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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계적 맥락에서 규명한 자기인식...심층분석 뒤따라야
관계적 맥락에서 규명한 자기인식...심층분석 뒤따라야
  • 이희정 천안대
  • 승인 2004.07.02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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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리뷰 : 『한국인의 부모자녀관계』(박영신 김의철 지음, 교육과학사 刊, 2003, 448쪽)

이희정 / 천안대 심리학

2004년 2월에 출간된 박영신ㆍ김의철 저 ‘한국인의 부모자녀관계-자기개념과 가족역할 인식의 토착심리 탐구’는 문화의 가치와 다양성을 인정하는 토착심리학적 시각에서 한국인 자신이 관계적 맥락 안에서 자기에 대한 인식을 어떻게 표현하고 있는가를 양적ㆍ질적 자료를 토대로 기술하고 있는 책이다. 저자들이 외국의 이론을 번역하거나 외국의 이론틀에 한국의 현실을 끼워 맞추려고 하기 보다는 개방적 질문지를 통해 부모와 자녀에 대한 사회적 표상, 아버지와 어머니와 함께 있을 때의 자기 인식, 아동기에서 청소년기까지의 부모에 대한 지각, 화목한 가정을 위한 가족의 역할에 대한 탐색을 시도하고 있다.

이와 덧붙여 현재 살아 움직이고 있는 현상과 진리를 드러내는 작업을 정직하게 이루기 위해 토착 심리학자의 태도에 대해서도 기술하고 있다. 즉 현재 살아있는 현상과 진리 앞에 겸손해야 한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으며, 도를 추구하는 사람처럼 ‘공을 이루나 머물지 않는’ 세계에 존재해야만 토착심리의 진실을 지속적으로 만날 수 있다고 하면서 서양의 도전 방식보다는 동양의 조화 방식을 받아들여 세계의 변화하는 현상들을 ‘물질’의 세계보다는 ‘마음’이나 전신 또는 영의 세계에 대해 개방적일 것을 강조하고 있다. 따라서 일반 독자 뿐 아니라, 토착심리를 공부하는 후학들에게도 중요한 부분을 지적하고 있는 책이다.

이와 함께 동양정신의 가치에 대한 관심과 잠재가능성에 대한 재인식이 필요하다는 점과 나와 다른 적과 싸워 이기는 ‘쟁취의 역사’로부터, 서로를 불쌍히 여기며 나누고 보살피는 ‘조화의 역사’를 이뤄 갈 것을 인도사상, 노자의 무위자연 사상 등도 인용해 동일한 행동이나 사실에 대해 전혀 다른 해석이 가능하고 이를 볼 수 있는 열린 시각을 강조하고 있다.

이와 함께 경험적 연구들을 종합해 개인주의 보다는 집단주의적 자기 인식의 방식과 부모자녀 관계 맥락에서 과거 한국 사회의 전통적인 의식에서 큰 변화가 없다는 사실을 전제로 현대사회를 살아가면서 잊기 쉬운 느림의 미학(35쪽)이나 자기조절을 하며 인내하고 참고 기다리는 태도에 대한 중요성을 부각시키고 있다. 본인은 본 저서를 읽으면서 농경사회를 거치긴 했으나, 직접 농업에 접해보지 못한 상황에서 새로운 간접 경험과 재충전의 기회가 됐으며, 기쁜 마음으로 서평을 쓰게 됐다. 또한 전문 서적을 읽으면서 느끼는 딱딱함과는 달리 인간소외의 현실 앞에서 가슴 뭉클한 감동도 선사해 준 즐거운 기분을 맛볼 수 있었다. 

그러나, 토착심리학이 보다 대중적으로 퍼져서 설득력이 있는 일반 이론으로서 생존하도록 하고자 하는 마음에서, 그리고 저자들 스스로 새로운 시각을 항해 열려있는 책이라고 하기 때문에 간단히 크게 세 가지 측면에 견해를 피력하고자 한다. 물론 이 같은 지적들이 본인의 토착심리학에 대한 무지로 인한 지적들이기 때문에, 저자들의 보다 자세한 설명이 후에 덧붙여지리라 믿고 있다.  

