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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케팅 브레인
마케팅 브레인
  • 교수신문
  • 승인 2021.03.19 14: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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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헌 지음 | 갈매나무 | 288쪽

2021년 2월, 한 치킨집 사장님이 겪은 일화가 온라인을 뜨겁게 달궜다. 치킨이 먹고 싶은 동생을 위해 마포구 일대 치킨집을 돌아다니며 5000원짜리 지폐 한 장을 들고 다니며 이만큼만이라도 치킨을 줄 수 없냐고 요청했지만 모든 가게가 거절했다. 딱 한 곳, 철인7호 홍대점의 점주 박재휘 씨의 매장만 제외하고. 이 사실이 세상에 알려지자 전국 각지에서 점주에 선행에 감동했다며 기부 행렬이 이어졌다. 소비자들은 돈으로 혼쭐내준다는 의미인 ‘돈쭐내준다’는 표현을 사용하며 폭발적인 주문으로 치킨집 사장님을 격려했다.

가치를 사는 시대다. 지금 소비자는 필요를 느끼면 가격 비교를 하여 상품이나 서비스를 구매하는 과거 소비 패턴이나 소비 행동과는 완전히 다르다. 소비자는 더 이상 상품을 구매하지 않는다. 소비자는 사회에 더 많이 기여하는 브랜드를 구매하고 공생의 가치를 구매한다. 소비자는 이제 기업(상품)과 관계를 맺을 때 기업이 사회에 어떤 가치를 제안하고 기여를 하고 있는지 우선적으로 평가한다. 그리고 사회에 더 공헌하는 기업을 선택하려 한다. 전 세계적으로 기업 경영의 핵심 키워드로 자리 잡고 있는 ‘ESG(Environmental, Social, Governance) 경영’ 역시 기업이 얼마나 돈을 잘 버는지가 아니라 어떻게 돈을 벌고 쓰는지와 관련된 영역이다. 소비자는 기업이 탄소 배출을 줄이는 데 얼마나 관심을 두는지, 소비자인 내가 지불한 물건값이 제대로 생산자에게 전달되는지, 특정 집단만 권력을 쥐고 다수의 노동자를 쥐락펴락하지는 않는지 등을 판단하고 기업의 상품을 구매하려 한다.

마케팅의 선순환 구조를 이루는 ‘가치 교환’ 전략에 축을 두고 출발하는 이 책은 총 3부로 구성되어 있다. 제1부에서는 가치 = 혜택 ÷ 비용이라는 수식으로 표현할 수 있는 가치함수를 활용해 ‘가치를 분석’한다. 먼저 소비자의 구매를 방해하는 다섯 가지 비용(탐색·거래·사용·처분·공유)은 줄이고, 이어서 구매를 돕는 다섯 가지 혜택(기능·상징·경험·이타·자존)은 늘림으로써 소비자에게 선택받을 수 있도록 가치를 키우는 방법을 제시한다.

제2부에서는 경쟁자와는 다른 차별적 가치를 소비자에게 제공하겠다는 약속인 ‘가치 제안’에 대해 설명한다. 소비자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여러 가치 중 소비자에게 더욱 의미 있고 경쟁자보다 더 잘할 수 있는 가치를 제안할 때 소비자에게 선택받을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것을 보여준다.

제3부에서는 소비자에게 약속한 가치를 제대로 이행함으로써 소비자의 가치 교환에 대한 만족도를 높이고 장기적인 거래에 필요한 긍정적인 관계를 형성하는 ‘가치 전달’에 대해 설명한다. 저자는 여기서 제품(Product), 가격(Price), 유통(Place), 판매촉진(Promotion)의 4P를 기획하는 마케팅 믹스를 일관성 있게 활용하라고 조언하면서 책을 마무리한다.

기업이 무엇을 만드는가 VS. 기업이 무엇에 신경을 쓰는가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 선정 ‘가장 영향력 있는 비즈니스 거장 50인’ 가운데 한 사람인 필립 코틀러는 고객 가치 중심의 마케팅을 넘어서는 사회 지향적 마케팅을 강조한다(128~129쪽). 소비자는 이제 ‘기업이 무엇을 만드느냐’보다는, ‘기업이 무엇에 신경을 쓰느냐’에 관심이 있다는 것이다. 나아가 소비자는 기업이 신경 쓰는 대상이 “소비자이자 인류 공동체의 일원인 이웃이기를 바란다.” 앞으로는 소비자가 기업과 관계를 맺을 때 비용이 더 싼 것을 사는 단순한 소비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기업이 사회에 어떤 기여를 하고 있는지 평가한 뒤 구매한다는 뜻이다. 바꿔 말하면 소비자는 사회에 더 많이 이바지하는 기업과 더 긍정적인 관계를 맺고 거래를 지속함으로써 제품 구매를 통해 얻을 수 있는 여러 가지 혜택 중 ‘이타적 혜택’을 추구하고자 하는 것이다. 기업이 소비자와 지속적인 관계를 맺고 싶다면, 기업이 사회와 맺고 있는 관계가 이로운지를 소비자가 항상 눈여겨보고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영국의 슈퍼마켓 체인인 모리슨(Morrison)의 490여 개 매장에서는 매주 토요일 오전 매장의 조도를 낮추고 음악소리를 줄여 자극에 민감한 자폐증 환자의 쇼핑을 배려하고 있습니다. 얼핏 보면 일반인은 다소 불편할 수 있어 부정적인 반응을 보일 수 있다고 생각되지만, 모리슨을 방문한 고객들은 이타적 혜택을 느끼고 오히려 이를 응원합니다.” _(126쪽)

