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4-20 09:05 (토)
D2C 레볼루션
D2C 레볼루션
  • 교수신문
  • 승인 2021.03.12 14:5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로런스 인그래시아 지음 | 안기순 옮김 | 부키 | 452쪽

더 이상 혁신은 없을 것 같던 비즈니스 판도에 새로운 변화가 포착되고 있다. 지난 20여 년간 구글, 페이스북, 아마존 같은 거대 기업은 강력한 플랫폼 헤게모니를 형성해 왔다. 전통적 기업들은 철옹성처럼 흔들림이 없었고, 틈새를 허락하지 않는 시장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어 보였다. 이때 한 무리의 스타트업이 반기를 들며 등장했다. 고객과 강력하게 결탁한 그들의 손에는 소비자 직접 판매(Direct to Consumer), 즉 D2C라는 무기를 들려 있었다.
D2C 모델은 온라인을 기반으로 제품을 소비자에게 직접 판매하며 비즈니스 생태계의 대세로 떠오르고 있다. D2C 시장은 2010년대 후반 급격한 성장을 거쳐 2020년 기준 미국에서만 연간 20조 원 규모에 달한다. 현재는 달러쉐이브클럽, 와비파커 등 태생적 D2C 기업뿐 아니라 나이키, 테슬라, 에르메스와 같은 글로벌 브랜드들도 이러한 전략에 동참하고 있다.
이런 현상은 그 어느 때보다 소비자의 힘이 강해진 시대이기에 가능하다. 과거 소품종 대량 생산 시대에는 소비자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이 많지 않았다. 기업은 좋은 입지의 매장, 유통, 대리점과의 관계에 집중했다. 하지만 기술 발전과 소비자 취향의 다양화로 다품종 소량 생산의 시대가 도래하자 고객과 직접 대면하고 맞춤형 제품 및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 중요해졌다. 이런 이유로 현재 많은 기업이 SNS 채널을 열고 자체 판매망을 강화하며 고객 데이터를 모으고 있다. 고객과 소통하고 유대감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사업 전략을 재편하는 것이다.
『D2C 레볼루션』은 이런 변혁의 현장을 생생하게 그려 내고 있다. 이 책의 저자이자 퓰리처상 5회 수상에 빛나는 로런스 인그래시아는 200명 가까운 기업가와의 인터뷰를 토대로 우리가 D2C에 대해 알아야 할 거의 모든 것을 이야기한다. 비단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기업 성공 스토리뿐 아니라, 새로운 도전에 나서는 사람들이 마주하는 현실적 문제와 성장 과정은 저자의 생동감 넘치는 필치와 만나 더욱 빛을 발한다. D2C 혁명의 생생한 현장으로 데려다줄 이 책을 통해 우리는 새로운 시대정신을 맞이할 준비를 완벽하게 마칠 수 있을 것이다.

