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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여름 나기 위해 17년을 기다리다
한 여름 나기 위해 17년을 기다리다
  • 남상호 대전대
  • 승인 2004.08.0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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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 이름으로 여름을 생각함_매미

한차례의 장마가 지나가고 후덥지근한 여름 날씨가 기승을 부릴 때를 놓칠세라, 투명한 날개옷을 입고 암흑의 지하에서 밝은 지상으로 나와 활개를 치는 무리가 있으니, 이들이 바로 매미다. 이 매미야말로 여름철을 대표하는 악사로서 손색이 없는 곤충이다. 들이나 산, 도심에서 낮이고 밤이고 팀발을 두드려대듯 큰 소리로 시끄럽게 울어대기 때문이다. 매미 소리에 묻혀 다른 곤충의 소리는 아예 들리지도 않는다.

2억 5천년 전의 고생대 생물

매미가 팀발을 두드린다는 표현이 옳은 것은 아니겠지만, 이들은 엄연히 특정한 소리를 내는 고막이 있다. 이 고막을 영어로는 ‘Tymbal' 혹은 ’Kettledrum'이라고 한다. 따라서 ‘두드린다’는 표현이 아주 잘못된 것만은 아닌 것 같다. 매미가 우는 것도 암컷을 부르기 위한 수단이라서 고막은 수컷에게만 있고, 배의 첫째 마디 등쪽에 위치해 있다. 같은 마디의 배쪽 양옆에는 한 쌍의 또 다른 고막이 있는데, 이것은 소리를 듣는 기관으로서 배판이라고도 한다. 이 배판도 수컷의 것은 꽤 크게 발달해 있는데 비해 암컷의 것은 현저히 작다.

매미는 예로부터 우리와는 매우 친숙한 곤충으로, 그 조상은 이미 약 2억 5천만 년 전인 고생대 페름기 전기에 이 지구상에 출현했다. 현재 전 세계에는 약 4천 종의 매미가 분포하고 있는데, 우리나라에도 27종이나 분포하고 있다. 대부분의 매미류는 여름철에 성충으로 羽化하지만, 봄매미와 같이 4~5월경에 일찍 출현하는 종이 있는 반면, 늦털매미와 같이 9~10월경에 늦게 출현하는 종도 있다. 그러나 우리에게 그 이름이 낯익은 참매미, 말매미, 유지매미, 쓰름매미 등은 한여름인 7~8월경에 출현해, 여름을 대표하는 곤충이 된다.

성충이 된 매미는 주로 긁은 나뭇가지 등에 앉게 되는데, 날아다니는 시간보다 정지해 있는 시간이 더 많다. 서식처는 종에 따라 약간씩 차이가 있어서 털매미는 비교적 낮은 지대인 200m 이내의 평지, 쓰름매미?참매미 등은 400m 정도, 유지매미는 500m 정도의 고지에서, 山地性인 늦털매미는 200~1000m 정도의 숲에서 주로 생활한다. 또한 이름이 특이한 깽깽매미류는 寒地性이어서 주로 500~600m 이상의 고산 지대에서 생활하고 있다.

이들 매미류의 대부분이 머리를 위쪽, 즉 가지가 가는 쪽을 향하고 있는데 반해, 깽깽매미류는 머리를 반대 방향으로 해서 거꾸로 매달려 등이 지표면을 향하게 하는 向地性을 하고 있다.

매미 수컷은 행복해 

소리를 내는 곤충은 여러 종 있지만 매미만큼 풍부한 성량과 좋은 음질을 갖고 있는 곤충도 없다. 그러나 이렇게 훌륭한 소리를 낼 수 있는 것은 수컷뿐이며, 암컷은 일생 동안 소리 한 번 내지 못하고 죽게 된다. 이것을 비유해 유럽의 한 극작가는 “매미의 수컷은 행복할 지어다. 바가지(투정)를 긁는 아내(암컷)를 거느리지 않았으니...”라고 표현한 바 있다.

이렇듯 소리는 수컷만의 특권인데, 수컷은 배 부분에 發音器가 있어서 종류에 따라 고유한 진동수의 음향을 만들어 낸다. 수컷이 내는 소리는 크게 세 가지의 의미가 있다. 첫째는 동료들에게 자신의 존재를 알리는 것이고, 둘째는 암컷들을 유인해 짝을 지으려고 내는 것이며, 셋째는 자기 영역권에 침범하지 말라는 경고의 뜻으로 내는 것이다.

매미의 울음도 종류에 따라 그 시간대에 다소 차이가 있다. 즉 털매미는 해뜨기 전인 오전 4시부터 해질 무렵까지 끊임없이 울어대는데, 주변에 가로등이라도 켜져 있는 경우에는 밤에도 계속해서 울어댄다. 간혹 잡아서 몸에 바늘을 꽂아 놓아도 울음을 계속하는 경우가 있다.

그리고 말매미, 참매미, 유지매미, 쓰름매미 등은 오전 7시부터 오후 7시경까지 간헐적으로 울어댄다. 특히 유지매미는 저녁 무렵에 많이 울며, 기온이 어느 정도 높은 조건에서는 새벽에도 가끔씩 운다. 이 때에는 습도가 큰 영향을 미치게 되는데 대개는 밤중에 비가 온 후 새벽녘에 활짝 개어 습도가 올라갔을 경우이다. 그러나 저녁매미는 새벽이나 초저녁에만 운다. 즉 대낮이나 어두운 밤에는 울지 않고, 약간 컴컴한 숲에서는 대낮에도 우는 경우가 있다. 이는 아마도 적당한 온도에서는 明暗度가 발음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인 것 같다.

