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웰빙시대와 시조문학의 길트기
웰빙시대와 시조문학의 길트기
  • 류해춘 성결대 국문학
  • 승인 2004.08.18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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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월 하순이 다가오니, 아침저녁으로 시원한 바람이 불어와 여름철의 무더위를 잊게 해준다. 다음 학기 강의를 준비하다가 문득 지난 학기에 학생들과 아주 재미있고도 열띤 토론을 했던 시조문학 수업시간을 떠올려 본다.

지난 오월 초 어느 봄날 저녁에 나의 연구실로 사회과학을 전공하는 교수가 불쑥 찾아왔다. 그리고는 대뜸 웰빙의 이론과 그 현황에 대해 열변을 토하면서, 나에게 웰빙과 문학의 연관성에 대해 학생들과 수업해 보라고 권했다.

재미있는 주제가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학생들에게 “웰빙의 이론과 시조문학을 접목시켜봄이 어떻겠느냐?”라고 했더니 의외로 학생들의 반응이 좋았다. 그래서 웰빙의 개념과 그 현황에 대해 조사할 내용을 다음 수업시간의 과제로 내주었다.

다음주 수업시간에 나는 ‘웰빙(well-being)’이란 말은 뜻 그대로 건강한(well, 안락한, 만족한) 인생(being)을 살자는 의미라고 설명하면서, 요즈음 우리 나라 사람들이 웰빙에 대해 관심이 매우 높고, 각종 언론 매체를 통해서도 웰빙에 대한 기사로 넘치는 자료를 보여 주며, 학생들의 흥미를 유발시켰다.

학생들의 반응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였다. 학보사에서 기자를 하는 학생은 자신이 학보에 웰빙과 건강식에 대해 기사를 썼다고 하며 토론을 주도해 나가기 시작했고, 다른 학생들도 제각각 토론의 주제를 놓치지 않기 위해서 열심히 웰빙과 그 유행 현상 등에 대해 설명했다.

 

그리고 수업이 끝날 시간이 되었는데도 여느 수업시간과는 달리 학생들은 웰빙에 대해 서로의 견해를 주고받으면서 열심히 토론했다. 그 결과 현대사회에서 웰빙을 선호하는 사람들은 물질적 가치나 명예를 얻기 위해 노력하는 삶보다는 육체와 정신이 건강한 삶을 추구하고 있다는 결론에 도달할 수 있었다.

이제는 웰빙과 관련하여 논의한 웰빙족, 건강식, 여가산업 등의 내용을 바탕으로 시조문학과 대화를 나누는 일이 남아 있었다. 그래서 나는 현대어로 번역한 몇 편의 시조문학을 학생들에게 제시하고, 다음 시간에는 웰빙의 이론과 관련지어 이 작품들을 분석해 오도록 했다. 그 때 제시한 시조문학 중의 한 편을 인용하고, 학생들과 함께 웰빙시대와 시조문학의 길트기를 위해 수업한 내용을 소개하고자 한다. 
 
보리 밥 풋나물을 알맞게 먹은 후에/ 바위 끝 물가에 한없이 노니노라/ 그 밖에 다른 일이야 부러워할 일이 있으랴/ 윤선도(1587~1671)
   
이 시조에 등장하는 보리밥, 풋나물 등의 소박한 음식을 통해서, 학생들에게 웰빙을 추구하는 현대인들이 자연식으로 여기는 유기농 채소를 떠올리도록 했다. 또 물가의 바위에서 노닐면서 다른 일을 부러워하지 않는다는 화자의 생활을 통해서, 학생들에게 깨끗한 강과 호수에서 여가생활을 즐기는 현대인들을 연상하게 했다.

 

그랬더니 학생들은 이 시조의 화자처럼 웰빙을 추구하는 현대인들은 자연식으로 식사를 하고, 깨끗한 강과 호수에서 여가생활을 해 스트레스를 받지 않으려고 한다고 설명했다. 그리고 식사를 할 때는 야채를 좋아하여 양푼에 채소를 가득 담고 고추장 없이 비빔밥을 만들어 먹거나, 유기농법으로 재배된 쌀, 채소, 육류 등으로 식사를 하려고 한다며 다양한 이야기를 쏟아냈다.

 

또 이 시조의 화자처럼 대자연의 넓은 품에 안겨서 느린 속도로 생활을 할 수 있는 현대인들은 신체와 마음이 상쾌하고 안정되어 하루하루가 즐겁고 행복할 것이라고 했다.

오랜만에 학생들과 함께하는 수업을 했다고 자부하며 스스로 만족한 웃음을 지었다. 지난 학기에 학생들이 열심히 토론과 발표를 하면서 웰빙시대와 시조문학의 길트기에 노력한 것처럼, 다음 학기 강의실에서도 학생들과 함께 재미있고 즐거운 삶의 체험을 시조문학과 접목시키는 수업을 설계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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