합리적 소비자의 요구를 들어라

달러쉐이브클럽의 마이클 더빈은 사업을 시작할 때만 해도 자신이 D2C 혁명의 선두에 서게 될 것이라 예상하지 못했다.(35쪽) 매번 실패만 거듭해 오던 그가 인터넷으로 면도기를 판매하겠다고 하자 사람들은 미심쩍은 시선을 보냈다.(29~31쪽) 반전은 1분 33초짜리 짧은 영상에 숨어 있었다. 홍보 비용이 부족했던 더빈은 자신이 직접 광고 영상에 출연하기로 마음먹었다.(37쪽) 칙칙한 분위기의 창고에서 약 9시간에 걸쳐 작업이 이루어졌다.(38쪽) 그렇게 완성된 영상이 공개되자 인터넷은 폭발적인 반응을 보였다.
영상은 내내 일관된 메시지를 전달했다. ‘저렴한 가격으로 좋은 품질의 제품을 문 앞까지 배달받을 수 있습니다.’ 더빈은 자신과 같은 젊은 세대에게는 값비싼 면도날을 구매할 금전적 여력이 없었고, 그들이 나이 든 세대처럼 업계 1위 기업의 제품만을 고집하지 않는다는 사실에 주목했다.(37쪽) 이 지점을 공략하기 위해 더빈은 글로벌 기업 질레트를 공격하고 나섰다. 소비자가 질레트 면도날을 구매하는 데 지불하는 20달러 중 19달러는 광고 모델에게 돌아간다는 사실을 강조했고, 딱히 필요하지 않은 기능은 포기하고 대신 남는 돈을 저금하라는 메시지도 전달했다.(39쪽) 영상 발표 후 채 48시간이 지나기도 전에 달러쉐이브클럽의 구독 서비스는 1만 2000명의 고객을 확보했다.(47쪽)
업계 1, 2위 기업인 질레트와 쉬크는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다. 품질과 관련해서라면 아주 미세한 부분까지 강박적으로 신경을 쓰는 질레트가 보기에 달러쉐이브클럽의 면도날은 상대할 가치가 없었다.(47쪽) 쉬크 역시 달러쉐이브클럽의 면도날을 종류별로 구매해 실험한 결과 달러쉐이브클럽의 물건이 정말 형편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품질을 고려하면 달러쉐이브클럽의 면도날을 재구매할 고객은 없을 것이고, 더빈의 영상이 불러일으킨 열풍도 곧 지나가리라는 것이었다.(51쪽)
하지만 달러쉐이브클럽은 계속해서 승승장구했다. 2000만 달러에 불과하던 연간 매출은 2년 만인 2015년에 1억 5300만 달러까지 증가했다. 반면, 같은 기간 질레트의 시장 점유율은 67퍼센트에서 54퍼센트까지 급락했다. 이듬해 달러쉐이브클럽의 매출이 연 2억 4000만 달러를 기록하자 위협을 느낀 질레트는 결국 제품 가격을 평균 12퍼센트 인하하기에 이르렀다.(64쪽) 골리앗 기업 질레트의 자존심에 큰 상처를 입힌 달러쉐이브클럽은 2016년 질레트의 모기업 P&G의 경쟁사인 유니레버에 인수되었다. 인수가는 10억 달러로 알려졌다.
D2C 기업은 높은 가격과 고리타분한 이미지로 대표되는 거대 기업의 약점을 노린다.(34~35쪽) 그들은 말도 안 되는 가격의 ‘최고급’ 제품 대신 저렴한 가격과 이 정도면 충분하다고 판단되는 품질만으로도 고객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D2C 소비자들은 합리적 소비를 지향한다. 다른 무엇보다 소비자들의 이런 마음에 귀를 기울인 스타트업들은 D2C 혁명이라는 새로운 대세 비즈니스 흐름을 만들어 내고 있다.

