공지능과 흙』은 문학, 심리, 사회, 다양한 분야를 넘나들며 과거와 현재를 이어 주는 상상력 백과사전이다.

프로이트의 언캐니 이론과 초현실주의자들의 작품을 통해 육체의 상품화에 대한 저항을 강조하고, 19세기 ‘기계적 합리론’이 초래한 불안의 역사에서 생체로봇이 만들어지고 있는 현대의 불안은 어디서 기인하는지 파악해 본다. 이 밖에도 마스킹효과와 ‘보람착취’의 작동 원리, 희망 고문과 무민 세대의 역학관계, 박물관공포증과 권력의 도구화 등 다양한 이론들과 그 사회적 배경을 살펴봄으로써 우리의 미래도 그려보게 된다.

독창적인 스트라빈스키는 “혁신은 전통과 함께 갈 때에만 생산적일 수 있다.”고 말했다. T. S. 엘리엇, 피카소 같은 20세기 거장들은 모두 과거에서 영감을 찾았다. 기존 패러다임이 급속도로 바뀌고 있는 포스트코로나 시대에, 모든 것을 처음부터 다시 생각해 보아야 할 때다. 먼저 상상이 있어야 현실화가 가능하다. 이에 대해 저자는 “판타지 없는 백성은 망한다.”고 비유한다. 그러나 우리가 새로운 것을 만들 때 과거를 점검하지 않으면 한계에 직면한다. 새로운 아이디어, 새로운 관점, 새로운 변화를 열망할수록 근원과 역사를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치유 인문학: 상처로 잃어버린 감각을 회복해야 한다!

인문학의 진정한 회복 능력은 권력 독점이 초래한 억압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데서 시작될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저자는 과거 귀족들의 향수 독점 같은 권력의 감각 독점에 주목한다. 발자크와 조지 오웰의 ‘냄새 지리학’을 통해 차별이라는 이슈를 고민하고, 『프랑켄슈타인』의 괴물과 소통 불능의 문제를 통해 금기를 만들어내는 권력의 위험성을 경고한다. 저자는 상처를 승화시키는 예술 작품들을 통해 인문적 감각의 회복과 진정한 치유를 연결시켜 준다. 진정한 치유는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주제 사라마구는 『눈뜬 자들의 도시』에서 눈을 떴어도 보지 못하는 문제를 말한다. 요즘처럼 감각 자극이 넘쳐나는 시대에 감각이 무뎌진다는 얘기를 하는 건 의아해 보인다. 한병철 철학자가 『피로사회』에서 과잉이 초래한 ‘긍정성의 폭력의 세기’를 지적했듯이, 현대는 가상화로 인해 시각과 청각이 과잉되면서 후각 같은 나머지 다른 감각은 오히려 둔감해졌다. 우리의 정체성이 점점 더 가상현실 공간 안에서 이뤄지고 비대면 시대에 들어가고 있는 지금 더욱 ‘감각하는 몸’(현상학자 에드문트 후설)이 절실한 이유다.

‘물질인문학’은 인간답게 살기 위해서 현실의 세계와 어떻게 접할 것인가를 다룬다. 그래서 ‘물질인문학’은 인간의 신체를 물질로 받아들이고 거기서 자연스럽게 등장하는 신체와 감각의 복권에 대해 주목한다. 그러니까 인문학은 감각을 깨워 몸을 살리고, 몸이 살아 감각을 연마하는 발견이다. 그런 의미에서 “세상 눈뜬 자들이여, 지금 무엇을 보고 있는가?”라고 사라마구가 『눈먼 자들의 도시』에서 던진 질문은 ‘포스트인문학’의 중요한 화두가 될 것이다.
-김동훈, 『인공지능과 흙』에서

르네상스 대표 작가 보카치오가 『데카메론』에서 ‘비밀의 정원’을 배경으로 택한 이유는 당시 이탈리아 재력가들이 경쟁적으로 정원을 만들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상처 때문에 겁부터 먹고 닫아뒀던 감각의 문이 비로소 열리기” 때문이다. 정원에 대한 집착이 회복을 향한 열망과 어떤 관계가 있을까? 마치 코로나19를 겪고 나자 식물 키우기가 유행하는 이유와 맞닿아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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