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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비평_서점 진열대 앞에서
문화비평_서점 진열대 앞에서
  • 김시천 숭실대
  • 승인 2004.07.0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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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몇 년 사이 우리 학문의 자주성과 독립성에 대한 관심과 논의가 일고 있다. 2002년부터 올 봄까지 계속됐던 ‘교수신문’의 ‘우리 이론을 재검토한다’는 연재 기획이나, 구한말에서 일제 강점기를 거쳐 현재에 이르기까지 우리 학문의 여정을 재검토하는 갖가지 연구서의 출간 등은 이미 이 분야의 논의가 우리 학계의 중요한 연구 쟁점으로 자리 잡았다는 것을 확인시켜준다.

또한 학제적 연구의 중요성이 강조되면서 전공 분야를 넘어 학문간의 넘나들기를 시도하는 연구 또한 만만치 않게 증가하고 있다. 철학계만 해도 이젠 서양 철학과 동양 철학을 넘나들며 전공의 벽을 허무는 경향이 부쩍 늘어나고 있다. 게다가 우리말로 학문하기와 같은 운동 차원의 노력까지 포함시킨다면, 우리 학문의 탈식민성, 자주적 이론의 모색에 대한 열기는 이제 불타오르기 시작했다고 말해도 좋을 정도다.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이와 같은 학계의 변화는 어제 오늘에 갑자기 일어난 현상이 아니며 지난 1980년대 이후 꾸준히 일어난 ‘보이지 않는 움직임’의 결과다. 사회적 쟁점이 부상할 때마다 광화문에 모이는 촛불의 수만큼이나 대중적 공감 또한 분명하게 확인된다. 그러나 정작 서점가의 서고에서 부딪히는 현실은 요지부동의 식민성이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서점가 진열대가 지닌 분류 체계는 우리 학문의 세계를 갖가지 영역으로 쪼개놓고 있는 것이다. 어떤 철학자가 신간 서적을 내 놓으면, 그것은 이미 분류돼 있는 저자의 전공에 따라 제 갈 곳으로 간다. 서양 철학을 전공한 학자로 알려진 이의 저술은 서양 철학 진열대에 가야 만나고, 동양 철학 전공자의 저술 또한 마찬가지이다. 권력의 작동 기제가 사물의 배치에 있다면, 우리 학문은 철저하게 서점 진열대의 배치라는 식민지 구조 속에서 낱낱으로 흩어지고 있는 것이다.

학문의 식민성을 넘어서 우리 이론의 자주성을 세우는 일은 기본적으로 학자들의 몫이다. 하지만 인기 연예인의 유행 상품을 위해서는 순식간에 새로운 가판대가 세워지고, 떠들썩한 광고와 잔치가 벌어지는 현실과 비교할 때 이것은 단순하게 넘어갈 일은 아니다. 또한 그 책임을 서점의 직원이나 서적 유통회사에 떠넘길 일도 아니다. 중요한 것은 학문의 생산만큼이나 유통과 소비라는 문제도 학적 영역의 중요한 문제라는 인식이다.

비교적 잘 알려진 어느 철학자는 사석에서, 아무리 자신이 우리 현실과 씨름한 저술을 내놓아도 서점 진열대의 분류 체계가 자신의 철학적 자아를 찢어 놓으며, 또한 강의실에서 제시하는 철학적 분석은, 외국 철학자 누구누구에 대한 ‘해설’이지 자신의 ‘사유’로 인정받지 못하는 현실을 한탄한다. 학문의 제도라는 것이 단지 대학이나 연구 기관으로만 구성된 것이 아니라 전문 연구자에서 출판사, 서점, 독자에 이르는 모든 관계망 전체로 이루어진 광범위한 제도라는 인식이 필요하다.

문제를 너무 단순화한다는 우를 범하는 것이긴 하지만, 한국철학이 단지 조선 시대 유학자들에 대한 연구서만 나열된 서가를 의미하는 것이라면 지금 우리의 한국 철학이란 어쩌면 없는 것이라 말할 수 있지 않을까. 학문적 식민성이라는 거대 권력이 단지 이론이나 담론의 형식으로만 작동하는 것이 아니라면, 우리 이론의 모색이란 탈식민성의 기획 또한 보다 다각적이고 넓은 시야에서 봐야 하지 않을까.

역사학 분야의 서적 분류대에 ‘한국 현대사’가 있다면 철학 분야에도 ‘한국 현대철학’이 들어서는 것은 당연할 터인데, 과연 우리는 우리 철학이 들어서야 할 자리에 얼마나 관심을 두고 있는 것일까. 자신이 집필한 저술들이 서적 분류대에서 이리저리 찢어지는 현실에서 자신의 자아가 해체되는 듯한 절망감을 느낀다는 어느 철학자의 울분에 우리 모두는 침묵해서는 안 될 것이다.

김시천 / 숭실대 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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