고객의 마음을 빼앗아라

와비파커는 소비자들이 다섯 개의 안경 샘플을 무료로 배송받아 사용해 볼 수 있도록 했다. 하지만 사업을 시작한 지 며칠 지나지 않아 발송용 재고가 바닥나고 말았다. 직접 회사로 찾아와 안경을 써 보고 싶다는 문의가 쏟아졌고, 아직 사무실도 없던 그들은 자신의 아파트에 간이 사무실을 차렸다. 안경테를 진열하고 방문객들이 자신의 모습을 볼 수 있도록 거울을 달았다. 고객들은 덤으로 네 명의 젊은 창업자들이 소파에 앉아 고객 문의 메일에 열심히 답장하는 모습도 볼 수 있었다.(201쪽) 일주일이 지난 후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졌다. 펜실베이니아대학병원 도메인의 수많은 이메일 주소로부터 주문이 쏟아지기 시작한 것이다. 고객들을 초대한 그날, 펜실베이니아대학병원에서 일하는 의사 한 명이 간이 사무실을 다녀간 이후에 일어난 일이었다.(201~202쪽)
와비파커의 창업자들은 단순히 안경 판매를 넘어 고객과의 더욱 강력한 유대감 형성을 사업 목표로 삼았다.(207쪽) 중간 유통 단계를 거치지 않고 소비자에게 직접 판매하는 D2C의 특성상, 고객을 이해하고 고객과 소통하는 것이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와비파커는 다른 어느 부서보다 고객 경험 부서, 즉 콜 센터에 더 많은 인원을 배치한다. 코넬, 펜실베이니아 등 명문 대학교 졸업생들로 꾸려진 와비파커 콜 센터는 전화벨이 울리면 6초 이내에 응답한다.(213쪽) 연휴를 앞둔 늦은 저녁 시간에도 고객 메일에 즉각 응대하는 것은 물론,(212쪽) 고객에게 다급한 사정이 있을 경우에는 택시를 타고 직접 제품을 배달하기도 한다.(216쪽) 와비파커에서는 이런 과정을 거친 직원들이 고위 경영진으로 승진하고 있다.(217쪽)
와비파커의 고객 서비스에 대한 열정은 즉각적으로 기업의 경제적 가치와 이미지 상승으로 이어졌다. 벤처 투자자들로부터 유치하는 투자금은 2억 9000만 달러에 달하고, 매출은 매년 4~5억 달러로 추정되며, 기업의 가치는 약 17억 5000만 달러에 이른다. 특히 밀레니얼 세대의 강력한 지지를 받고 있는 와비파커는, 회사 이름 자체가 혁신의 대명사가 되었다. 인터넷에서는 ‘병원 수술복 분야의 와비파커’ ‘카우보이 장화 분야의 와비파커’ ‘페인트 분야의 와비파커’ ‘자기관리 분야의 와비파커’와 같은 표현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다.(206쪽)

데이터는 모든 것을 알고 있다

서드러브가 브래지어 소비자들이 정확히 원하는 것을 알아낸 방법은 데이터 활용이었다. 자체 개발한 앱으로 소비자 데이터를 모으고 분석한 결과, 여성의 약 30퍼센트가 자신의 몸에 꼭 맞지 않아 불편한 브래지어를 착용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서드러브는 기존에 존재하지 않았던 중간 사이즈를 출시한다는 전략을 세웠고,(135쪽) 수많은 여성들로부터 찬사를 받았다. 현재 서드러브에서 판매되는 브래지어 사이즈는 80개에 달한다. 이는 속옷업계의 슈퍼스타인 빅토리아시크릿의 약 두 배에 해당하는 수치다.(136쪽)
모발 염색약 스타트업 이살롱 또한 고객 질문을 통한 데이터 수집과 알고리즘에 기반하여 수많은 고객의 머리카락에 맞는 염색약 색깔을 구현해 낸다. 이살롱닷컴에 접속한 고객은 자신의 원래 모발 색상, 현재 염색한 색상, 원하는 색상, 최근 염색한 시기, 새치의 정도,(190쪽) 곱슬의 정도, 인종, 눈동자 색깔 등에 대한 질문을 받는다. 고객이 모든 질문에 답하는 즉시 알고리즘이 작동되고, 이살롱은 단 한 번의 대면도 없이 고객의 모발 색상을 고객 자신보다 더 잘 파악하게 된다.(177쪽) 현재 이살롱은 무려 16만 5000가지가 넘는 색상 조합의 염색약을 판매하고 있다.(193쪽) 이는 50여 가지 색상만 판매하던 기존 염색약 업계(187쪽)와 비교하면 혁명적인 수치다.
데이터는 D2C 기업의 강력한 무기다. 고객 중심 브랜드를 지향하며 수집한 데이터는 전통 기업의 노하우를 상대할 때 매우 효과적이다. 소매업체 대응에 집중해 온 전통 기업은 소비자들이 원하는 것을 직접적으로 파악하기 힘들기 때문이다.(179쪽) 브랜드를 차별화하기 위해서는 고객 데이터를 통해 소비자가 실제로 원하는 것을 이해하고 이를 바탕으로 자신만의 강점을 갖춰야 한다. 성공한 D2C 사업은 불특정 다수에 맞춰 놓은 기존의 표준에 만족하지 않는 소수 고객의 요구에서 출발해 왔다.

