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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실성 있는 재난연구를 향해서
적실성 있는 재난연구를 향해서
  • 김정훈
  • 승인 2021.03.16 09:0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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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훈 동아대 기업재난관리학 박사과정 중이다. 2020 제10회 대학원생 KIPA-KAPS 정책연구 발표대회’에서 정책기업가에 대한 논문으로 우수상을 받았다.
김정훈 씨. 동아대 기업재난관리학 박사과정 중이다. 2020 제10회 대학원생 KIPA-KAPS 정책연구 발표대회’에서 정책기업가에 대한 논문으로 우수상을 받았다.

재난이란 무엇일까? 전통적으로 재난은 풍수해와 같은 자연적 위험요소에 의한 불운으로 간주되어왔다. 하지만 성수대교와 삼풍백화점 붕괴사고와 같은 대형 건축물의 붕괴는 부실시공이 원인이었다. 대구 지하철 화재 사고와 허베이 스피리트호 원유 유출사고는 인간의 고의 또는 부주의에 의해서 발생하였다. 세월호 사고는 안전관리체계와 법·제도의 부실로 인해 발생하였다. 점차 다양한 원인의 사건을 재난이라 부르게 되었고, 자연적 위험요소와 같이 발생원인 자체를 재난으로 보기 보다는 발생한 사건의 사회적 혼란의 정도가 크면 이를 재난이라고 보게 되었다.

이처럼 재난은 자연 현상을 넘어서 사회적 현상으로 이해해야 한다. 특히 사회적으로 정의되는 재난은 피해가 특정 계층에 편중되게 함으로써 사회의 취약성을 드러내는 역할을 한다. 인도해 쓰나미 당시에 남성과 여성의 업무 장소나 복장의 차이는 여성의 높은 사망률로 이어졌다. 뿐만 아니라, 과거 거주 불가 지역에 건축물을 지을 수 있는 신기술과 개발 지향적인 법·제도 등은 해안가나 매립지와 같이 재난 발생 위험이 더 높은 곳에 사람들을 거주하게 만들었다. 사회적 자본의 수준은 사람들이 재난 대피 경보를 얼마나 빠르게 들을 수 있냐에 영향을 끼쳤고, 자체 대피 수단의 유무는 대피 경고를 듣고도 사람들을 도망가지 못하게 만들었다. 결국 재난 연구에서 기술만큼이나 정치·사회·문화적 고려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미국 뉴욕대 에릭 클라이넨버그 교수의 시카고 폭염 연구는 주목해볼 만하다. 1995년 시카고 폭염은 일주일에 700명 넘는 사망자를 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폭염을 이상 기상현상으로 간주했지만, 그는 폭염으로 인한 사회적 측면에 집중했다. 특히 근거 이론을 활용하여 인접 지역임에도 불구하고, 폭염으로 인한 사망률이 극적으로 차이나는 지역들의 차이를 이해하고자 하였다. 그는 6개월 동안 매일 현장 주변의 특징들을 관찰하며, 40명 이상의 피해자와 이해관계자를 인터뷰 했다. 이렇게 얻어진 자료와 기존 통계 데이터 자료들을 상호 보완적으로 활용하였다. 그는 다수의 폭염 사망자들이 우리 사회에 존재하는 극단적인 취약성, 고립, 박탈 때문이었다는 의미 있는 결과를 도출해냈다.

세월호 사건 이후에 국내 재난 연구는 양적으로 많은 성장을 이뤄왔지만 부족한 점이 많은 것이 사실이다. 앞으로 재난 연구자들은 다음과 같은 자세와 태도를 갖출 필요가 있다. 먼저, 재난 연구에서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는 재난 피해자 및 여러 관계자들의 생생한 경험을 이해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 재난 발생 시 곧바로 현장으로 이동할 준비가 되어야 한다. 물론 국내에서 아직 이러한 연구 수행을 지원하는 프로그램이 부족하지만, 미국의 신속한 연구를 위한 지원 프로그램(Quick Response Research)은 참고할 만한 모범사례이다. 다음으로, 연구 수행을 위해서 유연함을 갖추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 양적 연구뿐만 아니라, 질적연구와 혼합연구에 대한 연구를 수용하고 활성화시킬 필요가 있다. 특히, 한국과 같은 관계주의에 기반한 고맥락 사회에서 개인주의에 기반한 서양의 양적 연구결과를 그대로 차용하는 것은 예상치 못한 부작용으로 이어질 수 있다. 따라서 일반화가능성이 제한되고, 표준화된 연구프로토콜이 부재하지만 연구자의 적절한 판단이 수반되는 심층적인 질적 연구가 도움이 될 수 있다.

연구자로서 장학금, 연구프로젝트, 학위 취득과 같은 현실적 어려움 속에서 학업을 이어나가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문후속세대 재난 연구자들이 이 부분에서 진지하게 고민하고 노력해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앞으로 취약계층에 더 가혹한 피해를 입히는 재난의 사회적 취약성을 강화하는 정책담론에 관심을 가지고, 정책 실패가 올바른 정책 학습으로 이어질 수 있는 연구를 수행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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