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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산 투기의 신화는 착각이다
부동산 투기의 신화는 착각이다
  • 김신자
  • 승인 2021.03.24 10:4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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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에서 바라본 복지사회
김신자
전 비엔나대 철학과 교수

 

칼 야스퍼스(1883∼1969)는 인간이 생각하고 행동하며 역사를 창조하는 존재라고 했다. 헤겔(1770∼1831)은 창조되어진 역사는 시대의 변천 가운데서 그의 궁극적인 목적을 성취하며 의미를 뚜렷하게 나타낸다고 보았다. 30여 년 전, 베를린 장벽과 공산세계의 붕괴는 새로운 역사의 장을 열어 놓았다. 상상하지 못한 변화가 우리 앞에 뚜렷이 구체화된 것이다.

사람들은 열망하던 자유와 민주주의 시대 앞에서 환호했다. 서구와 같은 복지사회가 짧은 시간안에 자기들에게도 실현되리라 믿었다. 그러나 십수년이 지난 오늘까지, 그들의 간절한 소망은 아직도 진행 중인 상태다. 깊이 뿌리박힌 이데올로기의 병폐들을 씻어내고 새로운 사회를 구축하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한 것이다. 복지사회의 빠른 실현을 꿈꾸던 사람들은 실망과 더불어 지난날을 그리워 했다.

시리아의 내전과 아랍세계의 동요에 북아프리카 및 아프가니스탄 등지에서 불안한 난민들이 끊임없이 유럽으로 온다. 풍요롭고 안정된 삶이 주어지리라 기대하면서 말이다. 독일 언론사 <자이트(Zeit)> 온라인 보도에 따르면, 아프리카의 한 젊은이는 그들을 도와주는 사람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살 집과 일자리 그리고 차를 달라고. 이것들을 당연하게 받을 수 있는 것처럼 하는 그의 말에 아연해진 독일인이 우리들도 받기 어려운 것이라고 대답했다.

어머니와 딸이 뗏목을 타고 국경을 건너온 뒤, 호송차에서 창문 밖을 내다보고 있다. 사진=로이터/연합

현지인들도 구하기 힘든 집과 일자리

철의 장막의 붕괴와 더불어 복지사회의 실현을 꿈꾼 사람들. 유럽에 가면 모든 것이 주어진다는 브로커들에게 속아 온 재산을 잃고 때로는 바다에서 죽어가는 난민들. 이들의 현실은 다르지만 복지사회에 대한 열망은 동일하다.

물질적인 안정과 생존을 위한 권익이 옹호되고 보장되는 서구는 복지사회다. 근로자에게는 확정된 임금과 정해진 노동시간이 준수되고, 휴가 및 사고에는 사고보험이, 실업의 경우 실업보험이 지급된다. 병자에게는 이러한 물질적인 것 외에 수술 및 휴양이 포함된 다양한 의료혜택이 주어진다. 노후를 위해서는 연금이 지급되며, 정부는 연금이 적은 사람을 보조한다. 국립인 대학들은 자유롭고 개방적이며 누구나 큰 부담없이 대학에서 공부할 수 있다. 위의 내용들은 인간에게 중요한 의·식·주와 권리 및 존엄성의 보호에 바탕을 둔 것이다.

복지사회의 특유성은 경제뿐만 아니라 인권의 존중도 요체로 한다. 왜냐하면 복지사회는 물질과 인간의 권리 및 가치관의 확고한 공존을 통해 성립되기 때문이다. 서구의 복지사회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제2차 세계대전의 참상을 겪은 독일과 오스트리아가 오늘의 복지사회를 구축하기까지 그들도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풍요롭고 안정된 사회이지만 그들의 삶은 소박하며 검소하다. 이러한 생활 태도는 그들의 역사성 때문이 아니라 자기 분수의 자각에서 비롯된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들은 남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자신을 위해 성실하고 실제적으로 산다.

은행 빚을 지면서 무리하게 집을 사지않고 사람들은 세를 든다. 정부나 세법전문가로 구성된 협회는 세든 사람들의 보호와 권익을 위해 적극적으로 배려한다. 집주인은 부당하게 높은 집세를 요구하거나 정당한 이유없이 세든 사람을 내보내지 못한다. 집세는 연간 물가지수의 상승에 따라 조금씩 올린다. 집을 사는 대신 사람들은 여행이나 문화 교양 그리고 필수품의 구입을 위해 저축한 돈을 쓴다. 아파트를 사는 사람도 있으나, 짧은 기간 내에 팔면 엄청난 세금이 부과된다. 그러므로 서구에서는 부동산 투기로 벼락부자가 된다는 신화가 존재하지 않는다.

자기 분수의 자각에서 비롯된 복지

돈으로 사람을 평가하는 물질주의가 사회구성원 사이에 소외와 좌절의 골을 깊게하는 작금이다. 이러한 사회풍조로 인하여 왜곡된 인간관은 복지사회의 구축을 저해하는 독소가 된다.

국민소득이 높아지고 삶의 질이 향상되면 사람들은 바로 복지사회에 산다고 믿는다. 그것은 착각이다. 왜냐하면 복지사회는 단지 외적인 풍성함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수단으로서의 물질과 목적으로서의 인간이 바르게 평가되고 하모니를 이루는 정의로운 사회에서 복지는 찬연한 빛을 발한다. 복지사회는 정의로운 사회상을 반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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