라이프 스타일로 승부하라

2017년 스마트 여행용 가방을 판매하는 업계에 치명적인 뉴스가 들려 왔다. 화재 가능성을 이유로 배터리가 장착된 스마트 여행용 가방을 기내 및 수화물에 반입하는 것을 금지한다는 소식이었다.(343쪽) 라덴, 블루스마트 등 성공적인 행보를 보이던 스타트업의 발등에 불똥이 떨어졌다. 하지만 또 다른 업체 어웨이는 사뭇 여유로웠다. 스스로를 라이프 스타일 브랜드로 포지셔닝한 어웨이는 여행 월간지를 발간하는 등(340쪽) 방랑하는 여행자 이미지의 라이프 스타일을 적극 활용하고 있었다.(342쪽) 고객들은 어웨이 제품을 통해 탐험가로서의 정체성을 구매할 뿐, 배터리 문제는 큰 이슈가 아니었다. 게다가 어웨이는 소비자들의 요구를 적극적으로 수용해 온 덕분에 배터리를 쉽게 탈착할 수 있는 디자인의 가방을 이미 출시하고 있었다.
라이프 스타일 브랜드를 구축하는 것은 밀레니얼 세대를 겨냥하는 D2C 기업의 전략이다.(55쪽) 달러쉐이브클럽(면도기), 글로시에(화장품), 허블(콘택트렌즈) 등 많은 D2C 기업이 의도적으로 자사를 라이프 스타일 브랜드로 포지셔닝하고 있다.(95, 121, 166, 345쪽) 이들은 단순히 하나의 물건이 아닌 한 세대의 시대정신을 활용하고 고객의 정체성을 판매함으로써 리스크와 예상할 수 없는 상황 변화에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는 것이다.(342쪽)

새로운 100년 기업은 탄생할 것인가

알람 시계, 슬리퍼, 면도기, 샴푸, 속옷, 청바지, 운동화, 여행 가방, 커피 등 우리 일상과 관련된 거의 모든 제품이 D2C로 판매되고 있다. 소수의 스타트업에서 시작된 D2C 혁명은 이제 수천 개의 기업으로 퍼져 나가는 중이다. 와이즐리, 젝시믹스, 삼분의일, 쿠캣 등 우리나라에서도 D2C 문법을 이해하고 적용하는 기업이 등장하고 있다. 이들은 합리적 소비, 고객과의 교감, 데이터 활용, 라이프 스타일 솔루션 등 D2C 핵심 전략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며 거대 기업이 장악하던 비즈니스 시장의 판도를 뒤흔들어 놓고 있다. 그중에는 이미 10억 달러 브랜드 대열에 합류한 곳도, 곧 유니콘 기업으로 성장할 가능성을 지닌 기업도, 혹은 중소기업에 머물거나 폐업하게 될 기업도 있다.
초기 D2C 투자가 이루어지고 10여 년이 지난 현재, 사상 최대 규모의 벤처 캐피털 자금이 전자 상거래 분야에 조성되고 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새로운 디지털 네이티브 브랜드는 계속해서 만들어지고 있다. 초기 D2C 스타트업을 이끌던 경영자나 고문으로 활동하던 학자들도 이 흐름에 뛰어들고 있다. 여기서 우리가 던져야 할 질문은 이러한 흐름이 한때의 유행이 아닌 지속 가능한 모델로 성장할 수 있는지다. 달러쉐이브클럽은 질레트처럼 100년 이상 생존할 수 있을까? 글로시에는 21세기의 에스티로더가 될 수 있을까? 확실한 것은 혁명은 이제 막 시작되었다는 사실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