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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세살, 수아
열세살, 수아
  • 교수신문
  • 승인 2021.02.23 1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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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정 시나리오집1 | 조선대학교 출판부 | 115쪽

「열세살, 수아」 제작 노트

 

한국의 지방도시에 살고 있는 열세살 소녀가 진짜 엄마를 찾아 서울행 기차에 몸을 싣는다는 수아의 이야기는 실은 멀고 먼 프랑스 파리의 어느 아파트에서 쓰여진 것이었다. 폴란드 영화학교 우쯔에서 연출한 단편들로 주목 받아온 김희정 감독은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생각해낸 「열세살, 수아」의 이야기로 2005년 칸영화제가 지원하는‘칸 레지던스 인 파리’에 선정되어 반년간의 작업 끝에 장편 시나리오로 완성했다. 


칸 레지던스는 세계의 젊은 감독들이 첫번째 혹은 두번째 장편작품을 발표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프로그램으로서, 영화화하고자 하는 내용의 트리트먼트와 이력서, 그리고 기존작품들의 심사를 통해 각 세션당 6명의 신인을 선발, 지원한다. 「열세살, 수아」는 국경을 초월해 어느 누구라도 공감할 수 있을 만큼 분명한 스토리 라인을 가지고 있다는 점 때문에 심사위원들의 관심을 한 몸에 받을 수 있었다. 부모와 자식간의 관계, 사람 사이의 감정들이란 어느 곳에 가나 큰 차이가 없다는 것은 오랜 기간 폴란드, 프랑스 등 타국 생활을 한 김희정 감독의 지론이다. 이 이야기에 공감하는 영화제가 많아 완성된 영화는 폴란드 바르샤바국제영화제, 도쿄 필멕스영화제, 이탈리아 우디네 극동영화제 등 세계 유수의 영화제에 초청되었고, 서울국제영화제(senef)에서 신인감독상을 수상했다.


「열세살, 수아」 촬영 뒷 이야기

急! 크리스마스 이브 자우림 콘서트 촬영!

 

「열세살, 수아」의 첫 촬영은 2006년 12월 24일 크리스마스 이브였다. 원래 크랭크 인 날짜는 2007년 1월이었지만, 자우림이 마침 예정하고 있던 크리스마스 콘서트를 이용하는 것을 허락해준 덕분이었다. 자우림 콘서트로 북적거리는 연말 공연장 앞의 풍경은 「열세살, 수아」로선 간단히 놓칠 수 없는 최고의 촬영기회였다. 충분히 준비할 시간 없었던데다 스탭들이 아직 서로 익숙하지 않은데도 불구하고 영화 속에서 가장 많은 등장인물이 출연하는 장면을 찍어야 한다는 부담감이 있긴 했지만 크리스마스 이브에 모든 약속을 팽개치고 한 마음이 된 「열세살, 수아」 팀은 결국, 영화의 클라이막스에 해당하는 콘서트장 장면을 성공적으로 담아낼 수 있었다. 


대한민국 인기 1위 락그룹 자우림의 콘서트 현장을 담을 수 있었던 것도 큰 성과였다. 콘서트 속 ‘그린 슬리브즈’를 부르는 김윤아의 공연장면은 영화 속에서 ‘가수 김윤아’가 아닌 ‘가수 윤설영’의 콘서트 장면으로 등장하며 영화 속에 자우림의 족적을 남긴다. 


세영이 못생기게 만들기 프로젝트

 

분장팀의 증언에 의하면 김희정 감독은 주인공 수아의 외모에 대한 몇 가지 확고한 방침을 갖고 있었다. 첫번째, 머리카락은 떡이 져 있어야 한다. 하늘하늘 날리는 머리카락은 조금도 인정할 수 없다. 두번째, 화장은 로션과 파우더 이상은 금지. 세번째, 수아의 옷은 절대 몸에 붙지 않는다. 교복치마는 가장 다리가 못생겨 보이는 길이로 자른다. 촬영 들어가기 전에 감독님은 언제나 제일 먼저 수아(세영)의 외모를 점검했고, 조금이라도 예뻐 보이는 날에는 ‘빠꾸’ 먹을 각오를 해야 했다. 하지만 드라마 ‘대장금’에 이어 「아홉살 인생」과 「여선생 여제자」에서 성인배우 뺨치는 아름다움으로 장안의 화제가 되었던 세영이를 볼품없는 열세살로 만드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고, 결국 분장팀은 촬영현장에서 언제나 “어떻게 하면 세영이를 못생기고 평범하게 보이게 할까”를 고민해야 했다.


다른 영화에서처럼 예뻐 보이느라 얇은 옷 입고 덜덜 떨 일은 없었지만, 겨울에 촬영하느라 튼 입술에 투명립글로스조차 바르지 못하는 고난을 감수해야 했던 세영이. 한 올도 남김 없이 한 덩어리로 움직여야 하는 수아의 헤어스타일 때문에 숱 많은 세영의 머리를 온통 떡지게 만드느라 분장팀의 헤어왁스 사용량도 평균치를 넘었다는 소문이다.


한겨울에 푸른 빛을 어디 가서 찾나?

전북 고창 청보리밭 촬영

 

영화에서 수아는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중학생이 된다. 두꺼운 바지에 잠바, 새로 맞춰 입은 교복은 ‘동복’을 벗어나지 않는 「열세살, 수아」의 배경은 ‘겨울’인 것이다. 촬영 또한 학교수업에 빠질 수 없는 세영이의 사정을 고려해 2006년에서 2007년으로 넘어가는 겨울방학 안에 마치기로 결정했다. 하지만 문제가 있었다. 푸른 잎이 나기 시작한 밭을 지나는 버스장면을 촬영할 배경이 마땅치 않다는 점이다.


헌팅에 헌팅을 거듭하며 고배를 마시던 제작부에게 도움을 준 것은 다름 아닌 전주영상위원회였다. 설마 하며 찾아간 전북 고창의 청보리밭은 1월 19일, 한겨울의 날씨에도 한없이 푸르렀고, 수아네의 분식 버스의 노란 색과도 더 없이 잘 어울리는 최고의 촬영장소로서 본색을 드러냈다. 한 겨울 날씨에 안 추운 척 하느라 고생하긴 했지만 맛있는 보리비빔밥 점심에 마냥 행복하다가, 수아가 아빠와 진짜 이별을 나눌 때는 눈물을 줄줄 흘리다가, 스탭들은 이 날 하루 종일 울다 웃다 정신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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