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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식당 개성밥상
통일식당 개성밥상
  • 교수신문
  • 승인 2021.03.12 1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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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혜경 지음 | 들녘 | 512쪽

개성 음식은 개성 있다!
시간과 이념을 초월한 고려, 개성의 음식을 만나다

음식에는 그 무엇보다도 강력한 힘이 있다. 음식은 시공간에 구애받지 않고 이념, 체제 문화의 간격을 뛰어넘는 유일하고도 매력적인 매개체다. 또한 음식은 어떤 약으로도 치료할 수 없는 우리의 마음을 달래주는 영혼의 치료제이기도 하다. 흔히들 ‘이 시국’이라 부르는 요즈음, 정치·경제·사회·문화 대부분이 얼어붙어 있고 남북 관계는 그 어느 때보다도 경색되어 있다. 이토록 모두가 어려운 와중에도 우리의 마음을 위로해 주는 것은 음식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일상에서 매일 마주하고 경험하는 밥상은 어디에서 온 것일까? 조선 시대를 살아간 조상들의 밥상이 그 근원일까? 우리가 오늘날 먹는 수많은 음식들은 고려의 밥상에 뿌리를 두고 있다. 개성은 고려 왕조 500년의 도읍이라는 역사적인 연원이 있는 도시이며, 지리적으로도 한반도의 중간에 위치한다. 개성 음식은 한반도 남쪽의 짜고 매운 맛, 북쪽의 싱겁고 심심한 맛 그 가운데서 중립적인 맛을 지키고 있다. 이러한 개성 음식이야말로 우리 민족의 정서를 가장 정확하게 담아낸 문화이자 역사 그 자체다.

음식은 그 지역과 문화를 드러낸다. “개성 음식은 개성 있다”는 말처럼 개성 음식은 말 그대로 ‘개성 있다’고 할 수 있다. 고려 개경은 막혀 있는 불통의 도시가 아니었다. 각국에서 온 사람들로 활기가 넘치고 다양한 문화가 유입되어 새로운 먹거리 문화가 형성되었다. 보김치, 편수, 개성 장땡이, 개성 주악, 홍해삼, 호박김치, 개성무찜 등 고려의 역사와 문화를 담은 다양한 개성 음식에서 우리는 이루 다 말할 수 없을 만큼 다채로운 맛과 멋의 조화를 본다.

‘고려’하면 ‘청자’라고 할 수 있을 만큼 청자는 고려를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다. 고려청자가 한국을 대표하는 문화유산이라는 점은 반박하기 어렵다. 많은 사람들은 고려청자를 두고 함부로 범접할 수 없는 우아하고 고급스러운 선대의 흔적으로 인식한다. 그러나 청자는 대부분 고려 사람들이 사용했던 ‘식기’다. 일상생활에서 밥과 국, 음료를 담아서 먹는 살림살이로 고려청자는 기명의 역할을 하였다. 그렇다면 이처럼 유려하고 고운 그릇에는 어떤 음식들이 담겼을까? 우리는 〈통일식당 개성밥상〉을 통해 이 궁금증을 해소할 수 있다. 이 책에는 고려 시대, 태안에 침몰되었던 여러 호의 선박에서 출수된 도기들에도 주목했다. 고려인들의 일상은 태안 마도선에 실려 있던 청자와 목간, 죽찰에 새겨진 글과 그림, 식재료에 고스란히 녹아 있다. 이 흔적들은 우리를 고려인의 식생활로 한발 더 다가갈 수 있게 해준다.

개성 음식을 두고 ‘아름답고 문화적인 가치가 녹아 있다’고도 한다. 개성 음식은 시각적으로도 아름답고, 맛도 정갈하며, 이를 담아내는 손길마저 섬세하다. 고려 이후, 조선시대에 개성은 마치 섬에 고립된 것처럼 전통을 지켜나갔다. 고려의 맛을 그대로 간직한 조선시대 밥상은 한식의 특징을 형성하는 기틀이 되어주었다. 개성에서는 떡국 하나를 끓일 때에도 다른 지역과 달리 조롱박 모양으로 떡을 빚어내어 개성 있게 만들어 먹었다. 무작정 누군가를 모방하지 않고 새롭게 창조하면서 막대한 부를 쌓았던 개성 상인들은 음식 하나부터 새롭고 특색 있게 만들어 먹었으니, 이는 오늘날 음식을 하거나 가공음식을 만드는 사람들도 배워야 할 자세가 아닐까? 개성 사람들과 개성 음식을 통해 우리는 ‘요리란 무엇인가’를 다시 한 번 생각해보아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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