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3-29 23:55 (금)
녹색평론 3,4월호 (제177호)
녹색평론 3,4월호 (제177호)
  • 교수신문
  • 승인 2021.03.12 15:1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녹색평론사 ㅣ 248쪽

 

기후위기와 농사
‘기후위기’가 불과 한두 해 전에 우리 사회에서 어떻게 인식되었는가를 되돌아보면, 격세지감이란 말을 실감하게 된다. 기후재앙의 위기 속에서 농업은 양가적 의미를 갖는다. 현대의 글로벌 식품체계를 뒷받침하고 있는 산업적 농업(식품의 생산 단계에서부터 가공, 유통까지 모두 포함하는)은 현재 인류가 당면하고 있는 생태위기에 막대한 기여를 해왔다고 말할 수 있다. 한편 그렇기 때문에 농업의 방향전환, 즉 전세계적 식품체계를 공급사슬이 짧은 지역을 중심으로 한 체제로 변화시키는 일은, 인류 문명을 존속시킬 수단으로서도 엄청난 중요성을 갖는 것이다.
177호 《녹색평론》은 대기업이 지배하고 있는, 화학물질과 대형기계에 의존하고 있는 농산업 체제에 대한 대안으로서 소농이 중심이 된 지역 자립과 자치를 이야기한다(윤병선). 그리고 2018년 유엔 인권이사회가 채택한 <농민·농촌노동자 권리 선언>의 의미를 다시 한번 짚고, 이러한 인류의 먹거리와 환경, 전통과 문화에 있어서의 농업의 역할에 대한 인식에 기반한 새로운 농업통상 질서가 필요하다는 점을 역설한다(송기호).
오늘 한국의 농촌을 생각할 때, 간과할 수 없는 문제는 난개발과 공해시설의 난립이다. 특히 이른바 ‘국가균형발전’이라는 이름으로 부동산 투기판이 벌어지고 있는 세종시 지역의 사례를 통해 그 실상을 확인하고(강수돌), 기형적으로 비대해져만 가는 도시를 떠받치기 위해서 농촌이 에너지 생산기지, 쓰레기 처리시설로 전락하고 있는 사실을 고발하면서(하승수, 김형수), 건강한 사회를 위해서 필수 불가결한, 마치 폐와 같은 역할을 농촌이 담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환기한다. 그리고 황폐한 농촌 현실을 뚫고 나갈 대안으로서 농촌기본소득(박경철)과 농생태학(콜린 토드헌터)의 의의를 논증하고, 정책적 도입을 역설한다.
우리 시대의 농사상가 웬델 베리의 짧은 에세이는 ‘농부’가 사라진 미국의 농촌 현실을 묘사하고 있다. 요컨대 ‘정교하고 복잡한 예술활동’이었던 농사가 매뉴얼대로 화학물질을 투입하고 기계를 작동하는 기계적 작업으로 전락했다는 말이다. 이 글을 읽노라면 생계와 즐거움을 동시에 취하면서 땅을 보살펴온 농민과 농촌공동체의 상실이 인류사회에 어떤 의미를 갖는 것인가, 독자는 다시 생각하게 된다. 유문철의 진솔한 귀농 이야기 역시 사람살이를 근본으로부터 물으면서, 자기 자신과 미래 세대 그리고 삶의 터전에 대해 책임감을 갖고 살아가는 것에 대해 숙고하게 만든다.

생태문명으로 가는 길
불가에서 밥을 가리키는 용어인 ‘공양’은 원래 ‘공희(供犧)’에서 온 말이라고 한다. 고 김종철 《녹색평론》 발행인은 바로 이 밥을 풀어 이야기함으로써, 만물이 만물을 먹여 살리고 모시는 이천식천(以天食天)의 원리, 생태문명의 원리를 설명하고 있다. 그 밖에도 177호 《녹색평론》은 최근 심각한 국내외 이슈로 대두되고 있는 후쿠시마 및 월성의 방사능 오염수 문제(김익중), 미국 바이든 정권 아래의 한반도의 지정학적 풍향(이부영)을 검토하고, 코로나 이후 우리가 나아갈 방향을 모색하는 데 도움을 줄 도시정책(박용남), 섭생법(이기영) 등을 소개하고 있다.
김남일의 여섯 번째 ‘시대와 소설’ 연재는 2018년 부커상 수상작 《밀크맨》을 다루었고, 세 번째 연재분인 이보 모슬리의 ‘민중의 이름으로’는 영국에서 대의민주주의가 태어나 하나의 정치제도로 확립되어가는 과정을 살펴본다. 이번호에 새롭게 시작하는 연재는 나희덕 시인의 ‘소로에게 보내는 편지’이다. 소로의 삶, 사상의 여정을 따라갈 앞으로의 연재가 기대된다. 더불어 이번호는 이덕규 시인의 신작 시 <때와 일>, <나는 지금 달구지 위에 있다>와 함께, 이병률 시인의 <적당한 속도, 서행>, <숨> 두 편의 시를 재수록하여 소개하였다.
윤정숙은 ‘인권’이라는 개념을 통해 기후위기라는 담론을 확장하고 인류가 공통으로 이 문제를 해결해나가기 위한 방법을 탐색하고 있는 《탄소사회의 종말》을 간략하게 소개했다. 구점숙은 한국 농업문제의 핵심을 짚고, 대안 농식품운동의 정책적인 진로를 모색하고 있는 《푸드플랜》을 평가하고 있다. 최성현은 일본 농사상가 우네 유타카의 《농본주의를 말한다》를 소개하면서, 코로나19를 돌파하고 나갈 미래의 세계관으로서 농본주의를 제시한다. 이지문은 근대 대의민주주의의 역사에서 방기되어온 ‘정치적 평등’과 ‘숙의’가 다시 부상하고 있는 현실 속에서 ‘대중참여’를 어떻게 구체적으로 제도화할 것인가 하는 지점을 궁구하고 있다. 박태현은 《자연의 권리》에 개괄되어 있는 ‘자연의 권리론’이 뜻하는 바에 대해서 주목하고, 근대적 세계관을 구현하는 법철학을 넘어서, 새로운 진화된 법철학이라 할 만한 ‘지구법’을 위한 운동을 주장한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