첫째, 기본적으로 본 저서는 토착 심리학적 관점 중 특히 토착 ‘교육’심리학적 관점이므로, 이와 같은 구성과 전개가 가능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다소 당위적인 측면에서 서술되고 있다는 느낌이 앞섰다. 농경사회에서 부각됐던 연장자에 대한 존경, 부모님에 대한 효도의 마음, 엄부자모의 전통적 가족 역할에 대한 시각을 설득하고자 제 2장에서 제 5장까지 서술하고 있다. 그러나 자료 구성에 있어서 양적 자료를 구성하고 있는 경험적 연구들이 IMF시대 이전과 이후의 구분을 통해 실증적 자료가 제시돼 있으나, 토착심리학이 내용보다 ‘맥락’을 다룬다는 기본 가정 아래에서 비춰 볼 때, 과연 IMF를 기준으로 구분된 비교 자료의 토착 심리적 관점을 나타내기에 적합한지 의문시된다.

오히려 실증 자료를 전통 문화를 간직하고 있는 농촌지역과 도시화가 완결된 지역의 부모자녀 관계 또는 본 저서에서 제시되고 있듯이 초, 중, 고등학생과 그들의 부모와 성인을 중심으로 자료 수집이 이뤄진 연구를 제시할 것이 아니라 전통적 사고방식에 익숙한 기성세대와 신세대의 부모자녀 관계에 대한 차이를 부각시키거나 동양사상과 관련된 시사점과 연결하기 위한 실증적 자료들 역시 좀더 직접적으로 이를 검증한 자료를 제시했다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제 2부의 자료들과 제 3 부의 결론이 통합적으로 제시되고 있다는 느낌보다는 다소 짜깁기 식이라는 비교적 토착 심리적 접근에 문외한인 본인의 시각에서는 눈에 띄었다.

둘째, 실증자료에 대한 해석에 있어서도 저자들은 역기능보다는 순기능에 보다 초점을 두고 있는 듯하다. 또한 양적 자료조사의 한계일 수는 있으나, 문제가 있다라는 유목에 대해 좀 더 심층적인 분석이 이뤄져서 어떤 문제가 어떤 차원에서 제시되는가에 관한 다양한 심리적 기제에 관심을 갖고 책을 보게 되는 독자에게는 다소 수박 겉핥기식의 범주 구성과 항목의 나열이라는 비판을 면치 못할 것으로 생각된다. 예컨대 제 4장의 한국 아동과 청소년의 부모에 대한 지각을 설명하는 가운데 제시된 부모와 거리감을 느끼는 이유에 대한 유목에서 가장 많은 빈도를 차지한 “거리감 없음”에 대한 유목에 대한 해석에서 저자들은 “일종의 동문서답이나, 이는 한국의 자녀들이 부모에 대해 갖고 있는 유대관계가 전반적으로 얼마나 끈끈한가를 보여주는 것이다”라고 순기능에 대한 해석만을 제시하고 있다.

사실상 연구대상의 연령이 초등학교 3학년부터 고등학교 2학년까지 다양하므로 거리감 없음이라는 응답의 의미는 상당히 대상 연령에 따라 다를 수 있을 것이다. 또한 부모에 대한 존경 이유 중 “혈연관계”로 나온 응답에 대해 저자들은 응답 학생들인 부모자녀관계라는 혈연관계이기 때문에,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무조건적으로 존경해야 한다는 “인간관계 중심”의 사고가 절대적으로 작용하는 것으로, 이는 서양과 한국의 차이이며 한국의 아동과 청소년의 관계적 사고인 것으로 추론해 설명하고 있다.

이 같은 응답 역시 연구대상이 왜 그렇게 대답했는가에 대한 탐문 또는 의미에 대한 심층적 분석이 없다면 저자들이 의도하는 방식으로만 설명할 수는 없지 않을까 싶다. 그리고 이와 덧붙여 부모의 교육적 관심 역시 자녀들로부터 “존경”의 이유가 되는 측면을 부각시키고 있다. 실로 부모의 적절한 교육적 관심과 기대가 자녀들과의 관계에서 긍정적인 역동으로 작용하는 면이 있을 수 있다고 볼 수도 있겠으나, 과연 그런가에 대한 토착 교육 ‘사회’학적 시각에서의 추후 확인 작업이 필요할 듯하다.

