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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순위평가, 기존 서열 재현할 뿐
대학 순위평가, 기존 서열 재현할 뿐
  • 정민기
  • 승인 2021.03.01 09: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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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수환 박사 ‘대학 순위평가체계 연구’ 논문
경쟁이 발생하려면 공유된 가치가 필요

대학 순위평가체계가 제기능을 하지 못한다고 지적한 논문이 화제다. 강수환씨(고려대 사회학과, 사진)는 올해 2월에 발표한 박사학위논문 「대학 순위평가체계의 조건과 영향에 관한 연구: 규범, 제도적 논리, 그리고 지위집단」에서 <중앙일보> 대학평가와 <조선일보>-QS아시아대학평가 등 언론사 주도형 대학 순위평가가 대학 간의 경쟁을 촉발시키기 보다는 기존에 존재하는 대학서열을 ‘재현’하고 오히려 더 고착화한다는 연구결과를 내놨다.

강 씨의 연구는 세 가지 근거로 뒷받침된다. 첫째, 대학들이 순위평가체계에서 높은 순위를 받는 것을 ‘공동의 경쟁 목표’로 생각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중앙일보> 대학평가는 2007년 106개 대학에서 2019년 56개 대학으로 줄었다. 3개 이상 단과대학으로 구성된 4년제 대학(127개)의 절반에 못 미치는 참여율이다.

또한, 상위권 대학과 하위권 대학 사이에 단절적인 층이 존재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상위권대학에 속한 대학은 계속 상위권에 머물고, 중하위권에 속한 대학이 상위권에 진입하는 경우가 매우 드문 것이다. 이는 대학들 사이의 경쟁을 유발하는 대학 순위평가 소기의 목적과 맞지 않는다.

대학마다 선호하는 순위평가 기관이 있다는 점도 문제다. 대학들이 순위평가 결과 중 유리한 결과는 광고에 활용하며 수용하는 반면, 불리한 결과는 거부하고 반대의 목소리를 내며 항의하는 양상을 보인다.

둘째, 교육수요자인 학생과 학부모는 대학을 평가하고 판단할 때 순위평가체계를 활용하지 않는다. 대학별로 재적생 대비 자퇴생 비율을 조사한 결과, 대학 순위평가체계와 자퇴생 비율 사이에 유의미한 연관성이 보이지 않은 반면, 수능배치표와 자퇴생 비율 사이에서는 연관성이 보인다는 점을 근거로 판단했다.

셋째, 순위평가체계로 줄 세워진 대학의 순위는 대학의 재정상태를 반영하는 것에 불과하다. 순위평가에 사용되는 지표 대부분이 대학의 ‘성과물’이 아니라 그 성과물을 산출하기 위한 ‘투입량’인 것이 하나의 원인이라고 강 씨는 분석한다. 또한, 평가 기관에서 평가 기준을 바꿀 경우, 재정적 여유가 있는 대학은 빠르게 대처하는 반면, 그렇지 않는 대학은 즉각적 대처가 어렵다는 점도 격차를 벌리는 원인이다. 

 

대학 순위평가에 대해 한국사회가 갖고 있는 두 가지 오해

지난달 25일 고려대 사회학과 박사과정을 졸업한 강수환 씨(36세)에게 논문 작성 동기를 물었다.

“한국 고등교육에서 눈여겨봐야 할 것이 무엇일까 생각하다 보니 순위평가체계에 관심을 갖게 됐습니다. 한국사회에 존재하는 순위평가에 대한 ‘오해’도 해소하고 싶었고요.”

강 씨는 한국사회에 대학 순위평가체계를 둘러싼 오해를 풀고 싶었다고 답했다. 어떤 오해를 말하는 걸까? 강 씨는 크게 두 가지 오해가 있다고 답했다.

첫 번째 오해는 대학 순위평가체계가 작동한다는 사실만으로 대학들 사이의 경쟁이 자동으로 유도될 것이라는 생각이다. 강 씨는 경쟁이 벌어지려면 평가의 존재 뿐만 아니라, 경쟁의 참여자와 수요자가 평가 결과를 ‘공유된 가치’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지적한다. 

두 번째는 몇몇 대학의 순위변동이 고등교육 ‘전체’의 역동성을 대변한다고 생각한다는 점이다. 강 씨는 <중앙일보> 대학 순위평가와 QS아시아대학평가에서 상위권 대학의 순위가 종종 뒤바뀌는 것은 사실이지만, 거시적인 관점에서 살펴보면 상위권 대학과 하위권 대학 사이에 단절적인 장벽이 존재한다고 말했다. 쉽게 말해 상위권 대학의 순위가 조금씩 바뀌는 것만으로 한국사회 전체 고등교육이 역동적이라고 볼 수는 없다는 것이다. 

