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反論 : 윤승준 교수의 서평(교수신문 제319호)에 답한다
反論 : 윤승준 교수의 서평(교수신문 제319호)에 답한다
  • 주명철 한국교원대
  • 승인 2004.07.14 00:00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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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문화사’에 대한 기대와 한계에 대해

편집자주 : '다이아몬드 목걸이 사건 마리 앙투네아트 신화'(책세상 刊)에 대한 윤승준 교수의 서평에 대해 저자인 주명철 교수가 반론을 보내왔다. 윤 교수는 서평에서 이 책이 마리 앙투네아트 신화에 대한 새로운 문화사적 해석이 없이 '암시'에 그치고 있다는 점과, 이 책 전반이 " ‘사건’을 통해 ‘신화’에 접근하고, 나아가 ‘당시의 문화를 들여다보는’ 연구 방식에 일정한 한계가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닐까"라며 문화사적 접근방식에 대해 문제제기를 한 바 있다. 역사에 대한 관점이 다른 두 학자의 생산적인 논쟁을 기대하며 반론을 싣는다.

윤승준 교수가 내 책에 대해 쓴 ‘주간리뷰’(6월 28일자)를 읽고, 내가 쓴 ‘텍스트’지만, 내 손을 떠난 것을 내 것이라 할 수 있는가 라는 근본적인 문제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 볼 기회를 얻었다. 윤 교수는 내 책에서 무엇보다도 여론과 프랑스 혁명의 관계에 대한 ‘새로운 문화사적 해석’을 기대했지만 ‘저자가 다소 주저하는 모습’과 ‘모호함’도 보인다고 지적한다. 그의 지적을 모두 부인하지 않겠다. 사실, 나는 여론 때문에 마리 앙투아네트가 죽임을 당했다고 주장하지 못했다. 그리고 크게 말해서, 여론은 어떻게 형성되고, 어떤 경로로 증폭되는지 밝히려고 노력했지만, 그것이 프랑스 혁명과 어떤 관계를 가졌는지 단언하지 못한 것은 분명하다.

"여론 때문에 사건을 무시할 수 없다"

그러나 나는 윤 교수가 기대한 ‘해석’이 무엇인지 모른다. 윤 교수는 내가 그런 해석을 해주기 기대했다고 하면서, 자신이 생각하는 ‘해석’이 어떤 것인지 분명히 보여주지 않았다. 그래서 내가 생각하는 “새로운 문화사”의 주제만을 부각시키도록 하겠다. 그러나 어떤 역사가라도 마음대로 할 수 없는 기본조건부터 말하련다. 모든 역사가는 증거 없이 해석할 수 없으며, 시간순으로 일어난 사건을 뒤바꿔 놓을 수 없다. ‘목걸이 사건’ 이후에 ‘적자부인’이라는 별명이 생긴 것은 ‘역사적 사실’이다. 그런데 내가 그것을 특히 부각시켰다고 보는 것은 윤 교수의 독특한 글읽기 결과일 뿐이다. 나는 ‘적자부인’이라는 ‘신화’에 매달린 적이 없기 때문이다.

둘째, 나는 여론 때문에 마리 앙투아네트가 죽임을 당했는지 분명히 말할 수 없다고 하였다. 마리 앙투아네트에 대한 욕설에 가까운 이야기가 많았고, 그것이 여론이었다. 그런데 여론이 나빠서 프랑스 혁명이 일어났던가. 재정적 파탄과 정치적 무능이 직접적인 원인이 아닌가. 여론을 중시한다고 해서, 실제로 일어난 사건을 부정할 수는 없는 것이다. 실제 일어난 사건을 부정하지 못하면서, 여론이 어떻게 형성되는지, 한마디로 말해서, 라디오나 텔레비전이 없는 시대의 사람들이라 해도 소식을 빨리 접할 수 있었다는 역사적 사실을 증명하는 것을 모호한 태도라고 지적하는 이유를 나는 이해할 수 없다. 우리가 1788년과 1789년을 무시하지 않은 채 여론의 역할을 생각하는 것은 모호한 태도라기보다 종래의 해석을 좀더 풍성한 것으로 바꿀 수 있는 길이 아닐까.

셋째, 윤 교수가 별로 언급하지 않은 부분이지만, 내가 강조한 것은 마리 앙투아네트의 몸과 이름을 둘러싼 상징의 변화였다. 여론 못지않게 ‘새로운 문화사’의 중요한 주제다. 프랑스 혁명의 원인을 ‘목걸이 사건’으로 보는 당대인의 시각도 있었지만, 나는 그 사건을 통해서만 마리 앙투아네트의 상징이 바뀌지 않았음을 증명하고자 했다. 마리 앙투아네트가 재판정에서 “아들과 잤다”는 혐의를 쓴 것의 유래를 밝히고자 했다. 나는 분명히 존재한 사실의 배경이 된 상징, 또는 ‘신화’가 어떤 식으로 생기고 증폭되었는지 밝히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신화’ 때문에 재판에서 사형을 언도받았는지 분명히 말하지 못했다. 누가 그 관계를 명확하게 말할 수 있겠는가. 증거도 없이! 오늘날 노 대통령 탄핵소추에 대한 헌재 판결이 촛불시위 때문이라고 단언할 수 있는가.

'정답'과 '해석' 사이에서
 
윤 교수의 서평을 읽으면서 내가 평소에 '새로운 문화사'가 증거도 없이 해석을 내릴 수 있다는 듯이 말한 적이 없었는지 반성해 보았다. 그리고 문제를 새로 던지는 것만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해석이 중요하다는 사실은 인정하지만, 반드시 이거 아니면 저거라는 답을 내리지 못하면 역사쓰기가 잘못된 것인가 라는 의문을 품게 되었다. 정답이 없는 역사에서 새로운 문제의식을 가지는 것이 이미 어떤 해석을 향한 것이 아닐까. 물론 공부가 짧아서 독자가 필요로 하는 답을 일일이 주지 못하는 것은 분명히 내 한계였다. 그러나 나로서는 절대주의 시대의 문화가 정치 경제적인 직접적인 원인으로 혁명이 일어나기 이전에 어떻게 변화하는지 밝히려고 노력했다. 그 다음은 독자의 의미 창조에 맡긴다. ‘텍스트’ 자체가 서로 모순을 보이는 수많은 해석을 낳을 수 있는 것이기 때문에.

필자는 파리1대학에서 'Les gens du livre embastilles 1750-1789'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앙시앵 레짐 말기 파리 민중의 독서와 읽을 거리' 등의 논문이, '지옥에 간 작가들', '파리의 치마밑', '바스티유의 금서' 등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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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금 2004-08-08 10:23:25
근데 선생님,
책값이 너무 비싸요.
우리네 강사는 사보지 말라는 건지.
책값 좀 내리던지, 좀더 요약하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