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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연구실은 당신의 휴양지보다 뜨겁다
우리의 연구실은 당신의 휴양지보다 뜨겁다
  • 김조영혜 기자
  • 승인 2004.08.05 00:00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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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문학자 손영종 교수(연세대 천문우주학전공)

“선비가 한가로이 지내며 일이 없을 때 책을 읽지 않는다면 다시 무엇을 하겠는가? 그렇지 않게 되면 작게는 쿨쿨 잠자거나 바둑과 장기를 두게 되고, 크게는 남을 비방하거나 재물과 여색에 힘쏟게 된다. 아아! 나는 무엇을 할까? 책을 읽을 뿐이다.” -이덕무(1741~1793년)의 ‘耳目口心書’ 중에서

방학을 유급휴가쯤으로 여기며 교수직을 부러워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의 질시에 펄쩍 뛸 사람들은 바로 방학에도 연구에 바쁜 교수들이다. 10년 만에 찾아온 무더위에도 방학을 휴양지가 아닌 연구실에서 보내는 교수를 찾아 ‘연구실에서 여름나기’를 들어본다. <편집자 주>

 

▲손영종 교수 / 연세대 자연과학부 천문우주학전공 © 김조영혜 기자

“휴가 갈 시간이 있나요?”

방학도 한달 남짓 지난 무더위의 여름날, 연구실에서 만난 손종영 교수는 휴가는 다녀왔냐는 인사에 머쓱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손 교수는 “학기 중에 강의하랴, 학점내랴, 교수회의하랴 못한 연구, 방학에 해야죠. 집중해서 연구하려면 방학 두 달도 짧다”라며 “교수가 방학에 놀면, 연구는 언제 합니까”라고 반문했다.

 

손 교수는 여름방학 내내 아침 9시 15분에 연구실에 출근, 저녁 9시가 넘어서 퇴근하는 일상을 반복하고 있다. 토요일까지 하루 12시간을 연구에 몰두하는 셈이니 손 교수에게는 주5일 근무니, 주40시간 노동이니 하는 말은 남의 나라 이야기다.

 

이처럼 방학에도 연구실에서 하루를 보내다 보니, 10년 만에 찾아온 무더위가 달갑지 않다. 올 여름 교수들의 연구실에 에어컨이 하나씩 늘어가는 것도 어찌 보면 연구열정 때문이다. 공부는 머리로 하는 것이 아니라 엉덩이로 한다더니, 손 교수도 엉덩이에 땀띠 날 날씨를 견디다 못해 사비로 에어컨을 들였다.

 

아무리 할 일이 많아도 하기 싫은 일은 못하는 법. 게다가 정해진 출퇴근 시간도 없다면, 생활이 흐트러질 만도 하다. 그러나 손 교수는 “두 달 동안 휴가라고 뭐 하고 놀겠어요? 제일 재밌는 게 연구하는 건데”라며 웃기부터 한다.

 

손 교수는 방학 동안 연구할 거리를 얻으러 방학 직전 세계적 천문대인 하와이의 마우나케야 관측대에 가서 3박4일 동안 별구경을 하다 왔다. 이 때 찍어온 수천장의 영상을 분석하는데 6개월, 연구논문을 쓰는데 1년이 걸리니, 방학동안 연구할 거리는 확실히 챙겨온 셈이다.

 

구상성단을 관측해 항성의 진화를 예측하고 우주 형성의 기원을 연구하는 손 교수는 “방학기간이 제일 좋아요. 실컷 별보고 이 놈이 언제 태어나서 언제 죽을까만 생각할 수 있잖아요”라고 말한다. “별 보는 거 재밌어요. 전 세계 70억 인구 중에서 그 순간에 천체의 빛을 직접적으로 보는 사람은 단 한명, 나뿐이죠. 그렇게 생각하는 순간, 스릴이 넘칩니다. 1초, 2초 넘어가는 그 시간이 아까울 정도죠. 천체의 빛을 온전히 받아들여 볼 수 있는 세계 최첨단의 거대 망원경이 나한테 주어졌는데 또 뭐가 필요하겠습니까. 그 맛에 관측하죠.”

손 교수의 하루는 크게 셋으로 나뉜다. 오전에는 천문대에서 찍어온 가시광선, 적외선 영상자료를 분석하고, 오후에는 대학원생 연구팀과 그날의 연구 과제를 확인하고, 저녁에는 우주망원경 갤렉스에서 나온 자외선 영상자료를 연구한다. 생활이 단순하다 보니, 따로 일정표도 없다.

 

“방학동안 실컷 연구할 수 있어 좋다”라는 그의 반복되는 말에서 ‘학자 기질’이란 게 바로 이런 것임을 느낀다.

▲그는 하루 열두시간을 연구실에서 보낸다. © 김조영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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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4-08-07 09:23:22
남자들은 집안 걱정, 애 걱정없이 연구만 할 수 있으니...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