대학과 교육 수요자, 순위평가 결과 신경 안 써

강 씨는 논문에서 ‘대학’과 ‘교육 수요자’로 나눠서 순위평가체계의 활용도를 살펴본다. 먼저 대학의 경우, 순위평가에 사용되는 지표의 점수를 올리기 위해 대학들이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것이 확인됐다. 하지만 해가 지날수록 순위평가에 참여하는 대학들이 줄어들거나 정체하고 있으며 평가 결과를 거부하는 사례도 늘고 있다. 

또한, 대학별로 주로 의식하는 평가제도가 다르다는 점도 눈여겨봐야 한다. 상위권 대학에서 주로 염두에 두는 평가는 QS아시아대학평가이고 중위권에서는 <중앙일보>를 의식한다. 반면 하위권 대학은 언론사 대학 순위평가보다는 교육부 대학구조개혁 평가를 신경 쓰는 편이다. 

교육 수요자인 학생과 학부모의 경우는 어떨까? 강 씨는 연구결과 교육 수요자들이 대학 순위평가결과를 잘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강 씨의 조사 방법은 대학별로 재학생 대비 자퇴생 비율과 대학 순위평가결과 사이의 연관성을 분석하는 방식이었다. 조사 결과 자퇴생 비율은 순위평가결과와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관계를 보이지 않았다. 반면 수능배치표와 자퇴생 비율은 유의미한 관계를 보였다.

강 씨는 한국사회에 오랫동안 각인된 대학서열이 존재하기 때문에 학생과 학부모가 새로운 순위를 받아들이지 않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평가 기관마다 순위가 다르게 발표되고 있고 공론의 장을 통해 평가 기준에 대한 합의도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점도 대학 순위평가체계가 교육 소비자들에게 공유된 가치로 자리 잡지 못한 원인 중 하나다. 

대학 순위평가 제기능하려면 공유된 가치부터 세워야

분석을 토대로 강 씨는 한국사회에서 대학 순위평가체계가 대학들의 경쟁을 촉발해 역동적인 대학 사회를 만들고 있다는 생각은 착각이라고 말한다. 오히려 순위평가가 기존의 대학서열을 고착화하고 상위권 대학으로 진입을 어렵게 만들고 있다는 것이 강 씨의 주장이다.

특히 대학 순위평가가 대학의 재정적 상태에 크게 좌우된다는 점도 주의해야 한다고 강 씨는 말한다. 평가에 사용되는 지표가 성과물 중심이 아니라 ‘투입량’ 중심인 점이 원인이다. 또한, 평가 기준이 바뀔 때마다 재정적으로 여유가 없는 대학은 발 빠른 대응을 하지 못해 격차가 벌어지는 것도 문제다. 강 씨는 대학은 교육과 연구가 가장 핵심적인 본질인데 재정 상황과 같은 외부요인에 의해 격차가 벌어지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밝혔다.

 

그래프의 x축은 연도를, y축은 표준편차를 의미한다. 표준편차(y축)는 격차가 벌어질수록 값이 커진다. 중앙일보 대학평가의 경우, 평가방식에 변화가 있었던 2010년, 2011년, 2015년에 대학 간 격차가 났다. 마찬가지로 QS 아시아대학평가의 평가방식에 변화가 있었던 2016년에 격차가 벌어졌다. 강 씨는 위 그래프를 통해, 대학 순위평가 방식이 바뀌면 재정적 여유가 있는 대학은 빠르게 대처하는 반면, 그렇지 않은 대학은 대처가 느리기 때문에 격차가 벌어진다고 분석한다.
그래프의 x축은 연도를, y축은 표준편차를 의미한다. 표준편차(y축)는 격차가 벌어질수록 값이 커진다. 

위 그래프에서 중앙일보 대학평가의 경우, 평가방식에 변화가 있었던 2010년, 2011년, 2015년에 대학 간 격차가 났다. 마찬가지로 QS 아시아대학평가의 평가방식에 변화가 있었던 2016년에 격차가 벌어졌다. 강 씨는 "대학 순위평가 방식이 바뀌면 재정적 여유가 있는 대학은 빠르게 대처하는 반면, 그렇지 않은 대학은 대처가 느리기 때문에 격차가 벌어진다"고 분석한다.

그렇다면 대학 순위평가체계는 앞으로 어떻게 개선돼야 할까? 강 씨는 대학 이해관계자들이 동의하고 공유할 수 있는 가치를 세우는 것이 가장 먼저 이루어져야 한다고 답했다. 공유된 가치가 있어야 비로소 경쟁이 이루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서는 어떤 기관에서 평가 방식을 일방적으로 정하기보다는 공론의 장을 마련해서 대학 관계자, 교수, 교육 수요자, 정부가 함께 가치와 기준을 정해야 한다는 것이 강 씨의 생각이다. 

약 20년 전, 이탈리아 볼로냐에서 유럽 29개국 교육부장관들이 모여서 고등교육의 방향을 모색한 시기가 있었다. 강 씨는 한국사회에서도 이와 마찬가지로 대학 평가 시스템을 구축하는 공론장이 열릴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공론화를 통해 가치를 공유하고, 그로 인해 규범이 형성되어 경쟁이 이루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정민기 기자 bonsense@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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