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4-16 14:10 (화)
2006년, 박사대란 온다
2006년, 박사대란 온다
  • 안길찬 기자
  • 승인 2001.04.30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교수자리 ‘하늘의 별따기’…양성보다 활용 대책 서둘러야
“일부 학문분야의 박사는 앞으로 20년이 지나도 취업할 가능성이 희박하다.”

 
지난 20일, 교육인적자원부는 고사위기에 몰린 기초학문을 살리겠다는 목적으로 ‘기초학문육성위원회’를 구성, 첫 회의를 가졌다. 박사실업 대책을 논의한 첫 모임에서 교육부 구관서 대학지원국장은 이 같은 말로 박사실업의 심각성을 털어놓았다. 대학정책을 총괄하고 있는 교육관료 입에서 불거진 말이다. 장밋빛 미래에 기대어 고단한 학문수학 과정을 마다하지 않고 있는 학문후속세대들에게는 충격으로 받아들여질 만한 얘기다.

그러나 사실이다. ‘학문분야별 고급인력 수급 전망에 관한 연구’서 연구진이 내린 결론은 이러하다. “특단의 조치가 있지 않는 한 올해 대학원 입학자들이 졸업하는 2006년경에 박사실업 대란은 불가피하다”

갈수록 취업가능성 희박

 
지금까지 적체된 박사규모와 앞으로 양성될 박사규모를 감안한 ‘박사공급’과 향후 6년간 대학과 각종 부설연구소, 산업체에서 수용가능한 ‘박사수요’를 비교해 볼 때 박사실업은 갈수록 심화되면 됐지 감소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2006년까지 취업을 해야하는 박사인력은 적체된 사람까지 포함해 5만3천5백84명, 그러나 수요는 2만6천5백21명밖에 되지 않는다. 두 명의 박사 중 한 명은 실업자로 전락하는 날이 머지 않았다는 결론이다.

연구진은 각종 교육통계와 정부출연·민간연구소의 박사채용 규모를 토대로 2000년 현재까지 미취업상태인 박사 수를 학문분야별로 추정했다. 그 결과 인문계열 4천6백38명(실업률 54.4%), 사회계열 2천7백98명(31.7%), 이학계열 3천1백49명(41.8%), 공학계열 2천8백69명(18.0%)이 과거 10년내에 박사학위를 받고도 정규직에 취업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됐다. 연구진은 또 지난 20년간의 평균 교수 증감율 등을 바탕으로 2006년까지 양성될 박사의 규모를 예측했는데, 이미 직장을 가진 자를 제외한 박사학위자를 인문계열 4천7백10명, 사회계열 9천1백49명, 이학계열 5천7백38명, 공학계열 2만5백33명으로 추정했다.

하지만 2006년까지 대학과 각종 연구소 등에서 수용 가능한 수요를 가장 낙관적으로 산정하더라도 인문계열 3천5백31명, 사회계열 6천5백36명, 이학계열 3천9백11명, 공학계열 1만3천85명밖에 되질 않았다. 결국 학문분야별로 인문 5천8백17명(실업률 62.2%), 사회 5천4백11명(45.3%), 이학 4천9백76명(56%), 공학 1만3백17명(44.1%)이 2006년엔 실업자가 될 수밖에 없다는 관측이다. 결론적으로 2006년이 되면 학문분야별로 인문계열 5천8백17명(실업율 62.2%), 사회계열 5천4백11명(45.3%), 이학계열 4천9백76명(56.0%), 공학계열 1만3천17명(44.1%)이 실업상태를 맞게 된다는 것이다.

실업, 사회문제로 확대

이는 곧 인문계열의 경우 박사의 일자리가 학위 취득순서로 채워진다고 단순 가정할 경우 올해부터 배출되는 박사는 전혀 취업할 가능성이 없다는 해석으로 이어진다. 다른 학문분야에 비해 비교적 취업할 곳이 많다는 공학계열도 2006년까지 2만 여명의 박사인력이 양성될 것으로 예상돼, 민간부분의 수요가 큰 폭으로 증가하지 않을 경우 절반 가까이가 취업난에 허덕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더욱 큰 문제는 연구진의 이 전망이 가장 낙관적인 상황을 전제로 한 예상이란 점이다. 연구진은 박사의 증가세가 현 수준을 유지하고, 대학과 각종 연구소의 박사수요가 꾸준히 증가할 것이란 추측에서 이 같은 결론을 도출했다. 그러나 대학의 교수채용 문은 점점 좁아지고 있고, 각종 정부출연연구원은 연구인력을 감원하고 있는 형편이고 보면 박사실업은 사회문제로 확대될 가능성이 크다. 박사실업난은 단기적인 처방으로는 치유될 수 없는 구조적 문제로 발전하고 있는 것이다.

박사들의 실업난은 갈수록 심화되고 있지만 정부는 이렇다할 대책을 세우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정부의 고급인력 정책은 적체된 박사들을 활용하기보다 그 수만 늘리는 ‘양성’에 초점을 두고 있다. 대학원 정원정책은 학계와 산업계의 수요를 고려하지 않고 양적 팽창만 부추겨 왔다. 1990년 3백3개 대학원에 재적학생 8만7천1백63명이던 대학원의 양적규모는 1995년 4백27개 대학원 11만3천8백36명으로 80%가까이 확대됐고, 2000년에는 8백29개 대학원에 22만9천4백39명으로 급증하고 있다. 이러한 대학원의 양적 팽창이 결국 박사실업 사태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거꾸로 가는 고급인력 정책

오히려 정부의 고급인력 정책은 거꾸로 흘러간다. 1조4천억원이란 막대한 국가예산을 투입하고 있는 두뇌한국(BK)21 사업은 대표적 사례다. 시행 3년을 맞고 있는 BK21사업은 국가경쟁력 강화를 위해 매년 2천여명의 박사양성을 목표로 하고 있다. 하지만 지금까지 배출된 박사들이 제자리를 찾아 역할을 다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BK21 사업은 박사 실업난만 부채질할 가능성이 크다. 책임지지도 못할 박사를 양성해 실업자를 만드는 정책에 다름아니라는 것이다. 박사들의 대규모 실업사태는 정부의 고급인력 정책의 중심이 ‘양성’에서 ‘활용’으로 이동해야함을 요구하고 있다.
시급한 것은 고급두뇌를 키워내는 것이 아니라 자기자리를 찾지 못하고 놀고있는 고급두뇌를 활용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는 것이다.
안길찬 기자 chan1218@kyosu.net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