셋째, 화목한 가정을 위한 어머니의 역할에 대한 분석에서 초등학생과 부모에 대한 연구결과를 보면, ‘가족을 위한 희생’(330쪽)이 반수에 가깝게 나타나고 있으며,  그 다음으로 ‘집안 일 충실’을 나타내고 있다. 이외에 ‘맛있는 요리를 만듦’, ‘가족에 대한 관심’, ‘가정관리 철저’와 같은 순으로 매우 보수적인 경향을 나타내고 있다. 여성 경제활동 참여율의 증가를 고려해 볼 때, 그들 중 전통적인 현모양처의 역할을 감당해 가족을 위한 희생을 꿈꾸는 여성이 과연 얼마나 될지 토착 ‘여성심리’학적 추후 연구가 필요할 듯하다. 이 역시 음양의 조화에 익숙하지 않은 본인의 가벼운 시각일 수 있겠으나, 21세기는 여성 정치인과 경제인들이 활약할 시대로 기대하는 바 이 같은 결과에 대해 독자들 중 몇 퍼센트나 공감할지 의문시 돼서 논의하는 바다.

이에 첨가해, 실생활 상황 속에서 행동을 연구하는 것을 선호한다면, 본 저서에 제시된 양적 분석보다는 심층면접을 활용한 방법들도 있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본 저서에서도 상당히 고무적인 몇가지 드문 사례를 인용하고 있기는 하나, 이 같은 사례들 역시 과연 진정으로 토착적 측면에서 필수불가결한 사례로 제시하고 있는지 의문시된다. 본 저서에서의 연구대상은 일반 초, 중, 고등학생 및 성인을 대상으로 하고 있는데 3장에서부터 등장하고 있는 아들과 강모 박사의 사례는 지극히 특별한 장애 아버지가 의사 아들로 키운  예외적인 사례-현실에서는 장애인 아버지가 아들을 이정도로 키우는 것이 과연 가능한 일일까?, 물론 매우 성공한 사례를 삽입하여 뭉쿨한 감동을 주려는 의도는 이해는 하겠으나, 굳이 아들의 성공담 안에 외국의 명문 사립고교에 진학하고 이름만 들으면 누구나 알 수 있는 미국 대학원을 나왔다는 설명을 덧붙일 필요가 있을지 다소 의문스럽다. 또한 233쪽에서 제시되고 있는 “죽어서 더 외로운 노인들”이라는 삽화 역시 4장의 한국 아동과 청소년의 부모에 대한 지각이라는 본문 내용과는 관련되지 않는 내용으로서 삽화가 내용과 상관없이 따로 제시되어 있는 격이라 본다. 저자의 연구내용이나 주장하려는 바를 가장 집약적으로 나타내는 그림이나 만화 등은 책의 내용을 보다 설득력 있게 호소하는 역할을 할 수 있겠으나, 실증 연구 따로, 시사점 따로, 만화 따로 그림 따로이기 때문에 토착심리적 접근에서 화려한 삽화들이 내용과 어우려져 통합적으로 제시되어 있다기 보다는 짜깁기한 느낌이 드는 것은 서평을 쓰는 본인이 동양적 전체주의에 다소 미숙하기 때문일 수도 있겠다.

그러나, 이같은 비판에도 불구하고 한국에서 오랜 기간 수많은 항목들을 입력하여 수집한 실증적 연구 자료를 토대로 독자가 읽기에 편안하고 쉬운 책을 만들려는 정성과 애씀이 곳곳에 나타나 있는 완성도 높은 책이며 새로운 시각을 향해 열려있는 책으로 만들고자 인용글과 그림을 모은 많은 사람들의 수고가 돋보이는 노고가 깃들여진 책이라 생각된다. 한국인의 어진 마음을 사람들의 마음 속에 확산해 나감으로써 세계 평화를 증진시켜 나갈 수 있다면 하는 바램이나, 책에 면면히 흐르고 있는 유교주의적 고고함과 존경심을 표하고 싶다. 또한 인간의 행복이란 결국 ‘마음’ 내부에 있으며 결국은 당사자 입장에서의 ‘마음 다스리기’가 중요하다는 점에 깊이 공감하는 바이다.

필자는 연세대에서 '품행장애 청소년의 도덕적 정서와 자아 정체성'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한국형 베일리 영유아발달검사와 한국형 영유아 발달검사를 이용한 미숙아의 발달평가', '품행장애 청소년의 도덕적 정서와 자아정체감' 등의 논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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