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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렌드: 올 상반기 환경책의 한 흐름
트렌드: 올 상반기 환경책의 한 흐름
  • 최성일 출판평론가
  • 승인 2004.07.02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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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하게 살자! 그것이 생태적 삶이다

환경·생태 도서가 이제는 질과 양에서 확실한 출판 장르로 자리잡은 느낌이다. 이런 점은 세 해째를 맞은 '환경책 큰잔치'에서도 확인되는데 지난 6월 5일 개막식에서 발표된 행사 실행위원들이 선정한 '올해의 환경책 10권'은 저마다 묵직함을 자아낸다. '다음 100년을 살리는 100권의 환경책'도 그 면모를 일신했다.

 하지만 환경책에 대한 세간의 인식은 아직 낮은 형편이다. 첫해부터 '환경책 큰잔치'를 지원하고 있는 교보문고조차 환경책 코너를 사람들의 왕래가 잦은 곳으로 끌어내 달라는 관련 출판사들의 요청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후미진 기술 서적 분야에 놔두고 있다. 장르를 넘나드는 속성 때문에 서점에서도 환경책을 분류하고 진열하기가 쉽지는 않다. 하지만 그럴 수록 자연과학에서 인문학에다 사회과학 그리고 문학을 포괄하는 환경책을 따로 모아 눈에 잘 들어오게 배치하는 일은 더욱 긴요하다.

 올 상반기 출간된 환경·생태 도서 가운데 도시와 생태를 주제로 삼은 책은 하나의 흐름을 이룬다. '환경 수도, 프라이부르크에서 배운다'(김해창 지음, 이후 刊)와 '꿈의 도시 꾸리찌바'(박용남 지음, 이후 刊)에서 보듯, 환경도시 또는 생태도시를 다룬 책은 이미 있었다. 올해는 여기에다 도시 생활에서 생태적인 삶을 실천하는 구체적인 방법을 제시한 책들이 더해졌다.

 박경화의 '도시에서 생태적으로 사는 법'(명진출판 刊)에서 지은이는 우선, 일상에서 생태적 실천에 관한 몇 가지 오해를 불식하려 한다. 첫째가 도시에서는 생태적으로 사는 것은 어렵다는 오해다. 지은이는 생태적 삶의 본뜻을 밝히는 것으로 이 오해를 풀고자 한다.

 "생태적으로 산다는 것은 단순하게 살자는 것이다. 편리함이라는 가면을 쓰고, 오히려 삶을 복잡하게 만드는 이 괴상한 구조로부터 살짝 비켜나가자는 것이다. 도시에서 생태적으로 산다는 것은 결코 번거로운 것이 아니다. 오히려 현재의 복잡하고도 번거로운 생활방식을 대폭 줄이거나 빼자는 것이다."

 

도시에서 생태적으로 살려면 돈이 많이 든다거나, 또 그러는 것이 별난 짓이라는 오해에 대해서는 약간 비싼 먹을거리를 챙겨 먹는 것이 예방적 차원에서 훨씬 저렴한 건강법이고, 현재의 도시적 생활 방식이 오히려 별난 짓이라고 대응한다. 도시에서 생태적으로 산다는 것은 "제철에 난 음식을 먹고, 우리 땅에서 난 먹을거리를 찾아서 건강을 지키자는 말이다." 그래도 도시에서는 한계가 있지 않겠느냐는 오해에 대해서는 자연의 자생력과 복원 능력을 내세운다.

 이 책은 환경운동가로 활동한 지은이의 직간접 경험을 바탕으로 한다. 사무실에서 자장면을 주문하면서 미리 일회용 나무 젓가락을 가져오지 말라고 하고 그래도 가져오면 모아 뒀다가 되돌려 주자 나중에는 알아서 젓가락을 가져오지 않게 되었다는 얘기는 지은이의 직접 체험담이지만, 지은이가 신문, 잡지, 책에서 접한 간접 경험도 적잖은 비중을 차지한다.

