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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의 존재방식으로서의 '순간성'
예술의 존재방식으로서의 '순간성'
  • 이은혜 기자
  • 승인 2004.07.15 00:00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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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호성의심화 혹은 확산

1930년대 기술복제시대의 충격을 온몸으로 받아들였던 발터 벤야민은 예술작품에서 받는 인상과 경험을 ‘일회성’과 ‘산만함’, 두 단어로 표현한 바 있다. 일회성이란 예술작품의 아우라가 한 순간 나타났다 사라진다는 걸 의미하고, 산만함이란 현대의 감각적 질서가 스쳐가는 복잡한 현상들 속에서 흩어지듯 구성돼 있다는 걸 의미한다.

오늘날 상황도 그리 다르지 않다. 우리의 예술적 경험은 일회적인 것이면서 산만하게 돌아간다. 그러한 유목적이고도 변화무쌍한 미적인 경험을 ‘순간성’이라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순간성’은 때론 무의식적으로, 혹은 실험정신이나 강한 자의식으로 표출되는 오늘날 예술이 존재하는 하나의 방식이다.  

의도된 순간성은 행위예술, 디지털예술, 팝아트 같은 인터랙티브한 장르에 많이 등장한다. 길거리에서 펼쳐지는 퍼포먼스의 핵심은 관객과의 상응이다. 이로써 기존 장르에 구속되지 않는 새로움을 추구한다. 그렇다면 오늘날의 각종 예술현장은 어떤가. 미술을 비롯해 모든 예술이 가볍고, 일상적이며, 기괴하거나 지나친 비예술의 제스처를 취하고 있다. 그것은 고유의 아우라를 지닌 작품이기보다는 보여지고 사라지기를 반복하는 ‘순간성’의 연속이라는 트렌드를 형성하고 있다.

지난 6월까지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열렸던 ‘일상의 연금술’展을 보면 휴지나 수건, 못쓰는 폐품 같은 잡동사니들을 소재로 조형물이 만들어진다. 한번 쓰고 버릴 물건을 가공해 비범한 예술품으로 탄생시켰다는 점에서 일회적인 물질이 갖는 의미, 예컨대 자본주의 비판 등을 높이 살 것인가, 아니면 그 이면에선 가볍고 쾌락적인 방식으로 바뀌어가는 오늘날의 예술적 태도를 읽을 것인가. 

웹상의 전시회 풍경들은 우리에게 ‘순간성’이라는 철학적 질문을 요구하는 게 사실이다. 우선 너무 많은 양의 작품이, 고정되지 않은 채 관객의 선택에 따라 펼쳐지는 상황이 그렇고, 하나의 컨셉을 다양하게 변조해서 만들어내는 창작환경도 그렇다. 하지만 이런 웹아트들이 미디어 예술의 창시자인 백남준의 텔레비전 건물들과 비교될만한 것인지 의문이다. 우효기 디지털비평가는 현재의 디지털 예술이 처한 상황을 “정신성이 배제된 채 쉽게 얻어진 혼합영상에 작가와 관객이 쉽게 감탄하는 수준”이라고 진단한다. 기술적 수준에서는 완벽하지만 예술적 수준에서는 졸렬하다는 게 디지털 예술의 현실이라는 것이다.

디지털을 통해 일상과 더욱 밀접해진 사진예술은 우리에게 ‘순간성’이라는 것의 덧없음을 환기시킨다. 문제는 이를 통해 ‘의미있는 순간을 포착해 영원한 것으로 고정시키는’ 사진의 고전적 역할이 위협을 받는다는 사실이다. 컴퓨터로 조작되는 디지털 이미지는 합성과 조작과 왜곡을 거쳐 생성되고 소멸된다. 그리고 그 속도는 너무나 빠르다. 장 루이 코몰리의 말처럼 여기서는 이미지의 광란과 미학적인 혼돈이 발생한다. 사진평론가 진동선 씨는 그러나 “디지털 사진은 새로운 정치와 사회, 과학, 문화이론적인 배경을 가지고 21세기의 고유한 예술장르로 자리잡을 것”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즉 디지털사진이 문제가 아니라 그것을 바라보는 우리의 관습화된 시선이 바뀌게 될 것이란 점이다.

이런 시대적인 변화에 따른 예술작품들의 ‘가볍고 순간적인 반란’들은 패러다임 차원에서 논의해야 할 성질의 것이다. 그런 점에서 머스 커닝햄의 무용예술에서 보이는 즉흥성과 우연성에 의해 창조된 몸짓의 조화를 이야기하는 것은 약간은 이질적인 맥락을 도입하는 것일 테다. 커닝햄의 예술은 시공간의 무한한 열림에 대한 신뢰와 확신의 결과물이고, ‘상호성’보다는 ‘주체성’이 무한히 확장된 일방향적인 예술이기 때문이다. 짚시의 정서를 기반으로 한 ‘플라멩고’ 같은 춤예술도 마찬가지다. 떠돌아다니는 자들의 삶을 위로하는 것으로서의 몸짓은 순간순간으로서의 우리의 삶을 떠올리게 하는 ‘성찰적’인 기능과 거기에 열렬히 동참하는 육체의 몸짓을 동시에 생산해낸다.

장인정신에 의한 창조와 그것에 대한 존경으로서의 예술감상이라는 조건이, 자유의 발산으로서의 창작과 그 창작이 마련한 무대 위에서의 춤추기로서의 감상으로 바뀐 오늘날 ‘순간성’은 예술의 창조 및 감상의 조건이 돼가고 있다. 그것은 작품에서 아우라를 발견하는 ‘통찰’로서의 순간과는 명백히 다른 것이다.

이은혜 기자 thirteen@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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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쎄요 2004-07-29 13:05:22
'일회성'을 잘못 이해하신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