가치 있는 소비를 중요시하는 MZ 세대가 주 소비층으로 떠오르면서 명실공히 착한 기업이 살아남는 시대가 되었다. 특히 MZ 세대는 구매하려는 제품이나 브랜드가 환경 보호에 기여하는지, 윤리경영을 실천하는지를 꼼꼼하게 따진다. 이들은 가성비보다 가심비를 더 중요시한다. 자신의 신념에 부합하는 가치 소비를 하는 것이다. 소비자들은 점점 더 선한 기업을 찾아, 능동적으로 소비할 대상을 고르고 있다. 온라인에서 착한 기업 리스트가 올라오거나 SNS에 기업의 선행이 알려지면 그 기업의 제품을 구매하며 지지하고 응원한다.

지금 소비자는 자기 신념이나 취향을 반영한 ‘더 나은 가치’를 사고 싶어한다. 그러므로 우리 시대의 마케팅은 더 이상 어떤 제품과 서비스를 제공하는지 알리는 것만으로는 성공할 수 없다. 중요한 것은 소비자가 추구하는 가치에 대한 통찰과 공감이다. 브랜드 전략의 시작과 중심에는 ‘소비자가 공감할 수 있는 가치’가 있어야 한다. 모리슨을 지지하는 소비자나 앞서 예를 든 치킨집 사장님을 응원하는 소비자의 ‘돈쭐’ 행렬은 지금 소비자들이 진짜 열광하는 가치가 무엇인지 여실히 드러내는 대목이다.

“우리 제품이 더 좋은데 왜 안 팔리지?”
경쟁에서 벗어나는 마케팅 관점의 사고 프레임

소비자는 평소 아끼고 좋아하던 브랜드가 위기에 처하면 어떻게 할까? 소비자는 때로 휙 돌아서는 것이 아니라 손해를 감수하고라도 마지막 순간까지 브랜드를 지켜내기 위해 노력한다(281~282쪽). 브랜드가 자기에게 준 것에 감사하며 브랜드를 위해 뭔가를 하려는 브랜드 공명(brand resonance)이 일어나기도 한다. 이는 소비자를 브랜드의 팬으로 만드는 마케팅의 궁극적인 목표라 할 수도 있다. 이들은 경쟁 브랜드의 온갖 구애와 유혹을 이겨내고 해당 브랜드를 떠나지 않는 의리를 보여준다. 이러한 유형의 소비자는 손해를 보더라도 의리를 지키면서 심리적인 만족감을 얻기도 한다.

사실 경쟁 브랜드의 팬을 우리 브랜드의 팬으로 바꾸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물론 방법이 없지는 않다. 이들을 비난하지 않고 진심으로 이해하고 존경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다. 또 경쟁 브랜드가 위기에 처한 순간 달콤한 사탕으로 이들을 유혹할 것이 아니라 이들과 공감하는 태도에서 비롯한 작은 디테일로 감동을 줄 필요도 있다(135쪽). 요점은 ‘판매’가 아닌 ‘관계’다.
마케팅이란 무엇일까? 어떤 이는 마케팅을 두고 제품을 팔기 위해 소비자를 현혹하는 교묘한 사기라고 주장한다. 그것은 아마도 소비자를 목적이 아닌 수단으로 생각하는 판매자의 화려한 말솜씨나 미사여구를 동원해 가치 없는 물건을 가치 있는 것처럼 보이게 하는 잘못된 마케팅으로 인해 피해를 입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마케팅이 아니라 사기다(21쪽). 진정한 마케팅은 소비자에게 더 나은 가치를 지속적으로 제공함으로써 소비자와 판매자가 장기적이면서 긍정적인 관계를 맺는 데 도움을 주는 학문이다(5쪽).

