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듣기와 달빛(陰)의 은유 ‘노자’, 톨스토이가 번역
듣기와 달빛(陰)의 은유 ‘노자’, 톨스토이가 번역
  • 김재호
  • 승인 2021.03.14 16: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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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톨스토이가 번역한 노자 도덕경』 레프 톨스토이 지음 | 최재목 옮김 | 21세기문화원 | 451쪽

상처받은 영혼들은 헤메고 헤메이다 ‘도덕경’에서 종종 위안을 얻는다고 한다. 현자와 성인을 빗댄 다음 구절을 보자. “무거운 것은 가벼운 것의 바닥에 놓인다. 침묵은 움직임을 지배한다.”(제26장) 또한 인간의 한계에 대한 다음 문장을 보자. “자신의 깨달음의 깊이를 알고 무지 속에 남아 있는 자는 온 세상의 모범이 된다.”(제28장) 그러니 현재 정체돼 있다고, 혹은 방황한다고 해서 좌절하지 말자. 지금의 침묵과 무지는 큰 움직임을 동반할 수 있다.

톨스토이(1828∼1910) 역시 그랬다. 그는 인생의 고통스런 시기에 ‘노자’를 접하고, 번역하기까지에 이른다. 톨스토이가 러시아 최초로 완역한 『노자 도덕경』이 최근 국내에도 번역됐다. 옮기고 역주를 단 이는 바로 최재목 영남대 교수(철학과)이다. 위 문장들은 최 교수의 번역에서 인용했다. 책에는 81장 체제 왕필본의 『노자 도덕경』이 오른편에 담겨 있어 대비된다.

 

노자, 청각적·여성적 사상

최 교수는 “중국 지성사에서 공자의 『논어』는 ‘햇빛[陽]-남성적 원리’로서 ‘작위와 문명’ 세계의 건설을 위한 책이었고, 노자의 『노자』는 ‘달빛[陰]-여성적 원리’로서 ‘무위와 자연’을 위한 책이었다”고 평했다. 아울러, 최 교수는 “노자의 철학이 ‘시각적=비디오적=남성적 사상’이 아니라, ‘청각적=오디오적=여성적 사상’임”이라면서 보는 것보다 듣기에 탁월한 사상으로 은유된다고 설명했다. 1877년 톨스토이는 『도덕경』 번역을 하고자 마음 먹는다. 그 결과는 1892년에야 세상에 나왔다. 그런데 사실 번역은 그 당시 모스크바에 유학해 심리학·철학사를 전공한 일본인 고니시 마스타로(1861∼1939)와 공동 작업한 것이라고 한다. 톨스토이는 여러 언어 번역본의 『도덕경』을 참고해 중역(重譯)을 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특히 중국어까지 공부하고자 했던 걸로 봐서는 ‘러시아 최초’라는 표현이 결코 무색하지 않다.

과감히 살아 있는 말로 번역

최 교수는 톨스토이의 『노자 도덕경』이 두 가지 점에서 의미 있다고 밝혔다. 첫째, ‘과감하게 시도했던 번역’이다. 자신의 사상을 담아서, 자신의 말로 살아있는 단어들로 번역했다. 예를 들어, 왕필본과 비교해보자. 제81장을 보면, 왕필본은 “믿음직스러운 말은 아름답지 않고, 아름다운 말은 믿음직스럽지 않다”고 했다. 그런데 톨스토이는 이에 대해 자신의 말로 번역해 “진실의 목소리는 우아하지 않다. 우아한 말은 거짓말이다”고 표현했다.

둘째, ‘타자적 사유’에서 『노자 도덕경』을 번역했다는 점이다. 동양의 고전을 문자 해석적으로만 본 게 아니라 유럽인의 시선으로 살펴보고자 했기 때문에 더욱 개방적인 해석이 가능했다. 

‘노자’ 하면 ‘무위’의 사상으로 집약된다. 최 교수는 이런 점이 톨스토이의 비폭력 평화주의나 무교회주의 등에 영향을 끼쳤을 것이라 해석했다. 특히 이번에 번역된 최 교수의 『노자 도덕경』에는 톨스토이와 고니시의 번역 과정이 상세히 담겨 있다. 그들이 그때 했던 고민들로 인해 우리는 지금 톨스토이와 고니시가 번역한 『노자 도덕경』을 읽을 수 있다. 물론 최 교수의 고민과 수고 또한 포함되어 있다.

김재호 기자 kimyital@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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