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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형의 씨네로그] 세상은 고통스럽지만, 그럴수록 강인해진다
[정재형의 씨네로그] 세상은 고통스럽지만, 그럴수록 강인해진다
  • 정재형
  • 승인 2021.03.10 09:1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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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네이버 영화
출처-네이버 영화

제1세계와 제3세계의 갈등 보여주는 영화
한국인 세대의 뿌리내리기 그려내

한국계 미국인 정이삭 감독의 「미나리」는 화제작 중 하나다. 영화가 무엇보다 우리의 흥미를 끄는 지점은 윤여정의 엄청난 수상실적보다도 영화의 소재가 1980년대 한국계 미국인 가족의 이민사라는 점이다. 영화는 제1세계와 제3세계의 갈등을 보여준다. 미국으로 대변되는 제1세계의 제3세계 수용은 다원주의, 탈식민주의 담론 하에서 진행된다. 선진국을 지칭하는 제1세계는 후진국인 제3세계의 이민을 받아들이며 자국 내에서 심한 갈등을 겪는다.

정치경제학에서 제3세계 이론은 착취이론을 의미한다. 미국과 같은 선진국 자본주의 국가가 과거 식민지 경험으로 가난한 처지에 놓인 제3세계 국가들의 자원을 착취하여 부익부 빈익빈의 세계체제를 운영한다는 이론이다. 80년대 종속이론(dependency theory)이라고 불렸던 이 이론은 현재 무용지물이 되었다. 종속이론이 가능했던 시대는 자본주의와 공산주의 양대 경제블럭이 존재하면서 제3세계권이 이들에 줄을 서던 냉전시대였다. 공산주의권이 붕괴하고 사회주의이론이 사라지면서 종속이론 역시 폐기되었다. 

대신 등장한 것이 탈 식민주의이론(post-colonialism)이다. 과거 제1세계였던 자본주의 선진국이 사회 내에서 주체와 타자의 갈등을 겪는 것인데, 80년대, 종속이론의 공식인 제1세계에 의한 제3세계의 수탈구조는 그대로 존재한다. 대신 그 타자의 범위가 단지 소수민족이 아니라 여성, 성소수자 등 사회적 약자로 범위가 넓어졌다는 차이가 있다. 탈식민주의는 과거 제3세계에 속했던 이주민들을 타자로 본다. 그들이 선진국으로부터 받는 차별과 억압, 식민화된 상태에서의 해방과 독립이 주제가 된다.  

영화는 한 가족인 한국계 이주민 제이콥(스티븐 연)과 아내 모니카(한예리), 외할머니 순희(윤여정)가 미국 땅에서 적응하고자 노력하는 모습을 그린다. 영화는 그들이 성공하지 못하는 서사를 지향한다. 그들은 처음부터 모두 실패를 예감하는 불완전한 존재들로 등장한다. 아들의 선천적 심장병, 적응하지 못하는 순희, 미국에서 부를 거머쥐려는 남편의 황당한 야심, 남편과 뜻이 맞지 않는 아내. 그들을 둘러싼 세상은 불확실하고 유동적이다. 그래서 그들의 앞길은 고통스럽다. 미국에서 벌어지는 현대판 비극을 보는 듯 하다. 그리스 비극 이래로 가혹한 운명과 인간의 질곡은 불변의 진리다. 그때 소크라테스는 "너 자신을 알라"고 외쳤다. 그 너라는 대상은 물론 주체와 타자 둘 다에게 해당되는 말이지 어느 한 사람에게만 일방적인 것이 아니다. 그러나 제이콥(Jacob)은 야곱의 암호이며, 야곱은 성서에서 하느님의 시험에 임해 시련을 당하는 자이다. 이는 곧 타자인 제이콥 가족의 시련을 상징한다.  

영화 안에는 제1세계와 제3세계 간의 관계를 상징하는 매개작용(mediation)이 있다. 영화적 장면이 개념화되어 문화적 단계를 나타낸다. 미나리가 그것이다. 외할머니 순희가 한국에서 가져와 미국땅에 심은 미나리는 미국인들이 먹지 않고 한국인이 즐겨 먹는 음식으로 두 세계의 갈등관계를 상징하는 매개체로 기능한다. 절망의 끝에서 마지막에 제이콥은 순희가 심어놓은 무성한 미나리를 보며 희망을 갖는다. 영화가 주는 교훈은 그런 것이다. 세상은 고통스럽지만 우린 그럴수록 강인해진다. 미국에서 이주민들은 미나리처럼 뿌리를 내릴 것이고 그것은 기회의 땅 미국에서 어느 민족이든 평등한 자유를 누리고 독립적으로 살아간다는 정신을 의미한다. 영화의 처음은 어린 아들의 모습에서 시작한다. 그런 점에서 이 영화는 80년대를 회고하면서 후세, 3세대에 걸쳐 미나리처럼 성장한 한국인 세대의 뿌리내리기를 이야기한다. 

정재형(동국대 영화영상학과 교수)
정재형(동국대 영화영상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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