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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한국사회를 위한 학술아젠다 9 : 지역분권과 지방자치의 확립
21세기 한국사회를 위한 학술아젠다 9 : 지역분권과 지방자치의 확립
  • 안성호 대전대
  • 승인 2004.07.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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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자체', 법률안 발의권 행사할 수 있어야

참여정부는 대통령 직속으로 정부혁신지방분권위원회를 설치하고 지방분권개혁의 주요 의제와 일정을 밝힌 로드맵을 발표하는 등 지방분권개혁에 비상한 관심을 보여왔다. 지난 연말에는 이를 법률적으로 뒷받침하는 지방분권특별법이 제정됐고, 요즘은 로드맵에 따라 지방분권전문위원회를 중심으로 개혁의제별로 검토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참여정부가 이처럼 지방분권개혁을 핵심적 국정과제로 삼는 이유는 무엇보다도 중앙집권체제의 폐해가 심각하다고 판단하기 때문일 것이다. 지금까지 많은 연구들이 개발도상국의 과잉 중앙집권체제가 주민참여를 제약하고, 지방실정에 맞지 않는 비대응적 행정을 조장하며, 유연성·적응성·창조성·신속성을 둔화시키고, 학습과 혁신을 방해하며, 중앙과 지방의 불균형을 조장함으로써 국가발전을 가로막는 심각한 장애요인임을 지적해왔다.


지방분권개혁은 국가시스템의 DNA, 즉 유전자 부호(genetic code)를 바꾸는 개혁이다. 마치 DNA의 변화가 생명체에 전혀 새로운 능력과 행태를 발현시키는 것처럼, 획기적 지방분권개혁은 다른 혁신을 유도·촉진해 국가경쟁력을 높이는 근본적인 개혁이다. 소련의 붕괴 수개월 전 브레진스키(Z. Brzezinski)는 "소련의 국가기획기구들은 무려 2천4백만 종에 달하는 생산 품목들의 연간 목표량을 산정하는 부담만으로도 일 더미에 눌려 질식당하고 있음"을 경고하고, 공산주의가 다름 아닌 극심한 중앙집권체제 때문에 망할 것이라고 진단했다. 그의 진단대로 소련을 비롯한 동유럽 공산국가들은 무너졌다. 일찍이 미래학자 앨빈 토플러는 정보사회에서 중앙정부가 폭주하는 정보를 그냥 계속 처리하는 경우에는 "지나치게 세밀하고 소화할 수 없는 정보더미에 깔려 질식하고 말 것"이며, 따라서 "실질적인 지방분권화 없이 정부들이 적절한 판단을 내리고 질서를 회복하면서 효율적 행정을 감당해낼 다른 방도는 없다"고 피력했다.


많은 사람들이 대통령을 잘 뽑으면 나라가 잘 운영될 것으로 생각하지만, 대통령을 잘 뽑는 일보다 훨씬 더 중요하고 근본적인 일은 나라의 시스템을 제대로 만드는 일이다. 이 시대에 가장 중요하고 근간이 되는 국가시스템 개혁과제 하나는 지방분권개혁이다. 북한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작금 북한의 피폐는 통치자의 리더십문제라기보다 시장경제를 무시하고 포로수용소 같은 1인 독재의 중앙집권체제를 고집한 불가피한 결과다.


국가시스템의 DNA를 바꾸는 지방분권개혁의 과제들은 매우 많지만, 아래에서는 핵심적인 개혁과제임에도 불구하고 그 동안 소홀히 다뤄진 지방자치단체의 국정참여제도에 관해 간략히 논의하고자 한다.


현행 지방자치법 제154조의 2는 지방자치단체 전국연합단체가 "지방자치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법령 등에 관하여 행정자치부장관을 거쳐 정부에 의견을 제출할 수 있다"고 규정함으로써 지방자치단체 전국연합단체가 지방분권개혁을 비롯한 국가적 정책결정과정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열어놓고 있다. 그러나 이 규정은 지방이 자신의 이해관계를 국정에 적극적으로 투입하는 제도적 장치로서 매우 불충분하다. 앞으로 이 규정은 "국회나 행정부가 지방자치에 영향을 미치는 법령이나 정책을 마련하고자 할 때에는 사전에 지방자치단체들과 그 전국연합단체의 의견을 들어야 하며 이를 가급적 존중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한 걸음 더 나아가 일정수의 지방자치단체들과 지방자치단체 전국연합체에게 법률안을 발의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할 필요가 있다. 이런 제도적 안전장치가 없으면, 중앙정부가 한편으로는 지방에 사무이양을 추진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지방을 통제하는 다른 법령조항들을 계속 만드는 고질적 폐습을 근절할 방도가 없다.


