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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법과 제도의 이해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법과 제도의 이해
  • 교수신문
  • 승인 2021.03.19 1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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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웅석 지음 | 박영사 | 916쪽

형사사법제도와 관련하여, 2020년 한해를 한 단어로 정리하면 ‘검찰개혁’일 것이다. 검찰개혁의 미비로 형사사법의 모든 문제가 발생한다는 입장으로 보이지만, ‘어떻게 개혁해야 하는가’라고 물으면 돌아오는 대답은 무소불위의 권력을 가진 검찰제도를 해체해야 한다거나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이하 ‘공수처’로 약칭함)를 설치해야 한다는 등 총론적인 논의만 있을 뿐 각론적인 내용이 없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을 거치면서, 촛불집회를 계기로 집권한 문재인 정부 역시 학계의 심도 있는 논의를 거치지 않고, 수사구조 개편과 관련된 형사소송법의 대폭 개정(수사권/기소권 분리) 및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의 설치 등 고강도의 검찰개혁을 추진하였으며, 이러한 변화는 종료된 것이 아니라 앞으로도 계속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권력형 부패범죄 사건을 공수처로 분산시키고, 일반 형사사건에 대한 수사권은 경찰에게 분산시켜 검찰이 제대로 자신의 역할을 수행하게 하겠다는 주장은 검찰을 공수처 사건을 제외한 일반 형사사건의 ‘기소청’ 정도로 축소하겠다는 말과 다름없다. 이는 사실상 대륙법계 국가들의 전통인 검찰제도를 폐지하겠다는 것으로, 이러한 논의는 영미법계 사법제도에 대한 치밀한 고민 없이 실제 우리나라 형사사법의 근간이 되었던 대륙법계 사법제도를 후진적인 시스템으로 폄하하는 확증편향에 기인한 것 같다.

물론 사회의 모든 분야가 국민을 위한 시스템으로 변모해 가는 과정에서 건전한 사회형성과 튼튼한 국가경제발전의 기반이 되는 부패방지를 위해서 상시적인 부패감시 시스템을 가동하자는 데에 어느 누구도 반대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공수처 설치 역시 부패범죄에 대한 수사를 보다 효율적으로 행사하도록 함으로써 우리나라에 만연해 있는 부패범죄를 발본색원할 수 있는 개선방안을 마련하자는 데 그 의미가 있다고 볼 수 있다. 다만, 권위주의정부 시절 우리나라 검찰이 국민의 인권보호와 사회정의를 위한 균형추의 역할을 잘하였는지 당위성은 별론으로 하고, 과연 독일에서 검찰제도가 도입될 당시에 주장되었던 검찰의 기본이념, 즉 “검찰은 권력의 의지를 실현하는 것이 아니고 법과 정의를 실현한다”는 이념과 전통에 충실한 제도적 설계를 했다고 말할 수 있는지는 의문이다. 더욱이 공수처 설치가 애초에는 고위공직자의 부패행위를 방지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로 고안된 것이었으나, 지금에 이르러서는 마치 검찰을 견제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로 추진되고 있는 분위기이다.

그러나 검찰을 믿을 수가 없어서 공수처를 만든다고 하면서 공수처장 역시 검찰총장과 마찬가지로 현 집권층(대통령)의 의도대로 임명하는 법률을 두고 정치권력으로부터 정치적 중립성 및 독립성을 유지하는 새로운 수사기관을 설치하기 위한 대안이라고 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보다는 검찰이 권력 실세의 의도를 잘 따르지 않으니 확실하게 순종적인 수사기관을 하나 만들어보자는 의도가 아닌가 의심할 수밖에 없다. 현재의 검찰이 그나마 조금이라도 독립적인 행보를 걷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지금까지 정치권의 눈치를 보다가 너무나 많은 비난을 받아서 검찰 스스로 노력하여 이룬 성과라고 보기 때문이다. 따라서 고위공직자의 부정부패를 척결하기 위해서 독립된 수사기관이 필요하다고 한다면 이는 현재 운용되고 있는 수사기관이 독립성을 유지하지 못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즉, 현행 형사소송법상 수사의 주재자는 ‘검사’인데, 검사들로 구성된 전국 단일 조직인 검찰이 독립성을 확보하고 있지 못하다는 말이다. 이처럼 검찰이 독립성을 확보하지 못하고 있다면 정치권력의 최상층부를 구성하는 집단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 외에 다른 현상은 있을 수 없다. 검찰이 무소불위의 권력을 가지고 있다고 하는데, 실제로는 정치권 실세의 눈치를 보는 것이 문제가 되고 있으며, 이는 정치권력의 핵심인 대통령이 검찰에 대한 인사권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법이론적으로 볼 때, 현재 논의되는 공수처 논란은 수사는 대륙법 체계를 취하고 있는 반면, 재판은 공판중심주의라는 미명하에 영미법 체계를 추종하는 데서 발생하고 있다. 따라서 이러한 논의의 전제조건으로 우리나라 형사사법체계를 영미법 체계로 할 것인지 아니면 대륙법 체계로 할 것인지를 먼저 결정한 후, 만약 수사도 영미법 체계로 변경하고자 한다면, 영미의 반부패 특별수사기구처럼 새로운 기구의 신설도 의미가 있을 것이다. 반면에 대륙법 체계를 고수한다면 새로운 기구의 신설보다는 현재보다 더 검찰의 사법기관성을 회복하는 방안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 즉, 검찰개혁은 새로운 기구의 신설에 대한 새로운 논의가 아니라 검찰본연의 모습인 ‘준사법기관으로서의 성격’을 회복하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 책 내용 중 대륙법계 검찰제도의 기능 및 역할을 장황할 정도로 소개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따라서 굳이 새로운 기구를 신설하고자 한다면, 차라리 법무부 외청으로 설치하면서 일부 국가처럼 부패전담수사청을 두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수사의 이원화를 방지하면서도, 검찰의 정치적 중립성을 보장하는 방안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결국 검찰보다 더 센 기관을 만들어서 검찰을 견제하겠다는 발상에서 출발한 공수처 설치는 사법개혁과 정반대되는 방향으로 한 걸음을 내딛는 것이라는 점을 경고하면서, 공수처가 권력에 휘둘리지 않는 공정하고 불편부당한 기관이 되는 것만이 태생적 한계를 극복하는 방안일 것이다.

끝으로 책을 집필하는 과정에서 공수처와 관련된 일부 논문이 검색되지만, 그 논문 역시 공수처의 신설에 대한 각자의 찬/반의 입장을 밝히고 있을 뿐, 공수처법의 구체적인 해석과 관련된 내용은 별로 없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한 국가의 형사사법제도의 근간인 검찰제도와 비교법적 관점에서 공수처의 유래 및 공수처법에 대한 해설서를 집필한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작업이 될 수밖에 없었다. 또한 책을 집필하는 도중 공수처법이 개정되고, 헌법재판소의 합헌결정(2021. 1. 28.)이 선고되면서, 순간순간 내용을 변경하는 작업 역시 책의 출간을 늦어지게 만든 요인이 되었다. 아무쪼록 본 책을 시작으로 갓 출범한 공수처에 대한 다양한 논의가 전개되기를 기대해 본다.

어려운 출판여건 속에서도 전문서적의 출간을 허락해 준 박영사와 까다로운 편집작업을 세심하게 수행해 주신 장유나 과장님 및 오치웅 대리님께 깊은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

- 책 머리말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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