 이에 비하면, 일본 언론인 후쿠오카 켄세이의 '즐거운 불편'(달팽이출판 刊)은 오롯이 지은이의 직접 경험의 산물이다. 지은이는 생활에서 편리함을 배제함으로써 소비와 행복의 관계를 탐구하기로 하고 그 실천 기록을 자신이 재직 중인 '마이니치 신문'에 1년간 연재한다. 지은이는 자전거로 출퇴근하는 것을 시작으로 집에서는 가전제품을 사용하지 않고, 고층건물에서도 승강기를 이용하지 않는다. 식량 자급을 위해 땅을 빌려 농사를 짓기도 한다.

 하지만 도시에서 생태적 삶을 실천하는 데에는 난관이 도사리고 있었다. 1년간의 생태 실천 르포와 다시 1년간의 전문가 대담을 무사히 마치고 나서 지은이는 불의의 사고를 당한다. 여느 때처럼 근무를 마치고 자전거를 타고 집으로 가던 도중 오토바이에 치어 크게 다친다. 사고 후유증으로 왼쪽 팔 마비를 평생 안고 살게 되어 실의에 빠진 지은이에게 그의 아내가 건넨 위로의 말이 걸작이다.

 "당신, 무슨 말을 하는 거예요? 자전거를 타고 밤에도 안심하고 다닐 수 있는 도로를 만들지 않고, 미성년자에게 오토바이나 자동차 같은 위험한 것을 타도록 면허증을 내준 나라가 잘못한 거지! 당신이 주장하고 실천해왔던 게 틀린 건 아니잖아요?"

 

'당신의 차와 이혼하라'(돌베개 刊)와 '새 집 증후군'(알 펍 刊)은 도시에서 생태적으로 사는데 필요한 좀더 세부적인 지침을 제공한다. 앞의 책은 자동차의 발달 과정과 폐해를 예시한 다음, 자동차와 결별하는 구체적인 방법을 제시한다. 승용차에서 멀어지려면 역설적으로 대중교통과 편의시설이 잘 갖추어진 도심에 거주하는 게 효과적이라고 충고한다. 나중 책은 새 집 증후군에 대처하는 방법들을 제공한 실용서로 볼 수 있다.

 '생태도시 아바나의 탄생'(들녘 刊)은 1959년 혁명 이후 수십년간 지속된 미국의 경제 봉쇄에다 1989년 현실 사회주의의 몰락에 따라 소련의 원조가 끊기면서 최악의 식량위기에 직면한 쿠바의 수도 아바나가 220만의 시민이 채소를 자급하는 생태도시로 거듭나는 과정을 담은 책이다. '세계의 환경도시를 가다'(사계절 刊)는 일본의 잡지 '닛케이 ECO 21'에 연재된 르포를 엮은 책이다. 이 책의 옮긴이는 환경도시를 "자연에 대해 짐을 최대한 덜어주고 지속 가능한 생태적 건강을 유지하여 인간의 삶의 질을 보장하는 도시"로 본다. 책은 환경도시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보여주게끔 구성했는데 아바나와 프라이부르크를 다루지 않아 아쉽다. '파울로 솔레리와 미래도시'(르네상스 刊)는 건축가와의 대담과 설계도면으로 이뤄진 책으로 우리에게 생태도시의 미래상을 보여준다. 솔레리의 설계에 따라 미국 애리조나 주 사막에 건설중인 생태도시 아르코산티의 건물들은 SF영화의 세트를 떠올리게 한다. 아직은 상상 속에 있는 다른 설계도면들은 그로테스크하기까지 하다.

 도시에서 생태적 삶의 추구는 주어진 여건을 극복하려는 능동적인 자세라는 점이 소중하다. 도시 전체의 틀을 생태친화적으로 바꾸는 작업도 중요하다. 하지만 이것들이 도시에 집착하는 숙명론은 아닌지 의문스럽다. 물론 필자가 말하는 도시는 거대도시다. 또한 도시에서의 생태적 삶과 생태도시의 가능성에도 회의적이다. '생태=자연스러움'이라면 도시가 얼마나 자연스러울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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