매미의 짧고도 긴 생애

매미 가운데 쓰름매미는 참으로 재미있게 붙여진 이름이다. 이 매미는 아침저녁으로 신선한 바람이 부는 가을의 문턱에 들어서서 그 음이 한창 높아지다가 갑자기 소리를 멈춘다. 이 매미에게는 슬픈 사연이 얽혀 있다.

어느 시골에 아름다운 처녀가 살고 있었는데, 병이 들어 도시에 나와 치료를 받게 됐다. 그러나 병세는 점점 악화되고 사랑하는 약혼자마저 그녀를 등지자, 절망에 빠진 그녀는 결국 시름시름 앓다가 마지막 신음소리를 토해 내고는 숨을 거두고 말았다. 이 아가씨의 슬픈 영혼의 소리를 따붙여서 쓰름매미라 이름 지었다고 한다.
성충인 매미는 한여름의 짧은 기간을 살기 위하여 매우 오랫동안 땅 속 생활을 해야만 한다. 교미를 마친 암컷은 배마디 끝에 달려 있는 바늘 모양의 뾰족한 산란관으로 식물의 조직 속에 알을 낳아 놓는다.

보통 한 군데에 5~10개 정도의 알을 30~40군데 정도에 낳아 놓는데, 대략 한 마리가 300~800개를 낳게 된다. 알은 1년이 지나면 흰 방추형의 애벌레로 된다. 이 애벌레는 식물의 조직 밖으로 나와서 몸을 싸고 있던 껍질을 벗어 내고 완전한 애벌레가 되어 땅 위로 떨어지게 된다. 여기서 땅을 파고 들어간 애벌레는 대롱 모양으로 생긴 주둥이를 나무뿌리에 박고 맛있는 진을 빨아먹는다.

매미는 우는 것뿐만 아니라 애벌레로 지내는 시기가 매우 긴 것으로도 유명하다. 어린 시기를 주로 땅속에서 2~5년 동안 지낸다고 하는데, 그 때 나무뿌리의 수액을 먹으며 자란다고 한다. 애벌레 기간이 어느 정도인지 조사된 종은 많지 않으며, 현재까지 성장 기간이 가장 긴 것으로 알려진 종은 미국산 17년 매미다. 금년에 대발생 해 미국인들을 크게 경악시키고 큰 피해를 입힌 매미인데 미국 동부 지방에서는 17년이나 자란다고 한다. 현지에서는 보통 ‘Periodical cicada'라고 부르고, 우리나라에서는 흔히 ‘17년 매미’라고 부른다. 남부 지방에서는 13년 만에 성충이 되기도 한다고 한다. 다 자란 애벌레는 땅밖으로 나와 나무껍질이나 풀잎 따위에 매달려 마지막 허물을 벗는다. 알은 보통 나뭇가지 속에 낳는데 부화한 새끼는 땅에 떨어져 뿌리를 찾아간다. 일생을 한 식물만 먹기 때문에 그 나무가 죽을 수도 있다. 매미가 귀를 즐겁게 할지는 몰라도 나무 입장에서는 엄청난 해충인 셈이다. 성충은 짝짓기 후 알만 낳으면 제 소임을 다 마친 것이므로 오래 살지 않는다.

매미는 대개 중대형이 많지만, 15mm 정도의 소형부터 80mm 특대형까지 크기가 매우 다양한 곤충이다. 몸이 넓으면서 양옆이 평행에 가깝고 날개는 대개 투명하다. 입틀은 창처럼 가늘고 길며 식물 조직에서 수액을 흡수한다. 겹눈 사이에 세 개의 홑눈이 있고 더듬이는 매우 작아서 짧은 실토막 같다. 앞다리는 대개 넓적다리마디가 굵고 아래쪽에 가시 같은 돌기가 있다. 거의 모든 종에서 수컷은 고막이 발달해 있고 암컷은 밖으로 돌출한 산란관을 갖고 있다.

남상호 / 대전대 생물학

>>우리문화 속의 매미_다섯 가지 德 갖춘 君子
 
하찮아 보이는 매미는 사실 우리 민속을 살펴보면 다양한 상징을 지니고 있다. 매미가 땅속에서 유충의 상태로 4∼6년 지낸 후 번데기를 거쳐 성충이 되는 변태과정은 不死와 재생을 상징하며, 고대인에게 생성-소멸을 반복하는 달의 작용과 동일시돼 왔다. 하지만 무엇보다 매미의 매미다움은 매미만이 갖고 있는 덕망에 있다. 유교에서 매미의 머리는 冠의 끈이 늘어진 현상이므로 文이 있고, 이슬만 먹고살기 때문에 淸이 있고, 곡식을 먹지 않으니 廉이 있고, 집을 짓지 않으니 儉이 있고, 철에 맞춰 허물을 벗고 절도를 지키니 信이 있어 군자가 지녀야 할 五德을 갖췄다고 여긴 것. 그리하여 매미는 君子之道를 상징하는 것으로 유교에서 강조해왔다. 이에 조선시대 벼슬아치들은 문, 청, 겸, 검, 신, 五德을 자신들이 본받아야 할 징표로 여겼다. 특히 이 시대 왕이 집무를 볼 때 쓰던 翼蟬冠나 벼슬길에 오르는 양반들이 쓰던 관은 매미의 날개로 만들어지거나 혹은 매미 날개와 머리 끈을 닮은 것이었다. 옛 사람들에게 매미의 덕의 깊이가 어느 정도였는지 가히 짐작하고도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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