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2-08-16 09:57 (화)
대학의 권위와 사회적 책임
대학의 권위와 사회적 책임
  • 정영인
  • 승인 2021.02.24 09:1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대학정론_ 정영인 논설위원 | 부산대 교수·의학과

 

정영인 논설위원부산대 교수·의학과
정영인 논설위원(부산대 교수·의학과)

대학은 한 나라의 최고 학문기관이자 인재 양성과 지성의 산실이다. 자율에 기초한 자치적 역량은 대학의 핵심 요소이자 작동 원리다. 그래서 사회는 대학을 자율적 공동체로 규정한다. 자율(autonomy)은 자기 스스로(self)를 의미하는 autos와 법칙(law)을 뜻하는 nomos의 복합어다. 자신이 설정한 규칙이나 법칙을 스스로 지키고 따르는 자기통제가 곧 자율이다. 다시 말하면 자율이란 다른 어떠한 권위에도 구속되지 않고 실천의 절대적 원리를 스스로 통찰하고 그에 따라서 자기의 생활을 스스로 규제해 가는 것을 뜻한다. 자율적인 집단은 스스로 선택한 계획에 따라 자유롭게 행위한다. 최소한 외부의 통제에서 자유롭고, 선택을 방해하는 상황으로부터 스스로 통제할 수 있는 집단이다. 


최근 필자가 재직하고 있는 부산대는 입시부정과 관련한 1심 재판 결과에 대해 입장문을 냈다. 요지는 입학과 관련한 처분은 법원의 최종 판결이 나오는 대로 법령과 학칙에 따라 원칙대로 투명하게 처리하고, 법원에서 최종적으로 확정되지 않은 사실관계를 전제로 개인의 중차대한 법익에 관한 일을 처리하는 것은 헌법에서 규정한 무죄 추정의 원칙에 어긋난다는 게 대학의 입장이라는 것이다. 이는 대학 스스로 자치적 역량이 없음을 고백하는 것과 다름없다. 대학은 입시부정을 자체적으로 판단하여 조치하고, 당사자가 그 조치에 이의를 제기하고 사법적 판단을 요구하면 그에 따라 법원의 결정을 수용하면 된다. 자율적 역량이 상실된 대학의 판단에 권위가 있을 리 만무하다. 대학이 오히려 사회적 혼란을 부추기는 양상이다. 


어디 그뿐인가. 대학의 규정까지 어겨가면서 장학금이란 명목으로 뇌물을 제공하여 기소된 교수에 대해서 대학은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고 있다. 이 또한 최종적인 사법적 판단에 따르겠다는 뜻이리라. 칸트는 자율을 정의하면서 “나는 무엇을 해야만 하는가?”라고 묻고 “네 행동의 주관적 원리가 언제나 동시에 네가 소속되어 있는 공공사회의 보편적 입법의 원리로서 타당할 수 있도록 행동하라”라고 답한다. 자율이 도덕적 윤리의 핵심임을 지적하는 말이다. 대학이 부정행위에 대한 도덕적 판단을 포기하고 처분을 법원의 판단에 맡기는 건 대학 스스로 자율적 공동체임을 부인하는 것이다. 


대학의 자유는 자율에 기반을 둔 자치권에 의해 뒷받침된다. 한때 대학은 세속의 법률에 구속되지 않고 자체적으로 재판권을 행사했다. 재판권은 대학의 특권이자 자치의 상징이었다. 믿음과 신뢰를 대학 이념으로 삼고 있는 독일의 하이델베르크대학에는 학생들이 자치적으로 운영했던 학생감옥 카르체가 100년 이상 존속했었다. 대학의 권위는 도덕적 윤리에 기초한 자치 역량에서 나온다. 대학이 도덕성을 의심받을 때 대학의 권위는 설 자리를 잃는다. 한국의 대학들에서 좀처럼 사회적 귄위를 찾기 힘든 것은 도덕성을 의심받는 데서 기인한 바가 크다. 대학의 존재 목적은 학문의 탐구와 인재 양성이다. 이를 위해 사회는 대학에 학문의 자유라는 특권을 부여한다. 학문의 자유는 대학의 본질적 요소이기 때문이다. 자율적 공동체로서 대학의 자치권도 학문의 자유에서 연유한다. 


대학은 사회를 떠나 존립할 수 없다. 사회가 요구하는 도덕적 필요에 능동적으로 부응해서 사회 발전을 추동할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이 대학에 부여된 특권에 필연적으로 따르는 사회적 책임이다. 대학이 도덕적 책무를 기피하고 자치 역량을 의심받으면 학문의 자유가 위협받고 대학의 존재 기반도 흔들린다. 권력이나 일상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면서 어떻게 대학의 자율을 논할 수 있겠는가. 독일의 교육철학자 훔볼트는 말한다. “인간의 내면에서부터 생겨나고 내면에 뿌리를 내리는 학문만이 인격을 형성할 수 있으며, 중요한 것은 지식이나 말이 아니라 인격과 행위이다.” 학문 탐구와 지성적 성찰을 통해 사회적 갈등과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가치를 창조하지는 못할지언정 오히려 사회적 혼란을 부추기는 반지성적 행태에서 권위를 상실한 대학의 초라한 자화상을 본다.

정영인 논설위원 | 부산대 교수·의학과 / 국립부곡병원장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