더불어, 중앙정부에 대한 지방자치단체 전국연합단체의 협상력을 높이기 위해서는 현재 제각기 운영되는 시·도지사협의회, 시·도의회의장협의회, 시장·군수·구청장협의회, 시·군·구의장협의회가 연대하거나 통합해 힘을 결집하는 방안을 강구할 필요가 있다. 이와 관련해 영국에서 1997년 4월 기존의 3대 지방정부연합체들(Association of County Councils, Association of District Councils, Association of Metropolitan Authorities)이 대 정부 협상력을 강화하기 위해 지방정부연합(Local Government Association)으로 통합된 사례를 타산지석으로 삼을 만하다.


그러나 좀더 적극적으로 지방의 국정참여를 확고히 보장하기 위해서는 헌법개정을 통해 국회를 양원제로 개편하여 연방국가의 州에 상응하는 대표성을 지닌 광역정부 단위의 국회의원들로 상원을 구성하는 것이다. 양원제 설계에서 가장 중요한 일은 상원의 대표원리와 구성방법을 정하는 것이다. 먼저, 상원의원의 선출은 직선의 경우에 일본과 이탈리아처럼 상원의원이 정당정치에 예속될 우려가 있으므로 임명제와 간선제를 절충한 방식을 채택할 수 있다. 이를테면, 지방자치단체장이 지방의원들 중에 상원의원을 지명하고 지방의회가 이를 인준하는 방식을 취하자는 것이다. 그러나 스위스처럼 중앙정부가 상원의원 선출방식을 정해 일률적으로 규율하지 않고 해당 지방자치단체가 조례로 상원의원 선출방식을 자율적으로 정하도록 배려하는 것도 가능할 것이다. 지역별 상원의원 수는 지역대표성과 소수지역의 이익보호라는 상원의 존재이유를 감안하여 지역별 동수 배분이 바람직하지 않은가 생각한다. 이를테면, 통일 이후 남북한의 통합까지 염두에 두고 현행 6개 광역시를 과거에 속했던 道로 통합시켜 전국을 서울을 포함해 10개 광역자치구역으로 묶은 후에 각 광역자치구역에 5명의 상원의원을 배정할 수 있다. 그리고 상원과 하원의 권력관계는 다양하게 설정될 수 있지만 지역 간 권력공유라는 양원제의 본래 취지에 충실하기 위해서는 양원제 동등한 권한을 인정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으로 본다. 그런데, 상원에게 하원과 동등한 권한을 인정하는 경우에 다시 스위스처럼 모든 영역에서 동등한 권한을 인정하는 방안과 독일처럼 지역의 이해관계가 걸린 영역에서만 동동한 권한을 인정하는 방안으로 구분될 수 있다. 후자가 좀더 온건한 방안이라고 하겠다.


참고로, 국정의 동반자로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스위스 캔톤의 국정참여제도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캔톤은 적어도 네 가지 제도를 통해 국정에 참여한다. 첫째, 캔톤은 연방상원에 대표들(일반캔톤 2명의 상원의원, 반(半)캔톤 1명의 상원의원)을 진출시킴으로써 국정에 참여한다(스위스연방헌법 150조). 캔톤이 선출한 대표들로 구성된 연방상원은 연방하원과 동등한 권한을 행사한다(동법 148조). 둘째, 캔톤은 연방내각이나 의원을 경유하지 않고 연방의회에 의안을 직접 제출할 수 있다(동법 제160조). 캔톤의 의안제출권은 매우 강력하고 직접적인 국정참여 수단이다. 셋째, 캔톤은 국민과 함께 국민투표에 회부된 쟁점을 결정할 권한을 갖는다. 우선, 캔톤은 국민투표에 회부된 사안이 통과되기 위해서는 투표자들의 과반수 지지와 함께 캔톤들의 과반수 지지를 얻어야 하는 이중다수(二重多數) 요건(동법 제139조와 제142조)을 통해 국민투표의 찬부 결정권을 행사한다. 더불어 8개의 캔톤들은 공동으로 연방법률, 헌법 또는 법률이 규정하는 연방결의, 폐기불능의 무기한(無期限)의 조약과 국제기구의 가입을 규정하는 조약 및 다자 간 법적 통일을 포함하는 조약을 국민투표에 회부할 것을 요구할 수 있다(동법 제141조). 넷째, 캔톤은 이른바 의회전(議會前) 사전청취(Vernehmlassung) 절차를 통해 연방입법에 영향력을 행사한다. 연방은 연방계획을 캔톤에게 적시에 그리고 충분히 통지해야 하고, 캔톤의 이해관계가 걸린 사안을 처리하는 경우에는 반드시 캔톤의 의견을 청취해야 한다(동법 제45조). 심지어 캔톤은 자신의 권한이나 본질적 이익과 관련된 연방의 외교정책결정과정에서 적절한 방식으로 참여해 입장을 표명할 권리를 갖는다(동법 제55조).

필자는 서울대에서 지방자치 및 조직혁신을 전공해 박사학위를 받았다. '신행정수도 건설의 논거와 과제', '동네 수준의 사회자본에 관한 탐색적 연구', '지방분권개혁의 전략과 과제' 등의 논문이 '지방거버넌스와 지방정책' 등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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