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신입생에게 책 한 권을 추천한다면? 조선시대의 작자미상 소설 『최고운전』을 포함해서 『창 밧긔 워석버석』, 『유씨삼대록』, 『월선헌십육경가』 등 지난 수능국어 시험에 출제된 한국고전문학 작품을 읽으라고 추천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국문학과 교수도 카프카의 『변신』처럼 세계문학 작품을 추천하지 않을까? 『변신』은 서울대 신입생이 가장 많이 읽었다는 작품이기도 하다.
한글 고전의 고어가 대학에 필요할까
‘이 음 이 랑 견졸 노여 업다’를 읽을 줄 아는 능력이 대학 공부에 필수적인 것도 아니다. 수능은 수학능력시험, 즉 대학에서 공부할 수 있는 능력을 평가하는 것인데, 외국의 대학수학능력시험도 자기네 고전을 고어 그대로 묻지 않는다. 자기네 고전만으로 제한하지도 않고, 인문, 사회, 자연과학 분야의 글을 정확히 읽어내는 능력을 강조한다. 우리 수능국어에는 한국고전문학 작품은 꼬박꼬박 두 개씩 나오지만 세계문학 작품은 한 번도 출제된 적이 없다. 세계문학이 이미 고등학교 국어 교육과정에 포함되어 있는데도 말이다.
수능국어에 출제되는 문학작품은 많이 팔린다고 한다. 설마 출제 과정에서 그런 고려를 하지는 않겠지만, 수능국어의 출제 범위를 어떻게 설정해야 할지에 대해 근본적인 반성이 필요해 보인다. 당장 초등학교, 중학교 학생들의 독서 교육까지 좌지우지하기 때문이다. 수능국어 때문에 우리 어린 학생들이 세계의 고전을 뒤로 하고 한국고전문학만 읽고 있다면 심각한 문제가 아니겠는가?
나비효과가 있는 것인지 궁금해서 우리나라의 연구자 분포를 찾아봤다. 한국연구재단에 등록된 인문학 분야 중 어문 계열의 연구자 숫자를 2021년 2월 3일 기준으로 조사하니 다음 표처럼 정리된다. 사회과학의 교육학 분야는 모두 합쳐져 있어서 국어교육 연구자 수와 외국어 교육 연구자 수를 포함하여 비교할 수는 없었다.
이 표에서 주목해야 하는 부분은 40대 연구자의 수이다. 40대에 새로 연구자로 등록할 사람이 많지 않다고 보면, 상대적으로 프랑스, 독일, 러시아 관련 분야의 연구자 수가 너무 급격하게 줄어들었다. 이 분야의 전문가가 이렇게 없어도 되는 것일까? 앞으로는 대학 교양프로그램에서라도 세계문학을 가르칠 수 있을까?
물론 이 표에 드러난 문제를 두고, 수능국어에 원인이 있다거나 책임을 묻는 것은 옳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수능국어에서 세계문학을 출제한다면, 세계의 시민으로 살아야 할 우리 학생들은 세계의 고전을 더 많이 읽을 것이고, 그만큼 그쪽 분야의 연구자들이 힘을 얻지 않을까? 무엇보다도 우리 학생들의 균형 있는 독서를 위해서, 이제는 수능국어에서 한국고전문학 대신 세계문학을 출제해 보는 것이 어떨까?
여영서
동덕여대 교수·과학철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