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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기따라 ‘학문 공동화’… 기초학문 포기하나
인기따라 ‘학문 공동화’… 기초학문 포기하나
  • 김봉억 기자
  • 승인 2004.07.06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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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점 : 대학원 교육 어디로 가는가

“최근 몇 년 동안 대학원 석·박사 과정에 지원자수가 적어 경쟁없이 모두 합격시켰다. 대학원에서 배우는 핵심과목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두 학기를 마치는 경우도 많고, 이후에 연구 및 실험을 기계적으로 하면서도 그 의미를 모르는 대학원생들이 늘고 있다.”

 

김도석 서강대 물리학과장의 말이다. 김 교수는 대학원 교육의 실태를 묻는 질문에 “일부 수도권 사립대학의 경우 연구능력과 장비가 충분함에도 불구하고 연구보조원 인건비를 책정할 수가 없어 연구과제 지원을 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라고 덧붙였다.

현재 나타나고 있는 대학원 문제는 우선, 우수 대학원생 확보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점이다. 군소대학→지역거점대학→수도권대학→외국대학으로 학생들이 빠져 나가는 도미노 현상은 이미 서울의 유수대학마저 기초학문분야에서 절대인원을 확보하는 것이 힘든 정도까지 심화됐다.

 

서울 유수대학도 기초학문분야 인원 확보 어렵다

연세대의 경우 올해 수학과 석사과정의 정원은 37명이지만 18명을 뽑는 데 그쳤다. 생물학과도 정원 30명의 절반에 그쳤다. 10명이 정원인 독문학과는 2명, 19명이 정원인 철학과도 4명밖에 뽑지 못했다.


고려대는 올해 상반기 생명환경과학대학의 박사과정에 26명이 지원해서 23명이 입학했다. 석사정원이 1백92명인 서울대 인문대학은 올해 전후기를 합쳐서 1백66명밖에 채우지 못했다.  고려대, 서울대, 연세대 모두 ‘대학원생’ 유치에 허덕인 셈이다.


학생이 없다보니 수억원씩 하는 장비를 그대로 놀리고 있는 경우도 심심치 않게 발견되고 있다. 레이저 공학을 전공하고 있는 김 아무개 교수는 “지방대학에 갔다가 수 억원씩 하는 장비가 3년째 포장도 뜯지 않은 채 썩어가고 있는 것을 봤다”라면서 “장비를 설치해 줬지만 운영할 사람이나 있을지 모르겠다”라며 안타까워했다. 김 교수는 “십수억원 하는 장비를 수년째 놀리다가 포장도 뜯지 않은 채로 절반도 안되는 가격에 내다파는 경우도 더러 있다”라고 말했다.  

 

인력 없어 십수억짜리 장비 내다팔기도  

지역의 경우 이러한 현상은 더욱 심각해 이공계열에서는 동남아시아 국가에서 학생을 수입해 오기도 한다. 그러나 이 또한 대안이 될지는 미지수다.


수년전부터 이공계열에 동남아시아 국가의 학생을 유치하고 있는 한 지방 대학에서는 이들이 졸업해야 하는 시점에서 난관에 부딪쳤다. 한 지방대학 대학원장은 “기초실험은 가능하지만 언어소통이 안돼 어려운 실험은 못한다. 졸업에 임박했는데도 논문실험조차 못하고 있는 경우도 생긴다”라며 “졸업을 시키자니 교수 양심에 걸리고, 그렇다고 마냥 데리고 있을 수도 없다”라고 딱한 처지를 하소연했다.

 

대학원 재편 기회로 삼자는 주장도

대학원 위기의 원인을 두고 공통적으로 지적하는 것은 모순되게도 대학원육성사업인 두뇌한국21사업의 폐해라고 지적한다. 이공계 대학원 운영에 ‘부익부 빈익빈’사태를 심화시켰다는 것이다. 


연구중심대학을 표방하는 대학에 집중지원하면서 연구역량보다 넘치게 대학원 정원을 늘렸고, 그 결과 지원받는 대학의 교육이 부실해지고, 지원에서 소외된 대학은 아예 학생이 없어 교수들이 실험 장비를 놀릴 수밖에 없게 됐다는 것이다.

권연웅 경북대 대학원장(사학과)은 “우리나라의 엘리트스포츠가 문제가 있었던 것처럼 학계도 마찬가지 오류를 겪고 있다. 일부를 집중육성하는 것은 당장 성과를 얻는 데는 유리하지만 장기적이지는 않다”라고 꼬집었다.

이에 따라 대학원 정원을 감축하고 재편하는 기회로 삼자는 의견도 조심스럽게 제기되고 있다. 김순복 경상대 대학원장(수의학과)은 “대학마다 ‘특성화’가 필요하다”면서 “연구역량이 떨어지는 곳에서는 ‘학부중심’으로 재편해야 한다”라며 대학원도 자연스럽게 재편과정을 거치게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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