저자는 또한 마케팅 전략이 경쟁자를 이기기 위한 도구라는 오해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강조한다. 저자는 최고의 마케팅 전략은 경쟁에서 벗어나는 것이라고 설파한다(284쪽). 그것은 마케터의 시선이 경쟁자가 아니라 항상 고객을 바라보고 있을 때 가능하다. 무엇보다 중요한 점은 소비자에게 가치를 제안하고 전달하는 과정은 모두 일관되게 소비자를 향해야 한다는 것이다. 경쟁자에 비해 차별적인 가치를 제안하되 그것은 경쟁자를 이기기 위한 것이 아니라 소비자에게 더 나은 만족을 주기 위함이어야 한다. 소비자를 위한 경쟁은 있을 수 있어도 경쟁을 위한 경쟁은 있어서는 안 된다. 궁극적으로 마케터는 ‘어떻게 하면 경쟁자를 이길 것인가’가 아닌 ‘어떻게 고객에게 지금보다 더 나은 가치를 제공할 수 있을까’를 끊임없이 고민해야 하는 것이다.

그 제품은 왜, 그리고, 어떻게 특별해지는가
스타벅스는 2018년 9월 이탈리아의 밀라노에 전 세계 두 개밖에 없는 프리미엄 매장인 ‘리저브 로스터리’를 오픈했다. 전 세계에서 네 시간마다 매장을 하나씩 오픈할 만큼 공격적으로 시장을 확대해온 스타벅스이지만, 스타벅스의 이탈리아 진출은 쉽지 않았다. 이탈리아인에게 스타벅스는 그저 평범한 인스턴트 커피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스타벅스는 철저히 현지화한 프리미엄 전략으로 오픈한 지 6개월도 채 안 돼 매달 5만 잔 이상의 커피가 팔리는 인기 매장이 되었다. 인근 카페에서 보통 1유로(약 1340원)에 판매하는 에스프레소를 스타벅스는 1.8유로(약 2420원)에 판매함에도 불구하고 까다로운 이탈리아 소비자들이 적극적으로 지갑을 열고 있는 까닭은 무엇일까? 스타벅스의 이탈리아 진출은 ‘이탈리아에서 도미노피자를 파는 것과 다르지 않’(263쪽)을 정도로 척박한 환경에서 그 제품은 왜, 그리고 어떻게 특별해졌을까?

큐레이션 커머스와 관련해 몇 해 전부터 주목받고 있는 것이 바로 구독 서비스(Subscription service)다(40쪽). 2015년 설립된 스낵네이션(snacknation)은 5000여 종의 과자를 랜덤으로 골라 매달 사무실에 정기배송하는 서비스를 시행하여 3년 만에 1000억 원 이상의 연매출을 올렸다. 성공의 핵심 요인은 무엇이었을까? 단순히 나트륨·당·밀가루가 적게 함유된 건강한 간식들을 엄선해서 보내는 것만으로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었을까? 2020년 비게임앱 중에서 다운로드 1위를 차지한 중고거래 플랫폼인 ‘당근마켓’은 어떤가(41쪽). 짜파구리는 성공했는데 매운콩라면은 시장 공략에 어려움을 겪은 이유(199~200쪽)는 무엇일까?

히트 상품을 둘러싼 이 흥미로운 물음들에 이 책의 저자 김지헌 교수는 고객 가치 이론을 바탕으로 명쾌하게 설명한다. 핵심은 역시 브랜드 전략의 시작과 중심에는 ‘소비자가 공감할 수 있는 가치’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소비자가 공감할 수 있는 가치를 기반으로 브랜드 정체성을 구축한 뒤 일관성 있는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소비자에게 전달하는 것이다. 저자가 최근 마케팅 현장에서 길어 올린 히트 상품들의 생생한 사례는 이 책의 중심 개념인 가치연쇄 모형 이론과 접목되어 체계적으로 만나볼 수 있을 것이다. 깊이 있는 마케팅 이론을 다루면서도 속도감 있는 저자의 글쓰기는 한 편의 재미난 이야기처럼 읽힌다.

저자는 책을 마무리하며 질문을 던진다. 어느 날 갑자기 나의 브랜드가 세상에서 사라진다면 어떻게 될까?(281~282쪽) 소비자는 친한 친구가 떠나간 것처럼 슬프고 안타까워할까? 저자는 이런 감정을 느낄 수 있는 소비자들이 많아야 진정으로 마케팅에 성공했다고 말할 수 있다고 한다. 마케팅의 본질은 ‘판매’가 아닌 ‘관계’이며, 관계지향적인 사고에서 멀어지면 시장에서 반드시 실패하기 때문이다. 마케팅 관점의 사고 프레임인 ‘마케팅 브레인’을 장착하는 것이 마케터가, 아니 인간이 사회적인 존재로서 생존하기 위한 필수 조건이라 말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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