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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리 필요하나 '사회적 역동성' 이해도
윤리 필요하나 '사회적 역동성' 이해도
  • 이중원 서울시립대
  • 승인 2004.07.14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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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대회 참관기 : 한국과학철학회의 '과학·공학교육과 철학'

▲이날 학술대회에서는 '이공계 기피'의 구조적 원인에 대한 진단과 이공계 교육에서의 '윤리' 문제가 쟁점으로 떠올랐다. 공학 교육은 철학과 어떤 관계를 맺을 수 있는지에 대한 탐구가 시도된 자리였다. ©
올해로 9회 째를 맞는 한국과학철학회(회장 김유신) 하계 합숙세미나가 지난 6월 30일과 7월 1일 양일에 걸쳐 무주 리조트에서 열렸다. 70여 명의 소장 및 중견 학자들이 참석한 학술대회의 대표 주제는 '과학·공학교육과 철학'이다. 과학철학의 고유 연구주제는 아니지만, 학제적 협동의 차원에서 함께 논의할 수 있는 핫 이슈들을 찾아 이를 학술대회의 제 1주제로 삼아 왔던 한국과학철학회 학술대회의 오랜 전통에 따른 선택이다. 주제 선택 배경에는 이공계 기피가 매우 심각한 사회문제로 대두돼 있고 이공계 위기극복이 국가의 중요 정책과제로 설정된 상황에서, 그 대안의 하나인 대학에서의 과학·공학 교육의 중요성 및 현주소와 발전 방향을 종합적으로 진단·검토해 보고, 그 과정에 과학철학이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가를 모색하려는 학제적 의도가 들어 있다. 그런 까닭에 다수의 공학자들이 논문 발표 및 논평·토론에 참가했는데, 이를 중심으로 소개해 보겠다.

기조 강연자인 한국 산업기술재단의 조환익 사무총장은 '한국경제 현황과 공학교육의 방향'이라는 제하의 초청강연에서, 견실한 산-학 협력이 요청되는 현 시점에서 공학교육은 기술혁신을 이끌 창의적 기술 인력을 육성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그는 신기술들이 독립적으로 발전해 왔던 과거와는 달리, "최근 몇 년 사이에 기술융합화를 통해 새로운 기술 영역이 만들어지면서 기존의 산업 지형이 바뀌고 있다"고 보고, 이에 수반하는 기술혁신이 국가 경제의 경쟁력 제고와 국부창출을 위한 방책임을 강조했다. 그리고 공학교육은 바로 "창조적 기술 인력의 육성"에 부합해야 하며, 과학철학은 기술융합화에 따른 새로운 개념 틀 또는 창의적 방법론에 대한 탐구 및 모형 제시 등으로 이에 기여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아직은 성급한 판단이지만 과학철학이 21세기 첨단공학의 학문적 발전에도 일부 참여할 수 있는 가능성이 보이는 듯하다.

한편 이장규 서울대 교수(전기컴퓨터공학부)는 이와는 매우 다른 맥락에서 공학교육과 과학철학 간의 긴밀한 관계구축을 조망했다. "기존의 공학교육은 기술개발 자체에 몰두하도록 유도했으며, 기술이 갖는 사회적 특성, 철학적 의미를 고민하고 그것을 자신이 하고 있는 일과 연결 지음으로써 진정한 사회발전과 접목시킬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 주지 못하고 있다. (공학기술자들은) 기술결정론적, 테크노크라시 입장에 서서 기술을 보게 되고 기술 외적인 사회적 책임, 윤리, 그리고 정의·평화·평등과 같은 사회적 가치와 이상을 실현시키는 노력에는 소극적인 자세를 갖게 된다." 이러한 태도로 말미암아 오늘날의 공학기술자들은 국부 창출의 "효율적인 기능인"으로 스스로의 위상을 전락시켰다고 지적했다. 따라서 공학교육의 바람직한 방향은 "기술과 얽힌 사회적 문제에 연대적인 책임을 다하면서 -- 윤리의식을 가지고 사회발전에 기여하는 (진정한) 전문인"을 육성하는 것이며, 과학철학은 이 과정에서 적극적 역할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박동철 충남대 교수(전자전파공학)는 전적으로 동의를 표했고, 반면 이상하 계명대 교수는 "공학자의 윤리 의식이 공학교육의 과연 중심축일 수 있는가"라는 의문을 제기하면서, 개인의 윤리의식보다는 기술자 사회의 "집단적 의사결정 과정", "조직체계의 패턴 확인과 역동성을 이해할 수 있는 체계사유"가 공학교육의 더 중요한 요소임을 강조했다. 한편 이상욱 한양대 교수(철학)는 현재 한양대에서 수행되고 있는 '과학기술의 철학적 이해'라는 교육 프로그램이 이와 같은 공학교육의 방향 설정에 좋은 지표와 본보기가 될 수 있음을 강조했다. 아무튼 이는 철학 안에서 그 동안 진지하게 다루지 못했던 주제들로서, 앞으로 학제간 폭넓은 논쟁이 기대되는 부분이다.

그 외에 이은경 전북대 교수(과학학)는 '이공계 기피의 사회적 구성과 우리나라의 과학기술자 사회'라는 논문을 통해, 작금의 이공계 위기 문제가 '이공계열 진학 기피'라는 특별한 사실에서 출발해 위기의 외연이 확장되고 급기야 '국가경쟁력 위기'로 급부상하는 과정을 매우 상세하게 분석해, 그 과정을 일목요연하게 이해하고 문제의 본질이 어디에 있는지 이해할 수 있도록 해줬다. 박종원 전남대 교수(물리학)는 과학교육이 단순히 과학과 교육학만으로 가능하지 않음을 지적하면서, 학생들의 과학학습과정에 과학철학의 논의가 과학적 탐구모형을 구체화하는 등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공학자들과 철학자들이 함께 만나 일궈낸 이와 같은 논의들은 대체로 문제제기 수준에 머물러 있었지만, 지금껏 어떤 공식적인 학술대회에서도 전개된 바 없었다는 점에서, 그리고 향후 기술철학이라는 새로운 영역으로 논의가 확장·전개될 수 있다는 면에서, 매우 뜻 깊은 행사로 기억되리라고 본다.

필자는 서울대에서 '동역학의 인식론적 구조에 기초한 양자이론 해석'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실재에 대한 철학적 이해', '현대 물리학에서 이론과 실험의 관계' 등의 논문이, '인문학으로 과학읽기', '삶,반성,인문학-인문학의 인식론적 구조' 등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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