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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초학문 취업율 20%미만…수요·공급 시스템 완전 붕괴
기초학문 취업율 20%미만…수요·공급 시스템 완전 붕괴
  • 안길찬 기자
  • 승인 2001.05.03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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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사실업대란
 
두뇌한국(BK)21 사업이 시작될 때 학계에선 이 정책이 박사실업만 부추길 것이란 비관적 해석을 내렸다. 당장의 박사적체도 해소되지 않는 형편에 책임지지 못할 고급두뇌를 키워내 실업자 만들 공산이 크다는 것이었다. 이 우려가 현실로 드러나고 있다.

본지는 최근 연구보고서 하나를 입수했다. 교육부의 수탁을 받아 한국직업능력개발원의 연구진(연구책임자:진미석 직능원 연구위원)을 중심으로 지난 한해동안 각종 통계와 박사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를 토대로 완성한 ‘학문분야별 고급인력 수급전망에 관한 연구’가 그것이다. 이 연구는 교육인적자원부가 개편을 준비하면서 박사인력의 실태와 활용현황을 파악하기 위해 진행한 것으로, 박사실업의 현재와 미래를 담고 있다. 교육부는 지난해 12월에 완성된 보고서를 지금까지도 불문에 부치고 있다. 예상외로 결과가 심각한 것으로 드러나 그 파장을 우려했기 때문이다. 본지는 한나라당 황우려 의원측의 도움을 받아 이 자료를 단독입수했다.

 
IMF사태 이후 박사실업이 늘고 있다는 것은 교육현장에선 공공연한 사실이다. 그러나 보고서를 통해 확인된 박사실업의 현실은 상상을 뛰어넘어 ‘박사실업 대란’을 염려할 수준이다. 최근 3년간 전국의 21개 대학에서 배출된 4천여명의 박사를 대상으로 취업현황을 분석한 결과 박사 실업률(기 취업자를 제외)은 98년 36.1%, 99년 38.8%, 2000년 44.1%로 점점 높아지고 있다. 이 중 시간강사, 임시직 등 불완전한 신분을 유지하고 있는 박사도 28.4%(98년), 32.5%(99년), 36.5%(2000년)로 해가 갈수록 증가하고 있다. 박사실업이 최악을 맞고 있다는 얘기다. 국외박사의 유입까지 감안한다면 최근 3년 내 학위를 받은 박사 절반 가까이가 ‘실업자’란 결론이다.

인문학 박사 10명 중 8명 실업자

박사실업의 경향은 학문분야별로 뚜렷한 차이를 보인다. 인문학, 이학 등 기초학문은 실업률이 치솟고 있지만 생명공학, 정보통신공학 등 응용·실용학문의 취업률은 오히려 상승세다. 실업률이 최악을 맞고 있는 학문분야는 역시 인문계열이다. 인문계열 박사들의 미취업률은 98년에 이미 73.1%에 이르렀고, 99년 79.5%, 2000년 80.4%로 높아지고 있다. 2000년 기준으로 보면 10명 중 8명이 실업상태란 얘기다. 99년 기준으로 세부학문분야별 취업률은 국문학 13.8%, 역사학 31.1%, 철학 16.1%, 영문학 16.1%, 외국문학 26.8%로 바닥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인문계열와 비교하자면 사회계열 박사들의 취업상황은 그래도 나은 편이다. 사회계열 박사학위자의 최근 3년간 취업률은 99년 59.7%, 99년 59.8%, 2000년 62.5%로 절반이상이 대학, 각종 연구소 등 정규직에 자리를 잡았다. 사회계열 중에서도 경영·경제학 등 실용학문분야의 취업률은 여타 학문분야 보다 높다. 2000년 기준으로 경영·경제학 박사학위 취득자의 취업률은 각각 73.9%, 76.9%이다. 반면 사회학은 14.3%에 불과했다.

이학계열의 경우 세부 학문분야별로 취업률이 차이를 보였다. 전체적으로 보면 이학계열의 박사 취업률은 62.9%(98년), 59.2%(99년), 65.6%(2000년)로 사회계열과 비슷하지만, 수학분야의 취업률은 27.1%, 27%, 27.8%로 10명 중 7명 정도가 실업상태로 드러나 물리학(70.6%-52.9%-52.9%), 화학(66.1%-72.6%-80%), 생물학(74%-67.1%-71.9%)과 대조를 이뤘다.

반면 공학과 의학계열의 박사실업은 다른 학문분야에 비해 극히 낮았다. 최근 3년간 공학계열 박사들은 평균 70~80%이상(98년 83.7%, 99년 83.1%, 2000년 71.7%)이 취업에 성공했고, 의학계열은 평균 90%(98년 91.5%, 99년 96%, 2000년 97.1%)를 상회하고 있다. 특히 정부의 집중적인 지원을 받고 있는 전기·전자(91.2%), 정보통신·컴퓨터(87.5%), 생명공학 분야(87.5%) 박사들의 취업률이 높았고, 화학공학(65.4%), 건축공학(74.5%, 이상 99년 기준)분야는 상대적으로 낮았다.

전체적으로 보면 우리나라 박사들의 평균 실업률은 17.2%에 이른다. 해방이후 배출된 우리나라의 박사학위자는 국내박사 7만7백84명, 국외박사 2만3백48명을 합쳐 총 9만1천1백32명이다. 이 중 17.2%인 2만3천5백여명이 실업상태인 것으로 예측됐다. 박사학위자들이 가장 많이 분포하고 있는 곳은 대학으로 4만3천여명(46.7%)이고, 다음으로 자영업(14.1%), 민간부문(7.1%), 국·공립 연구소(6.7%)순이었다.

박사배출 최근 20년간 10배 성장

박사실업이 급증하고 있는 이유는 수요공급 시스템이 무너지고 있기 때문이다. 해방이후 박사의 수는 80년을 기점으로 급증하고 있다. 해방이후부터 지난 80년까지 배출된 박사는 8천7백73명이지만, 지난 20년간 배출된 박사는 10배에 달하는 8만2천3백59명에 이른다. 연도별로 보더라도 80년 7백24명이던 박사학위자는 85년 1천7백57명, 90년 3천7백21명, 95년 5천8백75명, 2000년 7천5백69명으로 가파르게 늘어나고 있다. 반면 박사인력의 주요 수요처인 대학과 각종 정부·민간연구소의 채용은 오히려 격감하고 있다.

80년 전반까지만 해도 대학의 박사채용은 박사배출 규모를 상회했지만 85년을 기점으로 역전됐다. 근래로 올수록 그 규모는 점점 줄어들어 수요와 공급의 간극은 갈수록 심화되고 있다.

안길찬 기자chan1218@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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